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은 산더미 같은데 마음 스산하여 일이 안 되는 날이 있지요. 어제 미 버지니아 공대 총기 사건 때문입니다. 저는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학생 겸 학부모로 잠깐 살았기 때문에 이민 가정은 잘 모릅니다. 간간이 뵙는 분들에게서 느꼈던 건 살기 위해 애쓰는 고단함,그리고 여기서도 보는 교육열이었습니다. 자녀들이 부분 공부도 잘 하는 것 같습디다. 아니면 내가 만난 사람들만 그랬거나. 의사, 변호사, 금융전문가 이런 사람들로 장성한 자식들을 자랑하는 게 낙이었던 노인들도 꽤 뵀어요.
버지니아 공대 참사를 일으킨 '그 아이'의 시간을 혼자 추적해보았습니다. 언론에 떠도는 정보 더하기 상상을 맞춰가면서 말이죠. 부모는 먹고 살기 위해 바빴을 겁니다. 아마 어려서부터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혼자 놀았겠지요. 주변에 한국인들이 누리는 부와 동급생들의 우수함 때문에 심적 부담도 있었을 겁니다. 그 카운티가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입니다. 일 마치고 돌아온 부모의 푸념을 듣고 자라지 않았을까 상상도 합니다. 내가 뛰어나지 않으면 이분들은 평생 고생한다는 불안함을 어깨에 얹고 다녔을 겁니다. 공부를 못한 것 같지는 않아요, 좋은 대학을 다녔으니.
그렇다면 돌파구는 한인교회나 학생회 활동을 통한 친구와의 사귐입니다. 우리 애들이 미국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 합니다. 더군다나 ' 그 아이'처럼 초등 중반에 이민을 갔다면 말이죠. 부모가 친구를 맺도록 애써주어야 가능해요. 가령 먼저 미국 이들 초대해 영화도 뵈주고, 밥도 먹여주고 잠자고 가는 파티도 해주며 선심을 쓰지 않으면 순전히 아이의 매력만으로 미국인 친구를 사귀기는 어렵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게다가 그들 부모와 통화하거나 쪽지를 보내어 시간, 장소를 정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쉽습니까? 그런데 '그 아이'는 교회도 학생회 활동도 하지 않았더군요.
세상에서 유일하게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자식입디다. 제가 가진 엄격함, 노력하는 자애로움, 운 좋아 얻은 학식으로도 달랑 하나인 제 자식 뜻대로 안 됩디다. 어제도 그제도 자식 공부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부모와 너무 걱정해 몸이 아픈 엄마들은 만났습니다. 학원 스케줄이 어찌 되는지, 중간고사 공부는 잘 진행되는지, 못하는 과목 과외선생 정보를 어디서 구할지, 뉘 집애가 경시대회 나갔다는데, 외고 입시가 바뀐다는데, 모 학원 강사가 끝내준다는데...등등의 생각을 쏟아냅디다.
내 자식이 어떤 심정으로 학교를 가는 지, 선생님은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를 욕하는지, 학원에 만나는 애들은 누구인지, 어떤 장난을 요즘 하는지, 어떤 가수나 배우를 좋아하는지, 싸이나 블로그를 하는지, 어떤 게임을 좋아하는지, 우리가 알아야할 것이 너무 많아요. 초등학교 때는 이게 어느 정도 됩니다. 문제는 중학교를 시작하면서 부터 아이 쪽에서 대화를 거부합니다. 부모가 촌스럽거든요. 맨날 현실적인 소리만 하니까요. 그건 아이들이 이미 뻔히 압니다. 부모에게서 들을 소리가 없으니 아이들은 관계를 단절합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와 뭉치게 돼지요.
고등학교에 들어가 정신과를 찾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이런 노력이라도 기울이면 나아집니다만 무수한 아이들이 정신과 의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스러져갑니다. 그 이유의 대부분은 부모의 무지 때문입니다. 정신과가 미친 놈이나 가는 데인 줄 아는 사람이 젊은 엄마들 가운데에도 너무 많아 놀랍습니다.
정신과에서는 다양한 심리검사를 통하여 진단을 하고, 상담이나 약물을 써서 치료를 합니다. 현재의 '정신적 문제'를 과거의 상처나 부모의 양육태도의 문제로만 보지는 않는 것 같습디다. 한 마디로 감기처럼 질병이니 의사가 치료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병이 깊어진 다음에는 힘이 듭니다. 버지니아의 '그 아이'도 우울증 약을 먹었다지요. 약을 먹으면서 부모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더라면 나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기숙사에서 지냈네요.
저는 중학생인 제 아이에게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엄마랑 살아 줘서 고마워, 엄마 집에 와줘서 고마워, 네가 오니까 집이 살아났어." 하도 반복을 해서 이 녀석은 지가 나랑 살아주는 게 크게 선심 쓰는 줄 압니다. 또 하나 제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건 전문가랍시고 저를 찾아오는 부모님께 하는 말입니다. "괜찮습니다. 다 괜찮습니다." 수천만원의 과외를 받든, 혼자서 책 보고 공부를 하든, 우리애들처럼 달래고 달래야 책 한 장 보든 다 괜찮습니다. 나와 마음을 트고 자기의 염려를 내게 보여주는 자식이라면 다 괜챃습니다. 내게 와서 자식이 되어준 그 녀석이 고맙기만 한 부모라면 다 괜찮습니다. "다 괜찮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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