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좀 거창했나요. 무심히 달력을 보니 오늘이 한글날이라기에... 여전히 태극기 게양은 하는 날이지만 빨간 날 즉 국경일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이 참 아쉽습니다. 빨간 날이었을 때도 그 깊은 의미를 곱씹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오늘이 한글날이지' 하고 상기나마 한번 하곤 했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잊기 쉬워졌으니 말이에요. (작년에 이어 한글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서 '한글날을 국경일로' 서명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참, 홈페이지의 순 우리말 아세요? 누리집이랍니다.) 한글날은 우리말이 아닌 우리 '글'이 탄생한 날이긴 하지만 말과 글은 떼어 생각할 수 없기에 역시 영어, 특히나 아이의 영어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네요. 쉬운 생활영어를 접해주자는 취지로 시작한 것이, 영어가 생활의 일부가 되기까지에 이르렀네요. (생활의 일부란 정말 말 그대로 '일부'를 말합니다. 영어책을 한 권 보든 말 한 마디를 영어로 주고 받든... 그 최소한의 것을 적어도 하루에 한번은 하고 넘어가게 되었단 말씀이지요. 대단하게 영어를 사용하고 그러진 않고 있어요.) 왜 영어를 가르치며 왜 영어를 해야 하는가... 이 원론적인 질문에 많은 답들이 가능하겠지만 원색적이고 단순한 논리를 적용하기 좋아하는 저는 이것을 '힘의 논리'로 귀결지으며, 동시에 약소민족의 설움 운운하며 씁쓸해 합니다. 남의 나라 말을 배우기 위해 이토록, 가족까지 매달려가며 사족을 쓰지 않아도 되는 영어권 사람들, 특히 아이들은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쏟아붓는 그 시간과 노력을 과학과 논리와 놀이와 예술에 쏟아붓는 그들을 우리가 따라가기 힘든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는지 모르지요. 얼마 전 만 33개월을 넘긴 제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는 영어 교육을 실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제가 마음에 들어하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 녀석이 같은 아파트에 사는 비슷한 월령의 시누네 아들놈과 함께 그 어린이집에서 영어 노래를 불러제끼며 선생님들과 다른 아이들의 주목(주목인지 눈총인지...) 깨나 받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 두 녀석들은 마음이 안 맞아 싸울 때도 많지만 노래, 특히나 영어 동요만 들려오면 (혹은 저희들 입으로 불러대며) 미친놈들마냥 들뛰어댑니다. 정말이지 남부끄러워서... 그런 모습을 보며 제가 붙여준 별명이 있지요. '미친 영어 유치원' (남들이 보면 혹 영어 유치원에라도 다니나 싶긴 할텐데, 하는 짓이 영 정상이 아니니 말입니다.) 얼마 전 (제가 어떤 분 답글에서도 잠깐 언급을 했었는데) 가지고 놀던 풍선을 놓치는 순간 아이의 입에서 "Help! Mommy!" 라는 소리가 나왔더랬습니다. 저 역시 순간적이지만 아이의 말 한 마디를 '효과' 내지는 '결과물'로 받아들이는 단순하고도 속물적인 엄마로서의 반응이 먼저 튀어나옵니다. 다시 말해 기특하단 생각이 드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식으로 아이가 '무조건반사'적 영어를 구사하게 되기를, 다시 말해, 필요에 의해서나 생각을 정리해 영어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동시에 영어로 반응하는 일이 빈번해지기를, 영어를 말 그대로 '생활화'하게 되기를 진정 나는 바라고 있는 것인가... 곰곰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물론 이 땅을 떠나지 않는 한 아이는 모국어의 환경에 훨씬 많이 노출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 명백할 테니 제 염려는 그저 기우에 그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아직은 아이가 어려서이지, 더 자라서는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필요한 상황에서 영어를 사용하게 될 것일 수도 있겠구요. (제가 겪어보질 않아 더 큰 아이들의 경우가 늘 궁금했습니다.) 글 머리에서도 꺼낸 얘기지만, 생활영어를 접해준다는 것이 영어가 아이의 생활의 일부가 되기를... 우리말보다도 영어를 먼저 혹은 많이 귀와 입에 붙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자체의 시시비비를 스스로 가려보려 할 때가 있습니다. 몇 시간 전이었지요. 아이를 재우려 함께 누워 있는데 아이가 작은 소리로 말합니다. (속삭이려고 그랬다기보다는, 잠 안자고 떠든다고 저한테 야단 맞을까봐였을 겁니다.) "밥 많이 먹어서 힘 세지고 키 커지면 세진이가 엄마 업어줄 거야..." (물론 100% 아이 혼자 해낸 생각은 아닙니다. 제가 아이를 업어주거나 할 때 종종 묻곤 했거든요. "세진이 나중에 커서 어른 되고 엄만 늙어서 쭈그렁 할머니 되면 세진이가 엄마 업어줄 거지?") 아이의 그 말이 기특했다기보다는, 언젠가 닥쳐올 그 날을 생각하니 서글퍼져서 잠시 눈시울이 젖었더랬습니다. 이 아이를 두고 내가 먼저 떠나야 할 때가 오겠구나... 아무튼 그 말을 아이가 영어로 건네온다면 (물론 지금 나이에선 절대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그 말이 영어로 가능할 나이라면... 지금처럼 사랑스럽지 않을 것 같네요. 아니, 업어준다 소리 자체를 하지 않겠지요...) 그런 감정들까지 속속들이 살아날까 싶은 순간이면 전 모국어에 대한 찬사가 마구 우러남을 느낀답니다. 아이 낳기 전부터 남편도 종종 그런 얘길 했었지요. 외국인과 결혼했더라면 어땠을까... 생활엔 전혀 불편함 없는 의사소통까진 가능했을지 몰라도 같은 말이라도 뒤끝을 올릴 때 다르고 내릴 때 다른 우리말에서의 미묘한 어감까지는 주고받지 못했을 거라고요. 이 늦은 밤에도 아이들의 영어 교육을 위한 정보와 조언을 위해 이곳을 찾으시는 많은 분들께 혹 제 글이 찬물이라도 끼얹는 것처럼 들렸다면 못 들으신 걸로 해주세요. (아니, 못 읽으신 걸로...) 저 역시 영어만이 제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인 양 하루라도 여기 들어오지 않으면 무서운 금단증세에 시달리는 쑥쑥 중독자라는 거... 아시는 분은 다 아시지요...? 오늘이 한글날이라는 사실과 잠들기 전 아이의 말에 잠시 짠해졌던 마음으로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음... 거창한 제목과 달리 결론은 흐지부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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