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계 미국인인 Linda Sue Park의 2002년 뉴베리 수상작입니다.
읽고 나서 여운이 오래 남는 책 중의 하나였습니다. 몇 달 전 읽기 시작하여 지지부진하다가 아이 백일장에 따라가서 기다리는 동안 꺼내 읽으며 클라이막스를 접했고, 집에 돌아와 식탁에서 마저 끝까지 읽고는 끝내 눈물을 훔치고야 말았답니다. 아무래도 한국적 정서라는 동질감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 침투된 것 같네요. 작가는 한국 문화를 전해야겠다는 사명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고 합니다만.
도자기(pottery), 가족(family), 여정(journey) - 이 세 가지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작가는 인터뷰에서 말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은 Tip이 많은 편입니다. 책 뒤편에 이 글을 쓰기 위해 작가가 수집해 두었던 노트며, 신작들 몇 편을 맛보기로 몇 페이지씩 실어 놓았고 작가와의 인터뷰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이민 2세대로서 터득한(결혼 후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한국에 대해 많이 공부하였다고 하네요) 한국적 정서와 생활 문화를 책의 여기 저기에 포진해 놓고 있습니다. 김치, 누비옷, 도자기 기법, 한국적 자존심의 개념, 낙화암의 전설과 그 당시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당연히) 자연스러운 영어 표현으로 묘사를 해 놓아서, 혹 외국인에게 우리 문화의 이런 부분을 설명할 기회가 있을 때 아주 많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작가로서 Linda Sue Park의 프로다운 면모에 감탄을 한 것은 인터뷰에서 이 책을 쓰는데 도합 4년이 걸렸다고 한 점입니다. 구상하는데 2년, 실제로 써내려 간 것이 8개월, 편집자와 수정작업을 하는데에 1년여를 보냈다는군요. 그리고 늘 글을 쓰기 전에 조사를 철저히 한다고 합니다. 자료 조사하는 과정, 방법 등이 여러 가지를 느끼게 해 줍니다. 수집한 자료의 페이지마다 포스트잇 같은 걸로 표시하는 모습, 마치 안정효님의 “글쓰기 만보”를 읽는 듯 합니다.
이야기는 Tree-ear라는 고아소년과 함께 사는 노인인 (서로는 친구 사이입니다!) Crane-man의 우정을 시작으로, 그들이 노숙자 생활을 하게된 불행한 내력에 대한 설명이 대화를 통하여 간결하게 전달됩니다. 또, 간간이 내뱉는 자존심과 철학이 담긴 Crane-man의 조언은 가슴에 스며듭니다:
Work gives a man digniy, stealing takes it away. (일을 하면 인간은 존엄성을 얻지만 도둑질을 하면 오히려 존엄성을 잃게 된단다.)
Scholars read the great words of the world. But you and I must learn to read the world itself. (학식있는 사람들은 글을 통해 세상을 읽지만, 우리같은 처지의 사람들은 세상 그 자체를 읽어야 되는 법이란다.)
노인의 이름이 왜 하필 Crane-man이었을까? 그 의문은 책의 제일 뒤에서 설명됩니다. Tree-ear가 마침내 이루게 될 미래, 노인과의 우정에 대한 답례에 대한 암시와 실존하는 어느 상감청자에 대한 작가적 상상력이 결합된 결정체였습니다.
이 글은 소재로 본다면 청자를 제작하는 도공과 그를 경외해 마지않는 고아 소년이 이루어내는 도자기 제작에 관련된 아주 자세한 공정과 장인의 자존심이 그 주를 이룹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핏줄이 전혀 섞이지 않은 인간관계가(Tree-ear가 Crane-man, 스승격인 Min, 그리고 그의 아내와 각각 이루어가는 관계,) 매일의 만남 속에서 어떻게 “가족”의 인연을 이루어 내는지가 잔잔히 깔려있습니다. 이 점은 아주 “서양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이 소설은 다분히 adventure의 요소를 지닙니다. 전반부는 다소 지루하지만. Tree-ear가 스승의 작품을 대궐로 가져가는 여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박진감이 있고 긴장감이 충만합니다. 그리고 이 여정을 통하여 Tree-ear는 단단해지고 진정한 용기를 배우면서 성숙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제목 “A Single Shard”(사금파리 한조각: 한글 번역본도 나와 있군요.)도 결국은 죽고 싶은 고통을 버티며 획득한 Tree-ear의 가상한 용기를 상징하지 않나 해석됩니다.
“죽음을 버티는 용기”를 전해주는 장치 중의 하나로서 작가는 ‘낙화암’(Rock of the Falling Flowers)을 아주 멋지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 실제적인 역사적 의미에서도 그렇고, 소설속의 무대로서도 이 곳은 절정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낙화암의 역사를 묘사하는 문장은 꼭 추천하고 싶은 명설명문입니다. (궁녀를 ‘ladies-in-waiting’이라고 설명한 것, 참으로 명쾌한 느낌이었습니다.) 삼천 궁녀들처럼 멸망을 앞두고 죽음을 택하는 것도 용기이지만, Crane-man은 다음과 같이 Tree-ear의 나아갈 바를 (예견이라도 한 듯) 암시했었습니다:
But remember that leaping into death is not the only way to show true courage.
(명심하거라, 죽음만이 참된 용기를 보여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점을...)
막상 쓰자니 내용이 길어져서 마무리를 해야 하겠는데, 여운이 기대 이상으로 큰지라 야물게 정리를 해야한다는 압박감이 듭니다. 이 책은 그 어떤 상이라도 받을만한 그릇이 충분히 된다는 점이 뿌듯하며, 성실하고 탁월한 작가의 역량이 존경할 무엇을 제시해 주어 마음이 풍요로와지는 가운데 가장 압권인 제일 마지막 문단-상감청자(일명 천학매병(Thousand Cranes Vase))의 문양을 묘사하는 아름다운 영어를 옮겨보며 마무리할까 합니다.
The vase's most remarkable feature is its intricate inlay work. Each of the forty-six round medallions is formed by a white outer ring and a black inner ring. Within every circle, carved and then inlaid with great skill, there is a crane in graceful flight. Clouds drift between the medallions, with more cranes soaring among the clouds. And the glaze is a delicate shade of grayish green.
It is called the "Thousand Cranes Vase." Its maker is unknown.
(이 화병의 가장 탁월한 점은 정교한 상감 기법에 있다. 46개의 각 원형 무늬는 흰색의 바깥 테두리와 검정색의 안쪽 테두리로 이루어진다. 각 원형 안에는, 파낸 후 뛰어난 기술로 안을 채워 넣어 새겨진 우아하게 비상하는 학의 모습이 있다. 원형 문양들 사이에는 구름 속을 날고 있는 학의 모습들이 더 새겨져 있다. 화병의 빛깔은 회색빛을 띤 푸른색의 섬세한 색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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