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기타와 장발, 생맥주와 청바지가 젊음을 상징하던 70년대의 청년문화를 회고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은 바로 70년대 청년들을 열광하게 하고 기존 체제의 억압에 대한 자유의 정신을 발산하게 한 통기타 가수들이다70년대 대표적 통기타 가수들의 이름을 나열하라고 하면 언제나 윤형주라는 이름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러니까 현재 50,60세 전후에 해당하는 세대들은 트윈폴리오 윤형주와 송창식이 부른 웨딩 케익, 축제의 밤, 어제 내린비, 하얀 손수건등의 숱한 서정적인 선율을 비롯해 이 장희, 조동진, 양희은등 70년대를 풍미했던 당시의 포크 가수들의 노래를 정신적인 자양분으로 삼아 그 시대의 낭만과 지성, 젊음을 분출했다.
서정적이고 순수한 가사와 선율, 그리고 무공해 같은 미성으로 70년대 수많은 여학생들을 열광하게 한 소위 오빠 부대의 원조를 창출했던 윤형주씨의 살아온 세월에 대한 이야기를 크게 간추려보면 인기 절정의 가수->대마초 사건으로 입건->구치소에서 믿음의 체험을 얻음->전도와 사역, 사회 봉사, 광고 기획사 대표, 방송인으로 활동중.대략 이 정도로 현재까지의 삶의 줄거리를 열거 할수 있겠다.
99년에 오타와 한인 교회에서 처음 찬양과 간증의 밤을 가진 윤형주씨는 그로부터 만 7년이 지난후 지난 14일(수) 장소가 예전과 달라진 오타와 한인교회에서 찬양과 간증의 밤을 다시 가졌다.이번 오타와 방문은 그에게 아주 특별하다.
오타와에 거주하는 장녀 윤선명(남편 새새명 한의원 류 은규 원장)씨가 결혼 후 4번의 유산을 거듭하는 힘들고 어려운 시련을 겪은 뒤 드디어 7년만에 건강한 아들을 낳아 손자를 보게 된 할아버지 윤형주씨로서의 즐거운 방문행이다.
이 날 간증에 통기타를 어깨에 둘러매고 등장한 윤형주씨는 자신이 20대 초반에 이미 더 이상 오를곳이 없을정도로 인기와 명성, 돈을 한손에 거머쥐다가 대마초건으로 인생의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던 과거의 기억을 회고하며 입건후 서대문 구치소에서 인생의 새로운 전환을 맞게 된 신앙적 체험을 들려주었다.“어머니의 기도와 찬송은 자식들을 돌아오게 한다. 기도를 쉬지 마라”구치소에서 절망과 파멸, 수치와 저주로 죽음을 계획하던 어느날 그의 어머니는 성경책을 건넨다.그러나 이미 삶의 희망을 포기한 그는 성경책을 감옥방 한구석에 내동뎅이쳤다. 그러다 다시 성경책을 집어들고 첫장을 펼친 그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의 성경 첫 구절을 접하는 순간 가슴에 강렬한 신앙적 체험을 느끼게 되었다.서대문 구치소에서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는 그는 인기와 명성, 돈이 가져다주지 못했던 마음의 평온과 영혼의 기쁨을 믿음의 체험을 통해 얻게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끝없는 기도와 찬송은 자식을 돌아오게 한다. 좌절과 시련, 고난속에서도 자녀들이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해야 한다”라며 그는 자신이 직접 체험했던 기도와 찬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간증 중에 그는 학창 시절의 재미난 이야기도 간간히 들려주었다.학창시절 그는 가수 조영남과 함께 같은 교회에 다녔는데 선배격이던 조영남씨가 나중에 돈을 갚겠다고 하면서 툭하면 헌금을 꿔달라고 하던가 헌금을 나누어 내자며 꼬드겼다고 한다. 순순히 그 말을 듣고 헌금을 대신 내던 그가 나중에 가수 조영남한테 그 돈을 갚으라고 하자 “그 돈이 네 돈이냐? 그 돈은 이미 하느님 돈인데 왜 네가 갚으라고 해?”라며 위트있는 입담으로 일언지하에 돈 갚기를 거절한 가수 조영남씨와의 이런저런 재미난 추억담도 전해주었다.
손자들에게 가장 주고 싶은 선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손자들이 빨리 자라서 나와 함께 세상을 돌아다니고 싶다. 감동적이고 경이로운 세상을 그들에게 보여줘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꿈과 소망을 줄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다”라며 할아버지가 된 윤형주씨의 손자 사랑을 전했다.
내년이면 통기타 문화가 40주년을 맞아 트윈폴리오 40주년 행사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올해 환갑을 맞이하는 청년 윤형주, 잔인한 세월도 그에게서는 비켜가는듯하다. 추억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영원히 우리들 곁에서 통기타를 메고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을 부르던 아름다운 미성만이 우리들의 기억에 선명하게 각인될 그와의 만남은 젊은 날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한 잔잔한 감동으로 오랜시간 가슴에 머물것 같다. <한카 타임즈 - 김은주 기자>
떡순인이 나는 가끔 수퍼에 전화를 걸어 떡을 몇개 빼 놓아 달라고 부탁을 한다. 조금 늦게 나가면 떡을 구경하기가 별따기라서...ㅎㅎ 어느날 나갔더니 슬그머니 2팩만 내 놓으시는 수퍼 아주머니. 아니, 뭐야.3개 달라고 헸는데. 내꺼 내 놔. 적어도 3팩 정도는 되어야 식구들이 좀 먹을수 있다. 그러면서 결국은 그 식구가 나 혼자인양 내가 젤 많이 먹지만. 나머지 하나를 내 놓으라니 니가 양보 해얀단다.왜? 누가 임신을 했는데...떡이 먹고 싶다고 한단다. 누군데? 윤형주씨 딸...그래? 그럼 줘.
얼핏 나도 들은 이야기가 있으니...그녀가 어렵게 아기를 기다리는다는......
암튼 그날 떡을 양보 했고 간간히 소식을 듣고 있었는데 드디어 아기를 아들을 낳았다. 크게 축하 할 일이다.그녀 선명씨는 서울대 작곡과와 캐나다 맥길대를 거쳐 미국 버클리 음대 대학원에서 뮤지컬 작곡을 공부했는데 맥길대에서 남편되는 류원장을 만났고 오타와로 이사와 자리를 잡고서 이곳 오타와서 임신이 되었다. 그래서 누구는 이곳 오타와서~ 라며 오타와에 힘을 준다.ㅎㅎ
사실, 교회에 다니지 않으므로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 관심은 있지만 아직은 내 길이 아니니...주위 친구들에게 필요 이상의 희망을 주는것 같기도 하고 해서. 그런데 친구는 그냥 넘어가지않는다. 내가 못 가면 남편이랑 가겠단다. 급하게 울집 대표로 차에 올랐다.
좋은 시간이였다. 세월을 비켜가신 저 분이 올해 한갑 맞나 싶고. 친구분이시던 같이 일을 했었던 윤여정 선생님도 생각나고. 친구들에게, 내가 늘 가까이 하는 이웃들에게 그가 축복이고 희망이 되어주는 좋은 시간. 잠시나마 함께 했다.
대천 해수욕장에 가면 그의 기념비가 있다고 한다.우리가 MT만 가면 손바닥이 아프게 박수를 치던 조개 껍질 묶고...가 그곳에 적혀 있단다. 가사는 신나지만 그 가사가 나오는데는 한분의 슬픔이 아픔이 있는 노래였다.친구 네분이랑 같이 놀러 갔는데 마침 여자 네분을 만났단다. 윤형주씨다~라며 만났지만 남자가 늑대가 한마리 더 있는 상황. 윤형주씨가 장보러 갔다오니 벌서 짝이 정해지고 선생님만 홀로...ㅎㅎ 재미있게 놀다가 떠나려는 아가씨들. 친구들을 위해 그녀들을 붙잡아 두느라 그 자리서 바로 만든 노래란다. 우린 MT를 가거나 바다만 보이면 박수치며 부른다지만 선생님에겐 조깐 아픔이 있던 노래. 그리고 MT 이야기가 나왔으니, "우리 때는 MT라는 게 없었으니까 그냥 궁금해서 갔지요. 맏이 선명씨가 대학에 입학한 후 떠난 첫 MT 현장을 그와 부인이 ‘급습’한 것. 케이크와 간식거리를 잔뜩 사들고 나타난 그를 보자 아이들은 바로 사색이 되어버렸단다. 어색한 마음에 얼른 나오기는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전교에 ‘MT 따라온 아빠’로 찍혀 버린 사건이였다고. 먹을것 가져 오시면 좋을것 같은데...나도 나중에 그래 보까..싶은데...^*^
시디,친구에게 보낸다니 싫타고 한다..지금이라도 맘 바뀌면 말씀 하세요~ㅎㅎ
그래서 동네 친구에게 태교 선물로 줄까~합니다.
1집에서 6집 까지의 시디를 가지고 오셨지만 이미 첫날 끝이났고 남은건 6집뿐. 한다면 하는 오타와 주민입니다..ㅎㅎ 이 시디는 한국의 장애인을 위해 그들의 일을 위해 재봉틀을 사는데 쓰여진다고 합니다.
부끄럽지만...한장.
교회를 나오면서 시작된 눈 푹풍은 밤새 집을 흔들었습니다. 토요일 아침에 몬트리올에 가기로 한 약속은 자동으로 취소가 된 상황. 그러나, 아침이 되고보니 언제 그런일이 있으냐는듯. 햇살도 좋코 눈은 조금 내렸지만 더이상 올 기미는 없더군요. 몇나라 공항이 문을 닫았다는게 어젯밤 이야기가 맞져...ㅎㅎ
오후에 몬트리올로 떠났습니다. 미리 그곳에 사시는 분에게 도움을 받아 길을 찾아가는것이니 쉽고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아주 오래된 시가지지만 우리 오타와보다는 휠씬 크다. 일단 같은 구 도로라도 우린 2차선이면 그곳 구 도로는 4차선이다. 비슷한 분위기지만 일단 비교 상대는 못 된다. 그냥 깨깨갱...해야지. 오타와 보다 눈도 더 많은것 같다. 여기서 눈이 지겨워 그랬는데 그곳 가보니 오타와의 눈은 그래도 양반이다. 작은차들은 바퀴를 볼 수 없을 만큼 쌓여있다. 바람도 약간은 매서운듯 하고. 그래서 내린 결론은 오타와는 사람들만 양반이 아니고 내리는 눈도 바람도 양반이구나...ㅎㅎ
장을 보고 맛있다는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오타와와는 달리 가는 곳마다 작더라도 꼭 태극기가 달려있다. 맛있다는 음식점에는 아예 큰 액자에 어린이 한복이 곱게 장식 되어 있고. 오타와 살때는 어딜 가도 외국이라는 느낌이 덜 했는데 몬트리올에 오니 가는 곳마다 한국으로 장식된 것들을 보니 여긴 웬지 외국 같으다. 장을 본 그곳을 떠날때 아줌마 아저씨 드시라며 박카스도 두 병 챙궈준다. 이민와서 박카스 손에 쥐어보긴 첨이다. 아이들은 요구르트 주세요~라며 봉지에 담아 건네준다. 착하게도 생긴 청년들이 하는짓도 이쁘다...우리 몬트리올 자주 갈것 같은 분위기죠..ㅠㅠ
잠깐 바람을 맞으면서 걸어서인지 몬트리올에 다녀오고 몸이 말이 아니다. 아마도 한박스의 김치까지 담아서...남편은 집을 파느라 신경 쓰고 청소하고 그랬던 것부터 쌓여있던 피로로 감기가 온 거란다.스티브를 가져 감기에 걸린후론 한번도 감기를 모르고 살았으니 거의 5년만이다. 감기란게 이렇게 심하게 아픈것인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다. 목이 따갑고, 머리를 누군가 아프게 하는것 같고, 눈을 뜰 수가 없다. 누군 그랬다 뼈 속 까지 아프다고......
그래도 아들이 학교간 사이 잠을 잘 수가 없다 자명종이 울려도 못 일어날것만 같기에. 쉴 시간이 없다. 남편에게 일찍 오라 그러고. 그래도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싶으니 잠이 쏟아졌다.
윤형주씨가 그랬다. 가장 어려운것은 아버지 역할이라고. 휴가도 없고 사표도 못쓰고 아버지란 이름은 죽고 나서도 아이들에게 남고...
몸은 흐트려지고 눈은 감겨도 아이들을 데리려 나간다며 나가면 운전을 할 수 있는게 부모인것 같다.
또, 특히나 엄마는 아빠보다 더. 누워 있음 아이들은? 간식은? 밥은? 그런데 웬걸~ㅎㅎ
평상시에 누나 답지 않았던 아영이도 누나 몫을 단단히 한다. 간식을 다 챙궈주고
엄마랑 같은 공간에 있음 안 된다며 지하로 동생을 데리고 내려간다.
안 가겠다는 동생에게 지하로 안 내려가면 이거 안 줘. 그러니 쪼르르 따라간다.
평상시에 꿈도 못 꿀 일이다. 내려가다가 대낮인데 전등을 켠 모양이다.
누나가 그런다. 그러면 아빠가 돈 많이 내야돼.ㅋㅋ 저런 말도 하다니...
그리고 살며시 와서 이불을 끌어다가 단단히 덮어주고 가기도 한다.
'이거 내가 자주 아파얀다는 말인가?'
다행이도 2박 3일로 징글징글한 감기는 막이 내려간다.
어짜든둥 아프면 안 된다.
아픈척은 하더라도 아프지는 말지어다...^*^
2007년 3월 22일, 윤형주씨를 만난후.
오타와에서 최지연
([email protected])


쑥쑥몰
체험이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