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고 싶지않았다. 1월 6일, 나를 위해 장을 보고 오후 내내 음식 냄새에 돌돌 말려 있기가 무척이나 싫었다. 그렇다고 외식을 할 기분은 더욱더 아니다. 뭐가 그리 큰 일이라고...
가족의 생일 친구의 생일은 끔찍하게 따져 챙기는데 난 왜 나에게는 이토록 심술을 부리는것일까?
나이를 먹는다는게 이제는 마흔이 된다는게 크게 두러운것도 아닌데...사실은 아직도 내 나이는 몇 살 그런거 실감하지 못한다. 이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그렇치만 갑자기 생일이 되니 그것도 마흔번째 생일이라니 뭔가가 목에 턱하니 걸리는 기분을 어쩔수는 없나보다. 아닌척은 하지만 왠지 작년과 다른 마흔이란 숫자 앞에서 머뭇거리게 되고 괜히 무언가를 찾는 사람 처럼 변해간다. 정확하게 무엇을 찾는것인지도 모르면서......
아주 오래전에 같이 일을 했던 김용림 선생님의 초대로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라는 연극을 보았다. 미국 출장중인 남편에게 날아가 아침부터 밤까지 수영하고 책 읽고 테니스 치고 또 밤에도 수영하고. 휴식이 뭔지를 늘어지게 만끽하고 돌아오자마자 직장 동료이자 유일한 나의 남자 친구가 초대장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 소극장 앞으로 한아름의 꽃다발을 안고 헐레벌떡 뛰어갔었다. 라스베가스의 불빛이 눈에 채 가시지도 못했고 서울로 온 짐을 채 풀기도 전에 연극 무대 앞에 앉았고 또 다음 날이면 현장에 나가야는 이런 정신없는 순간 순간이 이어지는 시간에 난 무대 앞에 앉아있었다.
무대는 어두워지고 오십의 엄마는 많은것을 딸에게 토해내었지만 난 그때도 지금도 아무런 기억이 없다. 기억에 남는 대사도 하나 없다. 엄마와 딸, 오십, 바다. 내겐 너무나 머나먼 이야기로 들렸고 난 그때 철없는 겨우 이십대 후반이였다. 내겐 단지 김용림이란 배우만이 보였었다. 그녀의 몸. 코르셋으로 단단하게 꽉 쪼인 그녀의 몸이 비로소 분장실에서 숨을 쉴때 역쉬 선생님이셔...그런 그녀가 엄청나게 프로 다웠다는것. 그리고, 그녀는 훌륭하게 오십의 엄마를 소화해내어 관객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고 친구와 나는 그녀에게 꽃다발을 전해주고 거리로 나왔다는 기억뿐이다.
까마득하게 먼 그때의 일이 새삼스럽게 생각나는것은 아직은 '마흔'이란 나이가 뭔지 모르지만 웬지 '오십' 그때가 오면 지금 같지는 않을것 같다는 막연하지만 그럴것 같다는 생각이 깊이 들기 때문인가보다.
내가 서른을 맞이했던 시간 속에서 난 늘 바쁘고 열심히 살았던것 같다. 나의 서른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그 일에 미쳐있었고, 일에 대한 사랑도, 일에 대한 미움도, 일로 인한 고통마저 모두 다 나 스스로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그리고 아주 어려서 만나 오래동안 사귄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하여 또 다른 멋진 세상이 있음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내 나이 서른에는.
이제 마흔이다. 포근한 집에 딸과 아들이 커가고 늘 남편은 변함없이 옆에 앉아있다. 서른 보다는 모든것이 여유롭고 시간도 천천히 간다. 나에게서 벗어나고 있다는 이야기일까!
나의 마흔은 아마도 두 아이를 바라보는 시간으로 가득할것 같다.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를 바라보는 시간들로 바빠질것만 같다. 하지만 서른때 보다는 휠씬 여유로울것이다. 혼자가 아닌 남편과 함께이니깐.
여자에게 마흔이란 나이는 과연 무엇일까? 특별한 의미는 없는것 같다. 내게 주어진 시간의 한 점일뿐. 단지 조금 더 굵은 한 점일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잠시 스칠뿐이다.
생일날 딸과 함께...
생일날 아들과 함께...그런데 아들은 어디에?
아들~여기!
식구들에게 모두 차에서 기다려달라며 아주 조그만 겨우 초만 세울수 있는 것으로 딱 네개 구입했다. 식구들이 수퍼에 함께 들어가면 정말 내가 원하는 이 조그만 것들을 고르지 못할것 같았기 때문에. 작지만 내겐 너무 이쁘고 꼭 나 같아 보이는~ㅎㅎ
친한 동생이 꽃다발을 들고 찾아왔다. 대문을 확 열었는데 탐스러운 꽃이 가득. 너무 기뻤다. 남편에게도 받지 못한 선물이다. 사실 결혼하고 꽃과 초코렛을 들고오는 그런 허튼짓(?)은 하지 말라고 신혼 초에 단단히 못을 박아두었더니 여태 그런 허튼짓은 진짜로 하지않는다. 은근히 남편의 마음에 의심이 가는 순간이다.ㅎㅎ
2008년 3월8일, 마흔번째 생일이던 1월 6일을 생각하며...
-오타와에서 최지연-
마흔번째 생일날 받은 두 번째 꽃송이~
마흔번째 생일을 축하한다며 언니가 직접 키운 수선화를 보여 주신다.
하도 예뻐서 하도 향기로워서 여기에 올려봅니다.
언니, 있잖아요...나, 왠지 마흔이 된 것이 조금씩 좋아지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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