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꽃 환장하게 흐드러졌네 전북임실 섬진강에서 김용택(시인) 매화꽃 피면/그대 오신다고 하기에/ 매화더러 피지 마라고 했지요/ 그냥, 지금처럼/피우려고만 하라구요/ 며칠 전 섬진강 하동부근에 사는 어떤 여인의 편지를 받고 써 본 시 ‘그리움’ 이다. 꽃이 피어버리면 내 님이 오셨다가 쉬이 가버리니, 기다리는 마음으로 봄을 보내게 해달라는 연인의 노래다. 그렇다. 섬진강의 꽃 소식은 찬바람 찬 물결 위에 어리는 님의 얼굴 같이 화사한 매화꽃으로부터 온다. 섬진강에 매화꽃은 ‘핀다’고 말하기보다 ‘흐드러진다’고 말해야 맞는 말이다. 섬진강 하류는 강 건너와 이 건너의 도가 다르다. 화개 나루를 건너면 전라남도 구례와 광양이고, 화개 장터가 있는 곳은 경상남도다. 화개장터에서 하동까지 길을 사람들은 하동포구 70리라고 한다. 봄 봄 봄이 오면, 강물이 봄을 실어 세상을 적시면 화개장터 건너 구례에서 광양시 다압까지 수 십리 길, 집집마다 골짜기마다 큰애기 속살 같은 매화가 희뿌연하게 피어난다. 강 이쪽과 강 저쪽 모두 산자락 강 언덕에 꽃, 꽃, 환장하게 매화꽃이다. 층층이 산을 타고 오르는 작은 다랑이 논과 논 사이 코끼리 몸뚱이보다 크고 검은 바위들을 배경으로 하얗게 피어 있는 매화, 강 언덕 푸른 강물과 흰모래 깔린 강변을 배경으로 피어 있는 매화 꽃, 꽃, 꽃, 이 환장한 봄날의 매화꽃, 바람이라도 불어보라지, 바람에 날리는 흰 꽃 이파리들을 보며 어찌 인생을, 사랑을, 노래하지 않고 견디겠는가. 어찌 환장하지 않겠는가. 어찌 홀로 저 꽃을 견딘단 말인가. 섬진강에 어찌 매화뿐이랴. 매화가 질동말동하면 산동 고을에 샛노란 산수유 꽃피고, 산수유 꽃 지고 나면 산마다 골짜기마다 연분홍 진달래요, 새하얀 물싸리 꽃이요, 허어, 저 것 봐라 저 산에 벚꽃이요, 골짜기를 타고 오르며 배꽃이요, 사과 꽃이다. 한 꽃이 피었다가 여기서 지면 다른 꽃이 저기서 핀다. 내가 말을 하기 전에 꽃은 피고, 내가 꽃이다 꽃 봐라 저 꽃 좀 봐라라고 말을 하고 나서도 꽃은 핀다. 생각을 하기도 전에 꽃은 저기서 피고, 생각을 하고 나서도 저기 전 강 언덕에 꽃은 핀다. 저것 봐라! 저 마을 복판에 느닷없이 피어 있는 산수유 꽃 보아라! 아! 꽃 사태다. 마을 마다 집집이 울 너머 꽃 사태다. 저 환장하게 눈부신 봄날의 저 꽃들도 꽃이지만 섬진강 악양 벌판에 푸른 보리들은 또 어찌할꼬. 몸살나겠네. 바람나겠네. 그러하니, 어찌 꽃보고 지금 빨리 피라고 닦달해서 님을 부르겠는가. 싱숭생숭 님 기다리는 그 기다림, 그리움을 견디는 게 낫지. 사람들아! 오! 이 거친 세상 세월을 가는 불쌍하고 가련한 인생들아. 매화꽃이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날리는 봄날에 섬진강 강가에 서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는 보았는지. 사람 사는 일이 대관절 그 무엇이기에,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살면 몇 백년을 산다고 그리 부질없는 몸짓들을 하는지. 전쟁과 살육과 테러와 파괴, 끝 모를 인간들의 탐욕으로 죽어 가는 땅과 하늘, 문명의 탈을 쓴 이 야만의 시대여! 불쌍하고 불쌍하도다. 꽃피고 지는 일 한낮 봄날에 꿈이라네. 우리 세상사는 피었다가 지는 저 꽃같이 한 순간이라네. 그대들이 짊어진 그 무거운 짐들, 저 매화나무 아래에 다 부려라. 꽃잎 뜬 강물에 그대 두 손에 쥔 것들 다 놓아버리고 가난한 몸과 마음으로 서서, 매화야! 매화야! 섬진강에 피고 지는 매화야. 그렇게 한번 속으로 매화를 불러 보라. 그러면, 그렇게 하면 그대들 마음 어느 구석에서 화사한 홍매 한 송이 벙그러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꽃피고 새가 우는 이 좋은 봄날에 피고 지는 꽃 한 송이 없다면 이 봄이 어찌 봄이고, 이 생이 어찌 생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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