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아기는 18개월인데도 벌써 공감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벌 벌은 어떻게 주는 것이 좋은가요? 아기가 아직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해서 저는 큰소리로 야단치거나 가끔 때리거나(감정이 실릴때도 있구요) 그럽니다. 아기의 반응은 조금 울다가 상황을 잊어버리거나 혼내는건지 모를때도(좋은 말로 하면) 있습니다. 좋은 방법 아시는분 육아선배님들 조언 부탁드립니다. thounme님의 글입니다. > edunet4u.net에서 펀 글입니다. > > > > 어린이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엄포를 놓지만 정작 정식으로 야단쳐 본 적은 없지 않는가? > 어린이 앞에서 수시로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가? > 일부러 어린이가 죄의식을 갖게 하지 않는가 ? > 자녀들은 부모님들의 무심한 언동 하나하나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 다면 위와 같은 자세는 고쳐야 한다. > > 버릇없는 어린이가 많은 만큼 부모에게도 나름대로 여러 가지 교육방법이 있다. 엉덩이를 때려 줘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문제를 모른척 해야 하는지, 아니면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이러한 선택의 순간 부모는 혼란에 빠진다. > 부모는 제각기 자기 방식이 최선의 교육방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문제는 이러한 방법이 효력이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다음과 같은 여러 방법을 살펴보기로 하자. > > 1. 문제를 무시한다. > > 많은 부모들은 자녀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이는 공통된 가치관이 붕괴된 우리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자녀가 그릇된 행동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괴롭힌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전혀 모르는 듯 행동한다. 말썽꾸러기 어린이가 야채 수레에 매달려 있을 때도 딴 세상을 헤매고 있는 것처럼 방관한다. > 다른 어른이 문제점을 지적한 후에야 관여를 한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받은 후에야 어린이에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말한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장난을 치는 어린이의 부모는 그 어린이 친구의 부모에게 충고를 들은 후에야 자기 어린이에게 장난치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부모는 어린이의 '잘못'을 잘 보지 못한다. 지나친 행동을 상기시키는 일은 사회의 의무인 듯하다. > > 2. 규범을 무시하고 자유 방임한다. > > 잘잘못을 따져 벌주지 않고 어린이를 자유 방임하는 부모가 있다. 어린이가 남을 속이면 들키고, 남을 괴롭히면 더 강한 자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되므로 나쁘다는 것을 스스로 배운다는 것이다. > 이러한 '적자생존'의 사고는 두 가지 오류가 있다. 우선 그 어린이보다 더 약하고 유순한 어린이는 어찌 되겠는가?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럴 경우 사회에 더 이상 규범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 학교에서 싸움을 한 어린이는 기껏해야 손바닥을 한 대 맞으면 그만이다. 어떤 따끔한 벌도 받지 않는다. > 우리가 올바른 규범을 필요로 한다면 우선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이런 혼돈에 대해 자각해야 한다. > > 3. '하지 말라'는 말만을 되풀이한다. > > 대개 다음과 같은 장면이 전개된다. > 한 어린이가 모래 상자 안에서 놀고 있다가 남동생에게 모래를 던진다. 사려 깊은 경우가 바른 아빠는 당장 벤치에서 일어나 딸에게 말한다. > "하지 마라." > 잠시 후에 같은 행동이 되풀이되자 아빠도 이야기를 반복한다. > "하지 말라고 그랬지?" > 아주 완곡한 어조로 강조를 하면서 천천히 말한다. > 아빠는 이로부터 몇 초 간 평화로움을 느끼지만 딸이 다시 일을 저지른다. > 그는 달려가고 이제 남동생은 모래가 묻혀서 겁에 질려 있다. > 그는 딸에게 소리친다. > "하지 말라고 했지? 얼마나 말해야 알아듣겠니?" > 그 날 오후 내내 그런 식으로 계속된다. 아빠는 말을 듣지 않는 어린이를 벌하지 않고 단지 '하지 말라'만을 되풀이한다. 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귀여운 딸에게 벌을 줘야 할 상황이 닥치면 실행하지 못한다. > > 4. 어린이에게 철학적인 질문을 한다. > > 많은 부모는 벌 주는 행위를 야만적이라고 생각하고 꼬마 프로이드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철학적이고 심리적인 의미를 강의하는 방법을 택한다. 어린이가 세 살배기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 이런 부모는 어린이에게 많은 질문을 한다. > - 왜 그런 행동을 했니? > - 그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니? > -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 같지? > - 그런 행동이 뜻하는 의미가 무었이니? > - 너도 그런 식으로 취급받고 싶어? > 처음에는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잘못이 되풀이될 때에는 말보다 행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 > 5. 어린이와 친구가 되려고 한다. > > 이것은 일종의 전염병과 같은 질병이다.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자식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로 인해 효과적인 규범의 실천은 점점 더 어려워질 뿐이다. 예전에 우리가 부모와 친구가 되었던가? 우리가 그들의 친구가 되기를 원했던가? > 그렇다고 해서 자식과 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 친구가 되어 주면서 존중과 사랑을 주고 받는다면 부모가 기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은 동등한 관계가 아니며, 긍정적으로 부모가 책임이 있다는 점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한다. > > 6. 경고만 할 뿐 벌 주지 않는다. > > 남들이 보기에는 엄격한 부모인데 그들의 어린이는 아주 심각한 문제아인 경우가 있다. > 이런 어린이가 친구를 때리는 경우 아버지가 어린이에게 어떻게 말하는지 보자. > "그만 둬라. 네 친구가 싫어 하잖니." > 물론 어린이는 계속한다. 그러자 집안의 가장은 소리친다. > "그만 두는 게 좋을 거야. 계속하면 혼내 줄 테다." > 어린이는 친구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아버지가 다시 개입한다. > "또 그러면 정말 호된 벌을 줄 거야. 나를 화나게 만들지 마라!" > 이 때 어린이가 다시 친구를 때린다. > "이제 정말 벌을 받아야 해." > 불행히도 아버지는 특별한 징벌을 준비해 놓지 않았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엄포만 주고 실행해 본 적이 없다. 이번이라고 다르겠는가? > 이런 식으로 벌 주기는 미뤄진다. > "집에 돌아가서 보자. 혼구멍을 내 줄 테니까." > 실제로 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처벌하겠다는 말을 까맣게 잊고 텔레비젼을 켠다. 아니면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린이가 잠들면 아침에는 모든 것이 용서된다. > > 7. 가정환경 탓으로 돌린다. > > 우리는 어느새 이런 식의 사고에 익숙해졌다. 어린이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이혼한 것을 원망한다. 부모가 이혼을 하면 어린이가 무슨 짓을 해도 다른 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 어린이가 이혼하기 전에는 말썽을 일으켰다면 이혼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말썽을 부린게 되고 이혼 후에 말썽을 부리면 '적응'하는데 두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이혼이 가정에 주는 부정적인 영향은 너무 자주 거론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일종의 자위적인 이론을 창조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문제아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학교의 지도교사들도 불화를 어린이의 그릇된 행동에 대한 가장 큰 원인으로 생각한다. 어린이가 비행을 저지르는 근본적인 원인이 이혼이 아닌데도 '이혼 가정의 자녀'라고 부른다. > 부모는 그러한 시기에 자식에게 매우 동정적이며,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기 때문에 잘못을 해도 용서해 준다. 부모는 어린이의 삶이 온통 태양과 장미로 둘러싸여 있지 않는 한 계속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다. > 정작 이와 같은 어려운 시기야 말로 더 엄격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자신감을 갖고 어린이들과 대화하고 그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토론하자. 단 어린이에게 잘못된 행동은 결코 동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 > 8. 어린이에게 죄의식을 갖게 한다. > > 이미 죄가 많다는 생각으로 어린이에게 벌을 주기 보다는 죄의식을 갖게하는 부모가 있다. > 부모들은 여러 가지 수사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 "나한테 이런 행동밖에 보여 줄 수 없니?" > "네가 이렇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지?" > "나는 네가 이런 아이인 줄 모랐다!" > 이것은 위험한 방법이다. 왜냐 하면 이런 질문을 통해 어린이는 죄의식을 느끼고 자신을 몹쓸 어린이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행동은 오히려 더욱 악화된다. > > 9. 감정을 드러내며 화를 낸다. > > 부모의 히스테리가 어린이를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만든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조용하고 강직한 사람이 어린이 때문에 폭발하고 마는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 먼저 얼굴이 붉어지고 혈관이 돌출된다. 다음에 자제력을 잃고 생각지도 않던 말을 한다. 혈압이오를까봐 보통 뒤늦게 화를 내거나 가끔씩 화를 터뜨리는 것이 다행일 뿐이다. > 이러한 태도로는 버릇없는 어린이를 변화시킬 수 없다. 어린이는 부모의 감정을 은근히 즐긴다. > 아마 아버지의 혈관이 얼마나 많이 튀어나오는지 형제들과 내기를 할지도 모른다. 어린이에게 부모의 히스테리는 자신의 영향력을 증명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어린이는 부모가 화를 내도록 선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위험한 것은 뜻하지 않게 감정적으로 어린이를 때리거나 어린이가 잊지 못할 가슴 아픈 말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모는 가능한 어린이에게 자제력을 잃은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물론 부모도 사람이므로 화가 날 때도 있지만 자제력을 잃은 어른은 어린이가 보기에 매우 공포스럽다. > 소리치는 일은 아무 곳에서나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감정적으로 화를 내는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옳지 않다. > > 10. 성장하는 단계라고 말한다. > > 어린이가 성장하면 문제도 사라지기 때문에 어린이를 따로 훈계할 필요가 없다. 성장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이런 생각에 동의 하는가? > 어린이가 '성숙'할 동안 그의 잘못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배려를 하지 않는다. 또어린이가 한 단계를 넘어가면 똑같이 어려운 다른 단계로 들어서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 그러면 일관성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 어린이의 행동을 모른척해야 한다는 말인가? > > 11. 어린이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 >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면 방어적이 된다. 예전에는 어린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교사의 설명을 그대로 믿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니다. > 이제 부모는 어린이에게 말할 기회를 제공하고 그 말을 더 믿는다. 그리고 종종 '편견을 가진' 교사가 어째서 자신의 귀한 자식을 나쁘게 말하는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 > 12. 어린이를 자기 방으로 보낸다. > > 예전에 이 방법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어린이는 자기 방에서 잠을 자거나 라디오(운이 좋아서 그의 방이 있었다면)를 들었다. 그러나 요즘 어린이 방은 전축, 텔레비전, 비디오 게임으로 가득한 오락의 왕궁이다. 그런데 어떻게 벌이 될 수 있겠는가? > > 13. 어린이를 때린다. > >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 때리는 것 역시 해결방법이 될 수 없다. 사실 잘못에 대한 벌로 적어도 문제를 덮어 두는 것보다 나은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 때리는 것은 집에서만 가능하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공장소에서 어린이를 때릴 수 없다. 더구나 다 큰 어린이를 때리기도 곤란하다. > 아동 학대의 위험도 있다. 우리 사회에 폭력이 만연하고 있다지만 누가 정말 자기 자식을 때리고 싶을까? 나는 사랑의 매를 인정하지만 그것은 부모가 어린이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게다가 훈계하려고 때리려다 훨씬 더 심하게 때릴 위험이 있다. >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무작정 때리는 방법은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매를 맞는 어린이들을 알고 있다. 때리는 것으로는 어린이를 변화시킬 수 없다. > > 14. 벌을 주지만 어린이가 당황하면 포기한다. > > 완벽한 부모라도 항상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어린이가 잘못했을 때 부모는 어린이에게 못된 버릇을 고치지 않으면 벌을 주겠다고 말한다. 어린이가 다시 잘못을 하면 부모는 응분의 벌을 선언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하지만 부모는 곧 무너지고 만다. 어린이가 울거나 화를 내면서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면 완강해 보이던 부모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쉽게 자신의 의지를 포기한다. 벌을 받지 않은 어린이는 잘못된 행동을 되풀이 한다. > 부모는 자신의 항복을 위장하기 위해 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고 말하지만, 어린이는 진실을 알고 있다. 부모는 단지 자식이 당황하는 것만 보고는 견디지 못하고 어린이는 또 한 번 승리한다. > 우습게도 우리가 일을 할 때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 주도 면밀하게 감독하고 누군가 잘못을 저지르면 당장 대가를 치르게 한다. 그래서 빈틈없이 일하게 만든다. 그러나 어린이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 어린이들은 대부분 벌을 받는 시간을 채우는 법이 없다. 한시간동안 방에서 지내라고 하고 나서 몇 분 지나지 않아 안쓰러운 마음이 생긴다. 아니면 이웃 어린이가 와서 놀자고 할지도 모른다. > 놀지 못하는 실망감이 어린이 교육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데 부모는 언제나 어린이가 놀도록 허락한다. > > 15. 아주 가벼운 벌을 준다. > > 부모들은 어린이가 정말 아끼는 것은 내버려두고 오로지 사소한 물건을 치우는 것으로 벌을 준다. 그러나 정말 어린이가 즐기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해야 버릇을 고칠 수 있다. > 어린이가 유선방송을 즐겨 본다면, 어린이가 다시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는 두 달 동안 유선방송을 끊어 버린다. 그리고 재설치 비용을 지불하도록 한다. 아니면 야구 경기에 나가지 못하게 한다. 그런다고 어린이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벌을 두려워한다면 놀라울 정도로 품행이 개선될 것이다. > > 16. 제 때 벌을 주지 않는다. > > 부모가 어린이에게 제 때 벌을 주지 못한다면 어린이를 교육시킬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어린이가 음식점에서 부모뿐 아니라 다른 손님까지 방해를 한다면, 어린이에게 계속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말하라. 그리고 그 말을 실행해 보자. 물론 어린이가 끔찍하게 울어대겠지만 어쩔 수 없다. > 대개 부모는 위협만 할 뿐 어린이가 잘못을 해도 집으로 데려가지 않는다. 적어도 한 번쯤은 어린이에게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하지 않을까? > 부모는 사정이 허락할 때 이 방법을 써 볼 수 있다. 어린이가 음식점에서 언제나 말썽을 부린다면 한 번쯤 식사를 포기하더라도 그 버릇을 고쳐야 한다. 어린이가 잘못을 하면 당장 집으로 데려가라. 이것만으로도 어린이는 음식점에서의 올바른 예절을 배우게 될 것이다. > > 17. 우리 어린이는 길들일 수 없다고 포기해 버린다. > > 많은 부모가 자식의 버릇을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상황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자기 어린이는 어쩔수 없다고 포기해 버린다. 부모가 이처럼 자식의 '자유로운 정신'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며 어린이를 길들이지 않는 풍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 부모가 효과적인 규범을 세우지 못하는 한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 > >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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