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커서 음악가가 되고 싶어요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는 초등학교 때 만해도 누가 “넌 커서 뭐가 될래?”하고 물어보면 조금도 주저함 없이 “4전 5기 홍수환 선수처럼 권투선수가 될래요”, 아니면 “차범근 선수처럼 유명한 축구선수가 될래요.”하고 답을 하곤 했습니다.
운동에는 별 소질도 없는 저는 이런 전혀 실현 가능성 없는 꿈에 젖어 시간만 나면 권투장갑을 끼고 허공에 주먹질하거나, 동네 공터에서 또래 아이들과 해가 떨어져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공을 차고 뛰어다녔던 기억이 눈앞에 선합니다. 또 그때 추억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면 어린 나이에 한참 유명한 권투선수,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에 젖어 열심히 땀을 흘리던 그때가 참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젠 세월이 흘러 어느덧 아이들을 둔 아빠가 되어버렸고, 아마도 지금 나의 어린 자녀들도 아빠가 그랬듯이 자신들만의 꿈을 한껏 먹으며 자라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예전 제 아들 녀석이 중학교2학년 시절에 엄마에게 “난 커서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음악가가 될 거에요.”라고 한 장래 진로에 대한 선언은 뭇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자식이 의사나 변호사 등 좀 더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길 바라는 아내의 마음에 적잖은 당황함으로 다가왔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사실어렸을때부터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온 아들아이가 커서도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얘기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만도 한데, 운동이나 음악같이 관문이 워낙 좁고, 먹고 살기도 만만치 않은 분야에 바로 내 아이가 뛰어들겠다고 했을 때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찌 보면 부모로서 당연한 반응이 아닐까 합니다. 음악만큼이나 학업성적도 나쁘지 않은 아들아이의 선언에 충격을 받은 아내는 저에게 슬쩍 아이와 한번 얘기를 해보라고 권합니다. 아마 아내의 마음속에는 아빠의 권한으로 아들아이의 마음을 바꾸어 놓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아내의 뜻을 모르지 않는 저는 시장에 같이 가자며 아들아이를 데리고 나가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 얘기를 꺼냅니다.
아빠 영인아, 넌 정말 음악이 하고 싶니?
영인 네, 전 정말 음악을 하고 살고 싶어요
아빠 그렇구나! 아빠가 볼 때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 거 같아.
첫째는 재능은 있는데 열정이 없는 사람, 둘째는 재능은 없는데 열정이 있는 사람
아빠가 볼 때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참 불쌍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일것같아. 그런데 세 번째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재능도 있고 열정도 있는 사람들이야.
이런 사람들이 특징은 첫째, 지극히 소수만의, 어떻게 보면 선택 받은 사람들이라는 거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삶에 자부심과 만족을 느끼며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는 거야.

그리고 아빠가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영인이는 세 번째 속하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아빠도 영인이가 음악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하는데 아빠 생각에는 음악을 하는 것에도 크게 두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워싱턴시 어딘가에 길거리에서 모자를 길바닥에 놓고 음악을 하는 사람도 음악가라고 할 수 있겠고,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일원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는 것도 음악을 하는 걸텐데, 아빠는 이왕이면 영인이가 후자 쪽에 속한 음악가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야. 그런데 그런 음악가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되는 게 아니고 그만큼의 피땀 흘린 노력과 희생이 필요할거야.
아빠는 영인이가 누가 뭐래도 가슴속에 품은 꿈을 멋지게 펼쳐 보이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물론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아들 아이의 음악을 하고 싶다는 결심이 과연 몇 년을 더 가게 될지, 그리고 정말 십 수년이 지나고 나서 아들 녀석이 전 세계를 돌며 음악을 하고 있을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1,2년이 지나고 아들아이는 예전에 아빠가 그랬듯이 축구선수가 되겠다며 밤낮 공을 차고 있을지, 권투선수가 되겠다며 권투장갑을 사달라고 조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다 보면 어느 날 아이는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어떤 일이 마음에 깊은 보람을 느끼게 하는 일인지를 찾게 될 것이고, 그것이 음악이 되든, 아빠같이 상담을 하는 사람이 되든, 의사, 변호사나 과학자가 되든 자신만의 꿈을 찾아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 날이 올 것이란 생각입니다.
나이가 어린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저는 어린 아이들이 마음껏 꿈을 꾸고, 마음껏 그 꿈속에 빠져 미래에 대해 멋진 설계를 하며 자라는 것이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크고도 소중한 특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빠로서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 그것은 다른 아닌 부모가 못다 이룬 꿈을 아이들 가슴에 억지로 심어주려는 헛된 노력보다는, 아이들을 믿어주고, 아이들이 마음껏 자신만의 꿈을 가슴에 품고 삶 속에서 최대한 실제 그 꿈들을 살아보고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것, 아이들이 형형색색의 꿈을 먹고 무럭 무럭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자라 갈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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