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시키려고 해봤는데 정도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요.
바로 내 자녀가 학교에서 누군가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육체적, 정신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게 되면, 그 순간 부모의 마음은 큰 충격과 분노, 당황스러움 등 복잡한 감정으로 혼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 긴장과 분노는 노력으로 조절이 가능하지만, 아이를 위해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고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다음날 아침 당장 학교로 쫓아가 내 아이를 괴롭히는 아이를 야단이라도 쳐볼까?
선생님께 호소를 해볼까? 그 부모를 만나서 따져볼까?
고민을 해보지만, 오히려 이런 방법들이 내 아이에게 더 큰 불이익을 안겨주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떨쳐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민 끝에 부모는 ‘그래,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돼’라며 스스로를 달래고 큰 결심을 합니다. ‘ 내 아이를 괴롭히는 아이가 밉고 싫지만, 그 아이를 불러다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이면서 잘 달래봐야지, 어른이 달래면서 얘기하면 잘 알아듣고 더 이상 우리 아이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다짐하면서, 자신의 아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가해자 아이를 먹이겠다고 음식을 준비하는 엄마의 속이 어떨까를 상상해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내 아이가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행복하게 학교 생활을 할 수만 있다면, 엄마로서 이 정도쯤이야 못하겠냐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속상함을 누르며 떨리는 손으로 음식을 준비할 것입니다.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내 자식에게 제일 좋은 것을 채워주기 원하는 부모의 간절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과연 부모의 이런 눈물겨운 노력이 가해 학생에게도 감동으로 전달되어 상황개선에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답은, 안타깝게도 긍정적이지 못한 경우가 더 많습니니다.
좀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가해 학생을 데려다가 온 식구가 갖은 친절을 베풀면 정성스레 음식까지 장만해서 먹이는 것은, 야단맞고 벌을 받아야 마땅한 가해자의 행동에 정반대로 상을 주는 일입니다. 화해의 가교는커녕, 가해 학생이나 피해자인 내 자녀에게까지도 혼동과 혼란을 야기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애타는 부모님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소리가 될 수 있겠지만, 집에 불러다가 밥을 먹여서 그 마음이 전해질 아이였다면, 애초에 내 아이를 그 정도까지 괴롭히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보다 약한 대상을 지목해서 공개적으로 괴롭히고 상처를 주는 가해 학생들의 가장 큰 목적은, 다른 아이들의 주의를 끌고 그들에게 주목 받고자 함에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합니다. 잔혹한 방법으로 피해 학생을 괴롭히고, 또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 학생이 자신에게 쩔쩔매매 고개 숙이는 모습을 통해 일종의 쾌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더 큰 자극을 위해 괴롭힘의 수위를 날로 높여가는 가해 학생들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그들이 피해 학생의 부모가 보여주는 호의 속에 감춰진 눈물겨운 뜻을 이해해주리라는 생각은, 어린 학생들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헛된 기대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신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괴롭혀온 아이의 부모가 자신을 집으로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온갖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극진한 친절을 베풀어준다면, 그 아이는 오히려 더 의기양양해진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한껏 자랑을 하고 다닐지도 모릅니다. “내가 어제 어딜 갔다 왔는지 알아?
00 부모가 집에 오라고 해서 갔더니 아주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나한테 벌벌 기는 거 있지?
진짜 대박이야!” 그러고는 피해 학생을 더 우습게 보고 괴롭힘의 수위를 점차 높일 확률이
다분합니다.
부모의 애초 목표와는 반대로, 그전까지만 해도 마음 한편에 품었던 ‘쟤 부모가 알면 어떻게 하지’라는 우려까지 말끔히 씻어주고, 편한 마음으로 피해 학생을 괴롭힐 수 있는 일종의 ‘승인’을 받았다는 착각까지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 자존심까지 다 놓아버린 부모에게는 더 큰 충격과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 아이의 상처입니다. 피해 학생은 마음속으로 마지막 보루라고 여기던 부모가 가해 학생에게 당당히 맞서 방패가 되어 주고 버팀목이 되어주길 바랐던 것과 달리, 자신과 별다를 바 없이 가해 학생의 눈치를 살피며 약한 모습으로 대응하는 것을 지켜보며 더 용기를 잃고 무기력해질 수 있습니다. 부모의 단호하면서도 지혜롭고 효율적인 대응방법을 기대했던 아이들 마음속에는 ‘아, 우리 부모님도 어쩔 수 없구나.’ ‘누가 나를 괴롭힐 때 어른들도 저렇게 대처할 수밖에 없구나’하는 극심한 혼란만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더 깊은 수렁 속으로 스스로를 몰아넣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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