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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도움을 청하라’고 가르치는 건 과잉보호가 아닐까요?

  • 이원진
  • |
  • 2015-08-13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도움을 청하라’고 가르치는 건 과잉보호가 아닐까요?


저 자신을 포함한 많은 부모 세대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도 분명왕따나 학교 폭력은 존재했을 것입니다. 그때에도 왕따라는 표현을 사용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제가 다니던 학교에도 눈에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따돌림을 당하던 아이가 한두명쯤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 당시만해도 선생님을 비롯한 어느 누구도 공개적으로 왕따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왕따 문제가 지금과 같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지 않을 정도로 미미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인터넷 등의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아 모르는 채로 지나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왕따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데 급급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당시의 관점으로 오늘날의 왕따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바라본다면 “옛날부터 있던 일인데 왜 갑자기 호들갑이냐”며 혀를 찰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오래 전에 학교 생활을 했던 부모 중에는 “아이들이 커가면서 다 거치는 일인데 뭘 그렇게 큰 문제라고 떠들어대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얼핏 그럴듯하고 쿨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런 무지한 사고가 예전에도 분명 존재했을 왕따 문제를 방치하여 지금의 더 깊고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시킨 주원인이 아닌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도 왕따 문제는 존재했지만, 도움을 청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어도 별문제 없이 스스로 해결해가며 잘 지냈고 지금도 그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무엇보다도 그 당시에는 왕따를 당한 아이들의 심적 상태나 그로 인한 후유증, 곧 학창 시절 입은 상처로 인해 훗날 사회생활을 하며 겪었을 고통이나 부작용 등에 대해 지금처럼 활발한 조사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만큼 피해자들에 대한 주변의 관심도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반인들은 왕따 피해자들에 대한 정보는 물론 그들의 존재여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들어 신문이나 그 밖의 언론을 통해 왕따 피해자들의 자살이나 기타 여러 문제를 접하는 어른들은 ‘우리나라에서 왜 갑자기 왕따 문제가 늘어날까? 의아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많아진 것이 아니라 이제야 드러난 것입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비롯한 인터넷과 그 밖의 미디어가 급격히 발달하면서 왕따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고, 그래서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사회가 피해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그들이 더 이상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에 눈길을 돌리게 된 것은 천만다행입니다.

 


둘째, 옛날 아이들이 접하던 세상과 요즘 아이들이 접하는 세상 사이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큰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제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지금처럼 어린 학생들에게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간단한 예로, 지금처럼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모든 아이가 학원을 다녀야 한다든지, 부모의 경제적 여건에 의해 아이들간에 비교 우위가 정해진다든지 하는 살벌한 사회의 분위기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 말은 곧 예전에 비해 지금의 아이들이 훨씬 더 냉정하고 혹독한 세상에서 하루하루를 마치 전쟁을 치르듯이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같은 왕따피해라고 해도 비교적 마음에 여유가 있고 평안하던 예전과는 분명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만큼 예전에 비해 지금 피해 학생들이 당하고 있는 괴롭힘이나 상해의 정도가 훨씬 더 잔인해지고 양상도 다양해졌다는 사실을 어른들은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도 다 겪었던 일이니까. 성장과정의 일부니까’라고 쉽게 넘겨버리기에는 지금 우리 아이들의 심적 상태가 여유 있고 건강하지 못하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어른 세대가 위세대로부터 배우고 물려받은 ‘어려움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어야 강한 사람’이라는 교훈을, 지금의 왕따 피해학생들에게 똑같이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묵묵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문제에 처했을 때는 입을 열어 도움을 청하는 것이 현명하며 그것이 고자질이 아닌 용기라는 것을 구분하게끔 가르치는 일도 부모의 역할입니다. 왕따 문제를 그저 아이들이 자라며 일반적으로 겪을 수 있는 일쯤으로 치부하고 그 심각성을 간과하는 태도야말로 가해 학생들에게 힘을 실어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그 수위를 날로 높여가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왕따 문제를 우리 사회에서 뿌리 뽑기 위해서는, 더 이상 우리 주위에 고통 당하는 피해 학생들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어른부터 지난 과거 이야기만 자꾸 꺼내며 비겁한 침묵을 정당화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금보다 훨씬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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