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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개월+21]이중섭 이야기

  • 김상민
  • |
  • 2001-11-08

1!@#$
[2001년 11월 8일 목요일]

비언어극은 아니다. 어느 한 작품을 표현한 부분에서는 배우들의 장난끼 섞인 의성어들과, 습관적으로 튀어나오는 말들인지..아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주 짧은 의미를 돕는 대사가 있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언어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려는 연극은 아니다.
그저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듯..마음으로의 대화를 통한 따듯한 정서를 느끼면 그만이다.

솔직히 공연을 보러 가기 전 많이 망설였다.
예전에 마임극 "시계는 아침부터 똑딱똑딱"을 보러 들어갔다가 "엄마! 시계다!"하는 조용한 분위기를 깨는 소리에 공연 시작 5분만에 후다닥 아이를 들쳐안고 나온 기억때문에 비언어극이라는 소리를 듣고 과연 견딜 수 있을까..걱정이 많았다.
더군다나 관람연령도 8세라고 적혀있어서 갈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잠시라도 좋으니 그저 이중섭 작품에 대한 느낌만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기를 바랬다.
떠들면..데리고 나와야지..각오까지 하고 결심.

잠든 아이를 들쳐안고 티켓박스에서 40분 가량을 기다려 표를 끊었다. 그것도 바로 뒤에서 매진이 되었기에 가까스로.

4시 공연이었지만 40분이나 일찍 가서 5층에 설치된 작업자들이 공연을 위해 준비했던 과정 중의 오브제들을 둘러보고..눈치를 보면서 표를 끊었다.
역시나 아이의 입장에 난처해하는 관계자들을 설득하고..설득하고.
"맨 앞에 앉아서 떠들면 바로 데리고 나올께요"
"그렇더라도 배우들 공연에 방해가 되서 안되요"
"공연 많이 봤던 애라 괜찮을 거에요. 현지야~ 조용히 할 수 있다고 약속할 수 있지?"
"네"
"공연 보지 말고 그냥 갈까..?"
"아냐..볼거야!"
"그럼 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해야되지?"
"떠들면 안되고 조용히 봐야되요"
결국엔 관계자는 아랑곳 않고 들어가도록 허락이라도 벌써 받은 것처럼 아이에게 주의를 단단히 주고 있는 모습때문이었는지 아이와의 재다짐을 확인하고 나서 표를 끊을 수 있었다.
뒤이어 온 아이들도 5~6살 되어 보였는데 관계자가 역시 우리에게 했던 말을 했지만 그네들도 다짐을 받고 표를 끊은 모양이다.

데스크에 이중섭의 작품들을 프린트해서 모아놓은 스케치북 한권이 있었다.
미리 준비도 못한 채 데리고 왔기에 그곳에 앉아 한장 한장 넘기며 소재를 찾아 그림의 제목을 알려주며 주제를 흘리듯 얘기해주었다.
이중섭의 그림은 제목을 기억하기가 참으로 쉽다.
공연장 안에 입장한 후 영상으로 시간의 간격을 두고 돌려주던 이중섭의 작품들을 보며 현지에게 금방금방 조금 전 보았던 작품들의 제목과 소재를 다시 한 번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가 쉬웠으니 말이다.

파도소리와 동떨어져 있는 듯한 하얗고 작은 고무신 한짝..그리고 종이 한장.
뚫어지게 쳐다본다..반으로 접는다..신문을 읽는다..머리에 쓰면서 비를 피한다..고깔모자를 접어 쓴다..다시 종이배를 접는다..무엇인가를 실어 떠나보낸다..혼자서 움직이며 저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종이배의 생명력에 놀란 마음으로부터 우리의 연극보기가 시작되었다.

갈비뼈가 드러난 것 같은 소와 소들의 싸움.
동심으로 가득찬 노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즐거움으로 웃음을 전해준 군 동자도. 어린시절 우리의 놀이를 하면서 넘어지고..도망가고..하늘을 날듯..물 위를 떠다니 듯..(공연 전 아이들과 물고기들이 노는 모습을 봤기 때문인지 나뭇잎을 타고 노는 아이들을 보며 현지는 물고기를 연상시킨다)..물속을 거닐 듯..유유하고 부드럽게 가슴 속 동심을 끄집어 낸다.
소리의 인상이 강한 달과 까마귀..노랗고 커다란 달과 까마귀의 그림자가 어우러져 군상을 이룬 모습이 마치 그림을 직접 보고 있는 듯.
전쟁의 의미를 담은 가난한 사람들과 배고픔에 지쳐있는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는 게.
슬로우모션의 유희로 행복을 꿈꾸게 하는 가족.
무대가 가려지고..그림자들이 춤을 춘다..달구지를 끌고 길을 떠나는 가족..물고기..아이들..
한쪽 구석 외로움과 상처에 물든 한 사내의 허탈한 비행이 시작된다.
하얀 고무신은 허망한 비행기가 되어 멍든 정신을 그립게 한다..그러다 찾은 나머지 한짝의 고무신..이제 제모습을 갖춘 하얀 고무신이 고이 자리를 잡고 주인을 기다린다.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환한 아이가 사내가 떠나보낸 종이배를 쓰고 그를 맞으러 온다..그들은 도원으로 들어가 행복을 꿈꾼다.

이중섭의 고뇌하는 모습과 대조되는 밝은 느낌의 아이들. 마치 현실에서 다른세계로 넘나드는 듯한 장면의 전환을 이해하기에 3살은 너무 어렵다.
그림속에 감춰진 의미를 풀어 보여주는 작품을 판단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더군다나 잔잔한 음악과 소리만으로 이루어진 전반적인 공연이 지루할 법도 하고..
한시간 넘는 시간을 입을 닫은 채 있기도 대단한 인내를 필요로 한다.
공연 경험이 많은..그것도 다양한 경험을 한 어린 아이라면 몰라도 왠지 어린애를 데리고 들어갔다간 부모 속이 오히려 더 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현지가 부쩍 컸음을 느낀다.
어느 정도 참을 줄도 알고..한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뒤척이는 현지에게 '나갈까..?'하고 물었더니 "안가"하는 짜증섞인 작은 소리만 냈을 뿐 사탕을 달라고 조르지도..특별한 소리를 내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앞줄에 앉아 장난을 치며 연극을 보던 아이들은 관계자의 감시(?)에 계속 지적을 당하면서도 장난을 치는데 반해 현지는 지루하면 엄마 무릎으로 자리를 옮겨 고개를 묻고 있다가 무슨 소리라도 나거나 빛이 환해지거나 하면 얼른 고개를 관심을 보이다 자기 마음에 들기라도 하면 얼른 일어나(좌석의 높이도 있었고, 키가 작아서 현지가 일어나서 봐도 내 앉은키 만큼 밖에 안되었기에 일어나서 봐도 내버려 두었다) 고개를 뺴며 좋아했기에 조바심을 냈던 엄마의 마음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공연을 보고 나온 후 "엄마! 이 물고기!!" 하며 도자기로 만들어 놓은 물고기를 보며 눈을 반짝거리길래..나도 아기자기하면서 왠지 이중섭을 조금이나마 곁에서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설레임 때문에 예쁜 파란색 물고기를 샀다.

거리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면서 하는 말 "엄마 이거 재미없어"
집에 돌아와서는 아빠에게 "어린왕자"를 봤다고 한다. 어린왕자 노래를 흥얼거리며..
"이중섭그림 그리자"고 쫓아다니면서도 오늘 본건 어린왕자라니..
어린왕자와 오늘 본 노란 아이들의 움직임이 비슷해서 그런 생각을 갖은 모양이다.
"현지는 이중섭 아저씨 이야기보면서 뭐가 제일 기억에 남아?"
"오빠들하고 #%*@$"
"엉? 그게 뭔데?"
(인형들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장면을 보여주려고 하면서)"이렇게 했던거 있잖아"
"아~ 인형들이 바람처럼 움직이던거?"
"응"
"인형들하고 사람들이 어떤 색이었는지 기억나?"
"노란색"
"왜 노란색이었을까..?"
"몰라"
"그 노란색이 황토빛이야..인형같은 아이들은 벌거벗은 거고.."
"황토빛?"
"그래..현지 누루 황(黃)! 알지? 그 누루가 노란색이거든? 노란흙빛이 황토빛이야. 행복한 색이지"
내가 기억했던 이중섭은 억센 소와 노란색과 작품마다 흘려 적어놓은 이름이 전부다.
하지만 오늘 공연을 통해 느낀 이중섭은 따뜻하고 맑은 사람이었다. 그의 삶과 문제가 어쨋던 간에 내가 느낀 이중섭은 순수한 사람이었다.
황토빛 은은한 아이들을 비추는 황토빛 햇살..따뜻함..
노란색 밝은 빛이 마음으로 스며든다.

이중섭 갤러리


이중섭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복사가 금지된 사이트이기에 링크를 시키지 않습니다(혹시 사이트 주소를 올리는 것조차 불법이라면..알려주세요 삭제할께요).
http://bull.new21.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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