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번 외길
집에서 학교로 출근하려면 두 개의 길이 있습니다. 한길은 66번이라고 하는 큰 고속도로이고,
또 한길은 29번이라고 하는 좁은 외길입니다.
지금도 시골 냄새가 여기저기에 그대로 남아있는 지금 집 근처로 수년 전 이사를 오면서 학교 출근 시간만 되면 거의 정체 상태와 다름없는 교통체증 때문에 20분이면 갈 수 있는 출근거리를 심할 경우 한시간 반 이상을 길거리에서 보내곤 합니다.
그나마 66번 고속도로는 한 뼘씩이라도 지속적으로 차들이 이동하는 반면 29번 외길은 한번 심하게 막히면 차들이 꼼짝도 안 하고 죽 줄을 지어 서서 몇분이고를 기다려야 해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저는 정말 급할 때를 빼곤 29번 외길을 고집합니다. 왜 큰길 놔두고 그 좁은 길로 다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그저 29번길 외길 양쪽으로 죽 펼쳐진 들판, 키 큰 고목 나무들, 양쪽에 하나씩 조그만 연못들, 겨울이면 하얗게 덮은 눈, 봄에 여기저기 들쑥 날쑥 피어있는 꽃들, 운이 좋은 날이면 멀찌감치 보이는 사슴무리, 이런 것들이 너무 정겹고 좋아 어차피 막히는 거면 앞뒤로 삭막한 차들 구경하는 것보다 이런 예쁘고 아름다운 시골길 구경이 더 좋다며 지금도 굳이 크게 뚫린 고속 도로를 마다하고 좁은 29번 외길을 고집합니다.
같은 29번길이라도 교통체증이 전혀 없는 시간에 쌩쌩 달리며 지나치는 것과 출근시간 거북이 행렬에 끼어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며 지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사하기 전에도 장거리 여행을 할 때 가끔 지나쳤던 길인데 예전에는 왜 이런 아름 다운 정경이 내 눈에 안보였을까 의아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곤 합니다.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나무를 문득 쳐다보며, ‘저게 언제부터 저렇게 저기에 서있었나?’ 연못에 떠있는 이름 모를 물 꽃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왜 저 잔디가 어제는 저렇게 파랗게 보이지 않았을까?’이런 생각이 들 때면 오히려 ‘차들이 조금만 더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라는 엉뚱한 욕심이 생길 때 있습니다. 교통 체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북이 걸음을 해야 하게 되지만, 그로 인해 예전에 알지 못했던 29번 외길의 아름다운 비밀들을 알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29번외길 사랑에 푹 빠져 버렸습니다.
부모님과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말씀을 듣게 될 때가 가끔 있습니다.
“자식 교육하겠다고 미국에 이민 와서 정말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앞만 보고 이제껏 살아왔는데, 지나고 보니 막상 우리 아이가 어떻게 커왔는지, 아이의 자라온 모습을 지켜볼 시간도 없이 그냥 아이는 아이대로 훌쩍 커버리고, 나는 나대로 늙어 버렸네요.”하며 힘없이 웃음 짓던 어느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찡했던 때가 있습니다.
가끔, 아주 가끔 한 번쯤은 우리 모두 삶 속의 29번의 외길을 함께 가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것도 거북이 행렬로 아주 꽉 막힌 29번 외길을 말입니다.
이 꽉 막힌 29번 외길에 잠시 서서 이제껏 옆에 세워두고 한번도 돌아보지 못했던 내 아들, 내 딸들의 모습을 조용히 그리고 찬찬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앞 만보고 쌩쌩 달리며 미쳐보지 못했던, 우리 아이들 안에 떠 있는 예쁜 물 꽃들, 아이들 안에 멋지게 자란 나무들, 눈부시게 파란 잔디를 발견해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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