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 아동문학가 루이스 새커 (Louis Sachar)의 소설 Holes는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들에 미치는 운명의 힘을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해 보여줍니다. 작품은 주인공 스탠리 옐네츠 4세가 당한 황당한 사건으로 시작되지요. 길을 걷다가 난데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운동화 한 켤레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습니다. 자선바자회에 기증된 야구선수의 운동화를 누군가 훔치다 들키자 밖으로 내던졌고, 근처를 지나던 스탠리가 엉겁결에 도둑 누명을 씁니다.
텍사스 주의 그린 레이크라는 비행 청소년 교화 캠프로 보내진 스탠리는 그곳에서 이 우연한 사건 뒤에 도사리고 있는 운명의 사슬을 발견합니다. 캠프에 갇힌 소년들은 사막 한가운데서 하루 종일 구덩이를 팝니다.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스탠리는 제로라는 아이의 도움을 받습니다. 매일같이 구덩이를 파는 일은 사실 심신단련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캠프의 여자 소장은 자기 조상의 보물 상자가 사막에 묻혀 있다고 믿고, 교화를 가장하여 아이들을 이용해 보물을 파려는 것입니다. 이 상자에는 스탠리, 제로, 소장의 선조들로부터 시작된 악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구덩이를 파는 일은 묻혀있던 과거를 파헤친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습니다.
과거사는 이렇습니다. 스탠리의 고조부 엘리아는 일찍이 라트비아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어요.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집시 예언가 마담 제로니의 도움을 받아가며 갖은 노력을 했습니다만 사랑했던 그녀가 사리분별도 못하는 아둔한 여자임을 알아내고는 홧김에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그 와중에 고조부는 충고의 대가로 마담 제로니에게 지킬 약속을 잊어버림으로써, 그녀의 예언대로 자손대대로 저주를 당하게 된답니다. 그 예로 그의 아들 스텐리 옐네츠 1세는 힘들게 모은 재산을 키싱 케이트 배로우라는 악명 높은 여자 강도에게 모두 빼앗기고 말지요.
케이트 배로우 역시 기구한 삶을 살았던 여자입니다. 그린 레이크 마을의 학교 선생님이었던 그녀는 독특한 맛의 양파를 파는 흑인 샘과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를 시샘한 돈 많은 백인 챨스 워커가 샘을 호수에 빠뜨려 죽이자 복수심에 불타 강도로 돌변합니다. 그녀는 스탠리 1세로부터 빼앗은 보물 상자를, 샘이 죽은 뒤 극심한 가뭄으로 사막이 되어버린 그린 레이크 어디엔가 묻어 버립니다. 마침내 그녀를 찾아낸 찰스 워커가 상자의 행방을 묻자 케이트 배로우는 “너와 네 자식들이 백 년 동안 파내도 결국 찾지 못할 거야. 어디 삽질을 시작해 보시지”라고 빈정대며 죽어갑니다.
어느 날 제로는 캠프에서 도망치고, 스탠리도 캠프를 빠져나와 목숨을 걸고 그를 찾아 나섭니다. 사막 한 가운데서 만난 두 소년은 엄지손가락 모양의 산에 올라가 우연히 발견한 양파를 캐 먹으며 연명하는데 그 양파는 바로 샘이 기르던 것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탠리는 운동화를 훔친 장본인이 제로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스탠리는 할아버지에게서 듣던 노래를 제로에게 불러주는데, 사실 그것은 엘리아가 마담 제로니에게 불러주기로 약속했던 노래였습니다. 제로가 마담 제로니의 후손임이 나중에 밝혀지므로, 조상들 사이의 약속이 결국 뒤늦게 지켜지게 된 셈입니다.
모르는 사이에 선대의 저주가 풀리고, 다시 캠프로 돌아온 두 소년은 마침내 “스탠리 옐네츠”라는 이름이 새겨진 보물 상자를 찾아냅니다. 부산일보에 <영화 & 논술>을 연재하는 윤희수 교수는 이 작품을 소개하면서 “사물이나 현상의 겉모양만을 슬쩍 보아 넘기는데 익숙한 우리들에게, 사소한 일일지라도 그 이면에 깊은 의미와 역사성이 감추어져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미덕은 퍼즐을 맞추듯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발랄한 상상력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제 남편이고요...이 글은 그 양반 허락 없이 제가 개조(?)해서 올렸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쓴 겁니다.^^ 이 소설은 현재의 우리가 우연이라는 묘한 장치 속에 우리의 부모의 부모, 또 그 부모의 부모가 엮은 고리 속에서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10대들이 주고받는 짤막하고 생생한 영어대화가 특징으로 미국 초등학생 사이의 최고 인기 소설가운데 하나랍니다. 2003년에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두꺼운 장편을 읽기 시작하는 자녀를 두신 분이라면 책과 영화를 구해서 한 번 시도해 보시지요.
추신: 저작권은 걱정 마십시오. 신문사 교육팀장이상관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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