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을 떠나기 전에 남편이 내게 은근슬쩍 질문이라는 듯이 물어온것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동의 해 주었으면 한 것, 혹은 좀 강요하고 싶긴 한데...결코 강요할 수 없는 것. 그것은 바로 입양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시는 분들도 있으시죠.ㅎㅎ
나: 뭐?
막상 떠나는 날이 정해지니 약간 방향을 바꾸고서는 그런다.그럼 가서 살면서 생각 해 볼래...라고.
나: 응...그럴께.
나도 사람인데...새로운 세계로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데 늘 같이 손잡고 살아얄 사람에게 무조건 싫타고 할순 없지 않나..ㅎㅎ 이민 떠날때 미운 형님이 당신 아이를 나중에 보내겠다고 보내도 되냐도 아니고 보내겠다고 하니 현명하신 시어머님이 그 이야길 듣고 떠나야는 작은 며느리에게 그랬다고 하잖았나. 지금은 예~ 형님. 하고 떠나고 나중에 거 가서는 안 된다고 하라고...이 이야기를 왜 생각이 나는걸까..^*^
나 : 우리 이민 가면 아무래도 교회 가야겠지?
남편 : ...
참고로 우리는 불교 신자이다. 남편은 나처럼 응...도 아니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이민을 왔고 토론토에서 4개월은 꿈속을 걷듯 따스한 캐나다 햇살속을 걷듯 그렇게 걸어다녔다. 여기저기 쏘다니느라 일요일도 시간이 모자랐다. 그러니 교회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으면 일요일은 가족끼리 똘똘뭉쳐 보내기에도 시간이 짧았다. 입양에 관한 이야기도 은근슬쩍 회피하기 시작했고, 둘째가 오고 가족이 불어난후 남편조차 입양에 관해 나에게 말할 시간을 점점 놓치고 있는듯 했다. 그렇타고 남편이 그부분을 완전히 포기한것은 아니였다.외국 친구들과 모이면 아직도 자긴 그럴 계획이라고 당당히 혼자 밝힌다. 그럼 모두들 나를 처다본다.나는 아직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빙그레 웃어버린다.
이제 이민온지 7년이 되어간다.결론적으로 말하면 입양이란 단어는 점점 내가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두 아이를 잘 키울 자신도 없거니와 더군다나 다른 아이를 데리고 그 아이가 한국 아이든 캐네디언이든 중국인이든 데리고 와서 그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내겐 없다. 시간이 늘 나를 휘몰라치듯 지나가는데 두녀석에게도 나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엄마고 아내이고 나 자신을 처다볼 여유도 없건만...내 남편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나를 믿기에 내게 그런 기대를 하는걸까? 이제는 조용히 포기 할 때도 되었건만.
이민온지 5년 후부터는 종교에 대한 생각에 흔들리기는 했다. 대부분 종교를 바꾸는 사람들은 아이에게 친구가 필요해서...라면서 교회로 발걸음을 옮긴다. 어떤이는 아이에게 친구가 필요해서라면서 결론은 자기 자신의 친구를 만나기에 정신이 없다. 말꼬리를 내리면서 교회로 향할 필요는 없다. 그냥 당당하게 내 친구 만나러 간다고 하면 되는거지. 그렇치않은가? 아이 때문에 나 자신의 친구 때문에 나 역시 한번씩은 흔들리고 있고 지금 상태로 모임도 한번 가질수 없고 종교라는 의미도 없는 내 종교, 수양이 덜 된 사람이라 이러는것인지도...오타와에 불교인들을 위한 공간이 전혀 없다. 종교가 나를 방치하고 흔들리게 한다고 생각한다...역시 수양이 덜된 사람이다. 나란 사람은...이런 종교를 영원히 품에 안고 간다는 보장도 할 수 없다. 내 종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고 나 스스로 일어선다면 그도 좋코, 어떤 종교를 새롭게 갖게 된다면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당당하게 그곳을 향해 가고 싶다. 그러나, 아직도 오늘도 난 불교 신자인듯 싶다. 아니 어쩌면 난 내가 살아가는 내 삶이 어떤 작가의 말처럼, 그분은 글쓰기가 자신에겐 삶이요 종교라고 했다. 어쩌면 나도, 오타와에서의 내 삶 자체가 나에게는 아직까지는 종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오늘 다시끔 하게된다.
어머머...웬 종교 이야기? 거기서는 절대로 종교 이야기 안 한다면서요...맞습니다. 맞아요. 여기서는 서로 종교가 다르면 초대를 하지도 않고 초대에 응하지 않는 경우도 많으며 심지어 아영이 친구들의 경우 같이 어울리지 못하기도 하더라구요.무거워서 그리고 감히 하지 않는 종교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지난주에 "신년 축복 콘서트" 에 다녀온후 그냥 가볍게(?) 이런 이야기 종교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는 피가 꺼꾸로 도는 느낌이어서 한번쯤 저 자신에 대해 정리를 해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도 아니 다니면서 교회서 하는 행사에 간다는게 어쩜 뻔뻔스러운 일인지는 모르나 다른것도 아니고 콘서트이니 이번엔 와도 되지않겠냐는 딸의 친구 엄마의 조심스러운 초대가 있었고 또, 원주민 선교를 위해 청소년을 위한 후원 기금을 마련한다는 의미를 가진 콘서트라 그래 가도 될것 같다는 생각으로 다녀왔습니다.
전태식 전도사의 신년 축복 콘서트
저희 오타와 한인감리교회에서는 2007년 새해를 열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CCM사역자 "다윗과 요나단"을 초청하여 온 가족이 함께 찬양을 통해 축복을 누릴 찬양 콘서트를 준비했습니다. 오타와의 교민 모두가 함께 참석하시어 큰 기쁨을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다윗과 요나단 대표곡 - "친구의 고백", "요한의 아들 시몬아", "주님 손잡고 일어 나세요", "오늘 이 하루도"의 10여종의 음반 발표
기획; 캐나다 예향문화
후원; 시사 한겨례, 크리스천 포스트, 중앙일보
일시: 2007년 1월 20일(토) 오후 7시
장소: 오타와 한인감리교회
식구가 그리 많치 않은 자그만한 아영이 친구네 교회로 제가 가끔 한국 신문을 전하기도 하던 교회입니다.생각보다 큰 강당에 도착하니 간이 철렁 내려 앉더군요.이렇게 큰 강당에 사람들이 적게오면 어쩌나..하고요. 참 별 걱정을 다하죠. 교회 식구 수만큼 제가 신문을 전하다보니 그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그치만 저 같은 비 죵교인들,이웃 교회분들,이웃 성당분들이 자리를 많이 채워 주셨고 시차 적응에 다소 힘즐게 보였던 전태식 전도사님도 마이크 앞에 서시니 생생하게 살아나시며 제겐 즐거운, 교회분들에겐 하나님 사랑 가득찬 3시간을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비 종교인의 입장에서도 제겐 즐거운 시간이 될수 있었던 것은 그분 말씀중에 상대에게 힘을 주는 말씀과 상대에게 복을 주는 말씀이 유독 귀에 들어왔습니다.이미 한국분들에게 익히 잘 알려진 분이시니 다른 부분은 생략하고 그분이 오타와 주민에게 주는 "돈 벼락 맞을껍니다" 라는 덕담이 어찌 그리 좋은지...
당신을 부르시면 어디든 가신다는, 나 계속 이거 할꺼라는 말씀이 제가 조금 이해하고 알고 있는 사람들의 뜨거운 피의 흐름에 동의가 되는 그분 삶. 지금 생각해도 "사람이 꽃 보다 아름답다" 라는 그 말을 떠오르게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콘서트가 끝나자마자 저는 남편에게 맡겨놓은 아들 생각에 얼른 집으로 왔습니다. 차도 한잔 마시지 못한채...콘서트 내내 생생하셨지만 마이크에 불이 꺼지고 파김치가 되셨던 그분에게 하고픈 말도 못하고 왔습니다. 돈벼락은 은혜롭고 감동적인 CCM 찬양가수로서 소중한 일을 하시는 전도사님 부터 맞으시고 그리하여 어딜 가시든지 여유로운 전도,여유롭게 신도들과 사랑 가득한 만남 가지세요. 라는 말이 감히 하고 싶었는데...말입니다.
끝으로 참으로 오랫만에 따라 불러본 사랑(고린도전서 13장 4절 - 13절)과 제가 찍은 예쁘게 잡힌것 같아 보이는 한 장면을 올려봅니다.
사랑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도 교만도 아니하며
사랑은 무례히 행치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않고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네
사랑은 모든 것 감싸 주고
바라고 믿고 참아 내며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없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이 세상 끝까지 영원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 중에 제일이 사랑이라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도 교만도 아니하네
사랑은 모든것 감싸 주고
바라고 믿고 참아 내며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없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이 세상 끝까지 영원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 중에 제일이 사랑이라
2007년 1월 25일 - 오타와에서 최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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