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화해를 시도해보면 어떨까?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에게 이렇게 조언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네가 먼저 너를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화해를 청해보라고, 용기를 내서 먼저 그 아이들에게 다가가 사과하고 손을 내밀어보라고 말입니다.
저는 이런 조언을 듣고 고민하는 아이에게 이야기해줍니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너에게 그럴싸한 이유를 대며 이런 얘기를 해도 절대 넘어가면 안돼”라고 말입니다. 제가 이렇게 단언하는 데에는 몇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피해 학생은 가해 학생과 공평한 입장에서 싸움을 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화해라는 것은, 말싸움이 됐든 몸싸움이 됐든 당사자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의견이나 이해관계가
어긋나 다툼이 일어났을 때 청할 일입니다. 비슷한 위치에서 싸운 경우에나 훌훌 털어버리자, 손 내밀며 악수를 청하고 이해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피해 학생이 처한 상황은 일방적인 괴롭힘이지, 화해가 필요한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아이에게 먼저 손 내밀고 다가가라고 요구할 일이 아니라, 가해자인 아이들이 먼저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해야 하는 일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피해 학생에게 네가 먼저 화해를 청할 상황도, 또 그럴 입장도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피해자인 아이는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자신이 먼저 화해를 청해야 한다는 부담과 마치 자신이 진짜 무언가를 잘못해서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책감 때문에 더 큰 혼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둘째, 가해 학생들에게 피해 학생을 괴롭히는 행위가 정당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친구나 이웃간에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크고 작은 다툼이 생기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상대를 배려해 “제 불찰입니다”라는 식으로 먼저 사과하고 마음을 푸는 것이 미덕이라고 가르치고 또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다릅니다.
피해 학생을 괴롭혀온 가해 학생은 그러지 않아도 왜 타인을 마음대로 괴롭히면 안 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폭력을 행사해온 가해자에게 오히려 피해자 쪽에서 먼저 사과를 한다면, 가해 학생은 피해 학생이 정말 뭔가를 잘못했고, 그래서 자신이 그 아이를 괴롭히는 행위가 정당하다고 착각하게 되는 결과를 나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때부터는 더 당당한 자세로 괴롭힘의 수위를 높여갈 것입니다.

지금 피해를 당하는 아이에게 우리가 해주어야 할 말은 바로 “네게 지금 필요한 용기는 가해자인 아이들에게 사과하기 위한 용기가 아니라, 계속되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너를 도와줄수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용기야. 그리고 사과는, 네가 그 아이들에게 받아야 할 최소한의 보상인거 거야. 너는 잘못이 없어, 사과를 해야 하는 쪽은 진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그 아이들이지”일 것입니다. 가뜩이나 직접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모자라 그런 모습을 남의 일 인양 지켜보기만 하는 간접적인 가해 학생들 때문에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고 있을 아이에게 누군가는 나서서 “절대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아이는 그 한마디로 조금이나마 마음에 위로와 치유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적어도 왕따 행위의 잘잘못만은 분명히 가려주어야 합니다.
이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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