초2천재학교라는 글을 읽어내려가다, 바람불면님의 글을 다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글들이 여러모로 고민을 던지게 하고 오랜시간 생각을 하게 합니다. 아이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자세와 나의 태도에 대해서 말입니다.
절 닮아 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큰딸, 아빠를 닮아 책보다는 놀이터가 좋은 둘째딸, 그렇지만
언니와 엄마의 영향으로 1년에 단 한권의 책도 읽지않는 아빠보다는 책을 더 많이 읽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언니만큼 책 속에 빠지진 않더군요. 좋아하는 책의 성향도 아~주
많이 다릅니다. 한글책뿐 아니라 영어책, dvd도요.
유전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더군요. 그렇다고 저의 양육태도가 두 딸에게 똑같았다고도 자신할수
없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첫째와 함께 가고 있고, 한번 가 봤던 길을 다시 가는 둘째에게 더
많은 것을 허용하고 관대해지게 되더군요. 그래서 늘.. 큰 딸에게 미안합니다.
다시 십년전으로 돌아간다면 큰 딸에게 더 많은 것을 허용하고 다 많이 놀게하였을 것이란 생각은
늘 듭니다. 물론 그런 마음으로 지금부터 잘하면 되겠다는 생각도 합니다만, 엄마의 의지란 것이
늘.. 자리를 잘 잡고 꼿꼿하기만 하다면 월~매나 좋겠습니까? 그리되지 않더군요.
내 아이의 미래가 나로 인해 다 결정된다면 참 슬플 것 같습니다. 저의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엄마,아빠,형제들,선생님,친구들,선배들,남편,시댁식구 등등등....
아주아주 많은 것들이 저를 변하게 하니까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구요.
단지 내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설혹 엄마로 인해 마음아픈 일이 있었더라도 엄마가 미워지
는 순간이 있더라도 엄마도 사람이라 실수할 수 있다는 거, 그렇지만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을 잊지말았으면 한다는 것이지요.
유전 VS 환경의 영향력을 비교하기 위해,
일란성. 이란성 쌍생아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 사회학적 연구결과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쟁, 입양등으로 분리되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양육된 일란생 쌍생아들을 추적하여
후향적으로 그들의 직업, 교육수준 등을 비교 분석한 결과,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양육된 쌍생아들이 유사한 직업, 학력과
심지어 비슷한 성향의 배우자를 선택해서 살고 있었다는 놀라운 연구결과도 본 기억이 있습니다.
샘플집단의 수가 작아 신뢰성이 떨어지는 연구결과라고 치부한다쳐도
동일한 사회적 환경(양육방식, 교육, 종교, 문화 등)에 노출되었음에도, 완전히 다른 기질, 성향을 가진
주변의 이란성 쌍생아들 보셨다면 유전자의 영향력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교육 또는 양육에 있어 아이들이 타고난 고유한 성향과 능력의 기질적 차이를 결코 간과해선 안됩니다.
개인적으론, 후천적인 교육(?)만으로 영재를 만들수 있다는 칼비테식
또는 우리나라에선 상업적으로 변질된 푸*이네 조기교육 방식에는 반대입장입니다.
이분들이 불어넣은 환상과 조기교육열풍이 우리나라 유아교육과 도서시장을 얼마나 기형적으로
변화시켰는지는 교육에 관심이 많으시니 잘 알고 계실 것 같구요.
물론 한 사람의 학업과 직업적 성취에 있어,교육을 포함한 환경적인 요인 또한 중요합니다.
금속동전 주조공의 아들인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금세공사의 아들인 클림트가
금박을 이용한 화려한 미술작품들을 선보인 것이 우연은 아닐테구요.
칼비테가 유능한 학자가 된 배경에는 그 아버지의 대단한 교육열이 한몫했음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신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장하고 발달하고 평생에 걸친 성취에 있어
유전과 환경적인 요인 둘다, 우열을 가릴 수없을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밑에 홍박사님 말씀대로 어떤 아이의 단면적인 학업적 성취가 두드러지지 않다고 해서
부모의 양육이나 교육의 문제,또는 그 아이의 노력부족으로 탓이 돌려져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동일한 부모에게서 태어날 수 있는 아이의 경우의 수를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지구인구보다도 많을 것입니다.
바람불면 님 말씀대로, 아이들 교육에 유전적 요인을 들먹거리진 않는다고 할지라도
부모로써는, 내아이의 한계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 자체로 사랑하고 존중해줘야 할 부분이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람불면님 좋은 화두 던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는 재밌는 화두. 이렇게 종종 올려주세요^^
저는 직업상 후천적 요인, 환경의 영향에 무게를 두는 사람입니다만,
동일한 목표를 놓고 동일한 경로로 달리게 했을 때는 유전적 특성이
그에 유리하게 디자인 된 아동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습니다.
standardized test로 평가하여 아이들 능력에 차등을 두고 뭔가 선발을 하는데
이런 조건에서 선발되지 못하는 아이의 패인은 부모 태도로 귀결되나요?
그리 되면 우수아로 분류되지 못한 아이의 부모는 적절치 못한 양육을 했다는
비난을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논의가 돼야 하나 침묵하고 불만스럽기만 한 부분은 사실
개인의 양육태도를 넘어 이 사회의 교육평가 패러다임의 문제입니다.
창의력, 개인특성, 사고력이 평가되지 못하는 평가방식의 문제점은 뒤로 놔둔 채
부모의 양육 문제, 정신상태 만을 손가락질 하는 점에 저는 반대합니다.
이미 학부형들이 지쳤습니다. 더 이상 그네들에게 죄책감을 갖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사회제도 운운하는 것까지는 잠시 접자면
분야 특성상 예를 들어 교육학 등에서는 환경을 중시할 것이고,
또 어떤 분야 의학(?) 쪽은 유전척 요인, 선천적 결정 요소에 무척 주목하겠지요.
따라서 인간에 관한 이야기는 유전 대 환경이라는 이분이 절대적이지도 않고,
관련 연구 결과를 적용하는 사람의 선택도 학파나 주장마다 달라
하나가 다른 한 요인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도 절대적이지 못합니다.
학습으로 돌아와 말씀드리면 성공적인 학습 요인에는 유전, 환경이라는 광범위한 분류 보다
learning style, motivation, self-concept, needs 등에 주목해야 합니다.
다 아시는 얘기 들먹였는지 조심스럽습니다.
(남이 이미 아는 얘기 자기만 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을 제가 무척 싫어합니다 ㅋㅋ
제가 교육청, 시민단체 등에서 토론을 종종 하는데 많은 분들이 그러대요.)
선생님 말씀처럼 물론 기울여야 하는 노력을 접은 채, 성과가 조금 없다고
아이 유전적 특성을 들먹이며 쉽게 좌절해버리는 ‘짓’은 삼가야지요.
제가 이 사이트에서 많은 아이들에게 정 붙이면서 관찰한지 5년 째 되니
많은 세월 학문이라는 진로를 밟으며 얻어들은 제 지식이 무의미해지는 느낌입니다.
이 녀석의 경우와 저 녀석의 경우가 판이하며, 신봉하던 제 생각에 예외가 넘칩니다.
제 말씀은 개인의 제한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가지 주장을 고수하여
나머지는 바로잡겠다는 사명감에 내는 조언이 어떤 개인에 조명해 들여다 보면
그 주장이 한낱 질타로 되는 경우가 있다는 뜻입니다.
요즘 저는 공부 좀 오래했다는 폼 되게 잡다가 길을 잃은 느낌입니다.
그런데 엄마로서는 길을 찾은 기분은 뭔지....
근래 아주 자주 깊이 생각하는 토픽이 나와서 긴 글 썼습니다.
이렇게 논의가 생기게 하는 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글이 좋은 겁니다.
선생님 덕에 좋은 댓글이 많이 올라오는군요. 고맙습니다.
저는 아이가 커 갈수록 타고난 부분이 많이 차지하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그렇다고
부모가 그 부분의 한계를 두고 포기(?)를 하는건 물론 반대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타고난 부분을 인정함으로써 아이를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갈등을 최소화
할수있는것 같아요
아마 제 글을 읽고 이런 글을 올리신것 같은데요.
책 읽는 것이 유전적인 요인이란 글을 본 기억이 없으시다고 하셨죠?
제가 아이들 성향을 구별 지어서 적었지만
사실 그 내막은 이러합니다.
제가 최근에 난독증 관련 책을 번역을 하면서
('The Dyslexic Advantage' 이란 책입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난독증 뇌는 그렇지 않은 뇌에 비해
뇌안에 microcolumn의 간격이 넓고
정보처리할때 사용되는 네트워크의 범위가 넓은 편입니다.
이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많은 연구가 쌓인 사실입니다.
따라서 난독증 뇌는 상대적으로 detail에 약하고 전체적인 그림(big picture, global thinking이라 표현합니다) 그리기에 강하고 글자보다는 이미지로 사고하는것에 익숙해있습니다.
그렇다보니 난독증 뇌를 가진 사람들은
사고 자체를 언어가 아닌 다른 형태, 이를 테면 이미지나 청각, 혹은 감각 등의 다른 비언어적 표현방식으로 드러내는것에 익숙해있습니다.
제가 글에서 언급한, 책을 싫어하는 작은 애는 넓은 의미에서 난독증 뇌를 가진 아이입니다.
님께서 말씀하신 환경적인 요소도 아주 중요합니다.
다만, 난독증과 관련된 뇌과학 영역에서 이러한 연구가 이미 진행되었기 때문에
제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와 싫어하는 아이는 타고난 성향(뇌구조의 차이)이라 자신있게 말씀드릴수 있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번역서은 아직 출판 진행중이고
조만간 <백만장자에서 난독증이 많은 이유>로 출판될 예정입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사랑받기위해 알게 모르게 스스로 체득한 것이 아닐까하는....^^
끊임없는 논쟁 중에 있지요. 인간의 능력과 기질과 행동발달이 얼마만큼 타고나거나 후천적으로 형성되는가 하는 거.. 저는 직업상 후자에 많이 동의하는 편이지만, 수많은 논리와 경험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가끔 천성의 승리에 완전 두 손 들고 싶어지는 때가 있을 정도로 그 천성이 어떻게 강화되고 억눌려지는가는 미묘한 듯해요.
누구는 책을 좋아하도록 누구는 책보다는 행동으로 발휘하도록 타고났다는 언급들은, 잘못된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그렇게 (부모들도 알지 못하는 새에, 여러 환경적, 시간적 등등의 조건들 속에서) 강화되어왔으니 반대 방향으로 아이를 억누르기보다는 지금까지의 그 상황을 인정하겠다는 말로 저는 이해해요.(물론 쑥에서 소통하는 어휘가 다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마도 어떤 분은 그렇게 타고났으니 나도 할만큼 다했다는 뜻으로 쓰고 계실지도 ^^). 유형짓고 낙인찍지 않되, 아이의 성향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은 한국의 부모들에게 꼭 필요한 자세이기도 하구요 ^^
여튼 말씀처럼, 명백히 타고나는 것이 무언지간에 부모의 태도, 삶의 자세, 교육방침,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다른 두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서로 다르다는 것이 접근 방법이나 속도, 대응방식의 차이이지, 기질 때문에 누구는 글과 책만을 좋아하고 누구는 손놀림-과학실험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됬어요. 다만, 유전과 선천성을 거론할 정도의 다른 기질 차이라면 앞으로 유전이 아니라도 더 각자의 방향으로 발전할 거고, 그만큼 부모가 각자를 독립적으로 보고 다르게 대할 수 있으면 좋겠지요. 짧게 쓰려던 것이 지루하게 늘어졌네요. ㅎ
오른팔이 없으면 왼팔이 그 잠재된 능력을 발휘해 오른팔의 역할을 충분히 해 내겠지만 오른팔이 있는 상황에서 왼팔에게 그 역할을 감당시키려고 해야 할 강한 동기는 없으니까...
막내에게 첫째의 역할을. 첫째에게 막내의 응석을 받아내려는 강한 동기가 없는 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네요.. ^^
환경요인 맞습니다. ^^
그런데 그렇게 첫째로 태어나는 것도 외동으로 태어나는 것도 타고난 영역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말씀들 하신게 아닌가 싶어요. 어느 글을 보고 그러시는지 몰라서 우매한 댓글일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