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2년 12월 30일 월요일~2003년 1월 1일]

[2002년 12월 30일 월요일]
오후에 어린이창극을 보러 국립극장에 다녀온 후 분주하게 여행 준비를 했다.
지난번 부석사에 다녀온..그 동호회에서 두달에 한번씩 가는 정기사찰 순례에 다녀오기 위함이다.
이번에 가는 곳은 직지사.
30일 밤..10시에 서울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일정은 30일 밤에 출발해 경북 김천의 황악산 직지사에 새벽에 도착해서 31일 새벽예불을 드리고..낮동안 반야심경 사경과 108 염주공사..스님법회..등등 빠듯한 일정을 보내고 한해를 보내면서..또 다른 한해를 맞는 새해 타종식..그리고 다음날 아침 명적암 해돋이 후에 수계식까지..
결국 1박 3일인 셈이다.
아이와 같이 하기엔..방해도 될까 싶고 일정도 너무 빠듯해 무리가 있을 듯 싶었지만 욕심을 부려 데리고 가기로 했다.
2개월만에 만난 사람들을 버스안에서 만나니 현지는 호들갑스럽게 반색하며 그때 만났던 사람들의 대화명을 다 기억하면서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 이름까지 들먹여가며..
하루종일 피곤했던지..반가움도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잠에 묻혔다.
도착하자마자..잠시만 쉬고 새벽예불을 들어가..하루종일 일정대로 따라야 하는지라 가는 동안 잠을 청했다.
................................................................................................................................................
[2002년 12월 31일 화요일]
드디어 직지사에 도착..이른 새벽이라고 해야하나..새벽 두시..추풍령 밤하늘은 눈처럼 빛나는 별들이 소복히 박혀있었다.
싸늘하다못해 목소리까지 얼어붙을 정도의 추위가 별들을 더 빛나게 해주는 것 같았다.
?_blank"저별이 북두칠성이고..저게 북국성이지..와..달님이 정말 눈썹같은 초승달이 되었네.."
"엄마 별이 눈같아.." 하며 낭만적인 말도 던진다.
어둠같은 하늘이지만..물빛과 흑빛이 어울린 사찰의 새벽하늘에 모두 고개를 내리질 못했다.
얼음이 많이 얼어 후레쉬 빛에 의존해 더듬거리며 오르다..물 흐르는 소리를 따라 계속 오르는데 낮에 본 심청이 생각이 났는지 "엄마 심청이 아빠 심봉사처럼 물에 빠지겠네" 하며 팔을 안쪽으로 잡아당긴다.
아이의 보살핌 속에 드디어 천불암이라는 숙소에 도착했다.
"여긴 밤에 함부로 돌아다니면 길 잃어요~ 사찰 규모가 무척 크니까 길 잘 살피세요~"
얼마나 크길래..사찰에서 길까지 잃는다는 것인지..날이 어서 밝아 확인이라도 해보고 싶다.
이곳 직지사의 이름이 붙게 된 유래는 신라 19대 눌지왕 2년에 아도화상께서 손을 뻗어 곧게 가리키며 "저 산 아래에 좋은 절터가 있다"고 하여서 지어졌다고도 하고,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 :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참된 마음 곧, 불성을 똑바로 깨치고 밝히면 부처를 이룬다)'이라는 선종의 가르침을 따랐기 때문에 '직지인심'의 '직지'라는 말을 따서 붙였다고도 한다.(-직지사 팜플렛 중 사찰 소개 부분 인용)
새벽예불에 가려고..현지를 재우려고 했지만 두살 많은 언니와 눈이 맞아 다른 사람들은 한시간이라도 잔다고 자리에 누웠건만 눈이 초롱초롱하다.
새벽예불..어찌나 추운지..
아이만 혼자 숙소에 재워놓고 가기도 그렇고..해서 대웅전(아미타불..석가모니불..약사여미불이 모셔져 있다) 법당에 데리고 들어가서 차라리 그곳에서 재워야지..했는데..법고소리,목어소리,범패소리.범종소리가 들려오자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잖아" 하며 엄마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둥-둥- 울리는 법고소리와..딩~딩~ 울리는 범종소리의 여운을 느끼며 마음을 비우려 했는데 아이의 그말로 인해 내내 두근거림으로 방해꾼으로 낙인 찍히지 않을까 불안해해야 했다.
어쨋든 아이는 잠이 들고..새벽 예불을 무사히 마치고 천불암으로 돌아왔다.
아침공양 때 지나가시는 스님들마다 어린 것이 절에 와서 새벽부터 날아다니는 것이 귀여웠는지 현지 볼과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니 그것이 좋은지..또 과자까지 챙겨주시는 분도 계셨다.
"엄마 저 스님 머리가 빡빡머리야" 하며 우스워하던 현지때문에 잠시 눈치를 살피기도 했다.
소개시간을 갖은 후 잠시 쉬는 동안 잠이 들었다.
일어나보니 다른 사람들이 저녁에 탑돌이할 때 쓸 연꽃컵을 만들고 있어 뒤늦게 일어나 아이와 같이 핑크색 꽃잎을 컵에 하나씩 붙이며 정성을 다했다.
현지도 꽃잎에 풀을 발라주면 열심히 컵에 붙인다.
노랑나비 이모가 현지에게서 심청이 얘기를 질리도록 들은 탓인지..주름지를 모아 심청이를 만들어주니..자기가 만든 연꽃컵에 심청이를 넣어 이야기를 또다시 풀어낸다.
설법을 들으러 장소를 이동하던 중..새벽에 어둠속에서 이동할때마다 끊임없이 들려오던 작은 도랑물 소리가 환한 오전에 보니 도랑의 물이 그리 맑을 수가 없다.
도랑 가에 맺힌 투명한 고드름과 '돌~돌~돌' 맑게 흐르는 물소리가 사찰 내의 가는 길에 같이 흐르고 있었다.
직접 사찰을 돌며 설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설법전에 모여 직지사의 유래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스님께 듣고 난후..천불암으로 돌아와 280자 정도의 반야심경을 한번 절하고 한자 쓰고..하는 식의 사경이 진행되었다.
현지는 뒤에서 두살 많은 언니와 밖에도 나갔다..과자로 부시럭 거리며 먹었다..큰소리도 내었다가..그렇게 시간을 보내었다.
사찰 내에 있는 산중다실에 들러 스님이 직접 담그셨다는 과일차를 마시며 잠시 다리를 풀고..저녁공양 후 이번에는 한번 절하고..염주 한알 꿰고..하는 108염주공사가 시작되었다.
그 유명한 직지사에 오긴 했는데..하루종일 예불하고..관음정근하고..절하고..공양하고..절하고..
마음속에 있는 잡념들이 너무 많아 이곳에 오기로 하면서 잡된 생각들을 잠시라도 잊으려했는데..그건 성공한 것 같다.
다른 생각 할 틈도 없었거니와, 딴 생각이라도 들라치면 장소가 장소여서 그런지 마음을 정신차려 다잡게 되었기에..
2002년의 마지막 밤..
설법전에서 찬불가의 합창소리에 마음이 안정되고..주지스님의 법회가 시작되었다.
근처 대학의 학생들을 비롯..그 밤에..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 줄은 몰랐다.
어찌나 많은지..그 큰 설법당 전체가 다 메워질 정도였다.
수행자의 도리..불교의 여러파의 의미와 목적..스님과 동창생이시라는 민병찬 님의 시를 같이 읽기도 하고..
제목에 붙인 '대가람 천년 뜨락'이란 말은 민병찬 님의 시구절을 옮긴 것이다.
황악도 무량겁에 티끌모아 이뤘으니
솔씨만한 내 불심을 산자락에 심어두고
대가람 천년 뜨락에 눈을 다져 밟는다.
곧바로 이르는 길을 지향없이 떠돌다가
원찰에 발이 닿기 오십년이 걸렸던가
세월을 실타래 풀 듯 저녁 종이 낮게 운다
엎드린 대소전각 입을 다문 긴추녀들
쓸리는 바람소리 뿐 뭇새들 잠잠하고
선방엔 삼매가 영글어 별자리로 돋는다
산 부엉이 먼소리에 산이 간간 뒤척일 제
선승은 오매일여 아자창에 새는 불빛
찌르르 한소식 오는지 별이 주룩 흐른다
-1994 민병찬 詩
대웅전 앞에 도착하니 낮에 만든 연꽃컵에 초가 하나씩 꽃혀져..그곳에 불을 밝혔다.
재미있는 놀이라도 하는 줄 아는지 현지는 호르르 타오르는 연꽃 안의 불빛에 얼굴을 붉히며 환한 기분이다.
"현지야..오늘이 2002년..현지가 네살인 마지막 날이야..연꽃들고 탑돌이 한다음에..저기..범종이 울리면 현지는 이제 다섯살이 되는거야."
탑돌이를 하면서 연등공양점등식을 하고 서른세번의 제야의종 명종식이 있은 후..드디어 2003년..새해를 맞이했다.
"와..현지가 드디어 다섯살이 되었습니다~"
"그럼 나는 무슨 띠야? 호랑이 띠 되는거야?"
"아니..띠는 변하지 않아..현지는 토끼신이 다스리는 해에 태어났기 떄문에 토끼띠거든..현지가 태어난 날이 변하지 않듯이..현지 띠도 변하지 않는거야"
아이아빠가 같이 있어서 한해를 마무리 하고..같이 신년을 맞이했으면 좋았으련만..그 부분이 제일 아쉬웠지만..마지막 날 하루일지라도..허틀게 보내지 않고 의미있게 보내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도 있었다.
모든 행사가 다 끝나고..새해가 시작되었다고 떡국을 먹었다.
맛만 보는건데..고기하나 들어가 있지않은 떡국이 어찌나 맛이 있던지..두그릇씩이나 먹었다.
맛없는 절밥이라지만..내 입맛에는 절에서 먹는 밥이 그리 맛있을 수가 없다.
반찬이라곤..김치..무우김치조림..김치볶음..감자..콩나물..깻잎..미역국..우거지국..이런게 매번 비슷한 메뉴가 번갈아 나오는건데..현지나 나나 무척이나 잘 먹는다.
................................................................................................................................................
[2003년 1월 1일 수요일]
전날..너무도 빠듯한 일정때문에 새벽 3시 30분의 새벽예불은..하지 않았다.
새벽 6시 30분..20분 정도 걸리는 명적암의 해돋이를 보기 위해 산을 올랐다.
가는 길이 힘들었을텐데..현지는 앞선 이모들을 따라잡으며 쾌감을 맛보듯 "내가 먼저왔지" 하면서 열심히 따라잡는다.
명적암에 오르니 오늘은 해가 7시 30분이나 되야 뜬다고 해서..늘어진 산자락에서 부처님 와상이 보인다기에..찾아보았지만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기에..어서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다.
해야..이미 저~쪽 동해바다에서는 떠올랐겠지만..이곳의 산능선 뒤에서 빨갛게 올라오는 해를 기다리느라 모두들 시선이 한곳으로 모아져 있었다.
그곳에 청삽사리라는 토종개가 있어..현지가 한번 쓰다듬어도 보고..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도 삽사리 맞지~ 하길래 그 삽사리가 이삽사리다..얘기해주니 진짜 책에 있던 개가 나왔다고 생각했는지 무척 반기는 눈치다.
드디어..구름이 붉게 변하더니 한참만에 해가 눈부시게 고개를 내밀고..이렇게 한해를 시작하는 해돋이까지 잘 마무리했다.
경건하게 한해를 마치고, 새벽산행과 해돋이를 통해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서 '상쾌한 새벽길처럼' '눈부신 햇살처럼' 행복이 가득했으면..하는 바람이다.
이번 순례의 주제는 수계였다고 한다.
佛名을 받는건데..스스로 지켜야 하는 다섯가지 규율이 있는데 수계를 받고 지키지 못한다면 죄를 짓는 기분일 것 같아서..좀더 착해진 다음에 받겠노라고..나는 받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약속을 하고..스스로 지켜야 하는 과제가 아무래도 제일 어렵고 힘든 일인 것 같다.
점심공양을 하고 올라오는데..아주 행운의 기회를 가졌다.
'천불선원'이라는 곳은 스님들이 공부하시는 곳인데..다리를 건너 들어가게 되어있는 이곳 앞에는 '일반인의 출입을 금합니다'하는 팻말이 서있다.
선원에 들어설 때 문을 열어 고정시키는 나무로 조각한 거북이가 인상적이엇다.
이곳은 주지스님도 이곳을 담당하는 스님의 허락이 있어야 드실 수 있는 곳이란다.
어느스님께서 이곳을 담당하시는데..그분이 자신이 수계를 내린 분에게 보여주려고 하는데..때마침 나를 비롯한..열명 정도가 그곳에 있어서 덕을 본 것이다.
'선원'이라는 것은 참견으로 말이나 이론, 글이 있는 것이 아니고..마음이 있다고 생각해도 외도라는 어려운 말씀을 하신다.
선원에서 스님들은 앉아서 우주가 생기기 이전을 본다는 '관화'를 하신다고 한다.
배움이나 눈으로 보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배움을 끊는 것을 아는 곳이며..'견선' 즉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하는 곳..이라는데..
어쨋든 이곳은 발길이 닿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인연이라고 한다.
이곳에 와서..제일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과히 얘기할 만하다.
현지의 기력에는 나도 놀랐다.
잠이라곤 이틀 내내 다해도 일곱시간 정도..그게 다인데도 저리 팔팔하다.
빠지는 곳 없이 쫓아다니며 참견하고 여우짓도 하고..맘에 드는 이모나 삼촌을 골라 붙어 다니고..부석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귀여움을 받으며 지낸 것 같다.
어린 아이들은 둘 뿐이었는데..그중에서도 제일 어린 아이가 바지런하게, 구김없이 다니는 모습에 괜히 엄마만 "아이를 참 잘 키웠다"는 칭찬을 들었다.
"제가 게울러서 그래요..혼자 하게 내버려 두니까..자기가 알아서 하고, 노는거죠"
"정없는 엄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싸고 도는 것보단 그게 아이 교육엔 더 좋을 수도 있어요"
"어..나 정 많은데..아이 없으면 잠도 못자는데..ㅎㅎ"
어쨋든 현지가 알아서..공양하고도 자기 그릇은 직접 치우고..새벽에도 깨우면 벌떡 일어나고..안아달라고도 안하고..대견하다.
오늘은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기에 마음이 더욱 바빴다.
유명한 절에 와서 사찰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해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노랑나비가 비로전에 얼른 다녀와서 뭐가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불상이 있는지..보라고 해서 그곳에 가니 작은크기의 옥돌로 만들어진 천불상이 있고, 가운데에 하얀..누드의 입상이 보였다.
저렇게 당연히 보이는 걸 보라는 건 아닐테고..천불상 중에서 뭔가를 찾으라는 것인가..
나보고 어떤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냐기에 하얀색..입상 말하는거냐니까 그걸 먼저 보면 아들을 낳는단다고 얘기해주는 것이다.
다른 아이는 다른 것부터 봤다나?
그래..둘째 낳을때는 아들 낳을거다..
직지사 도량 내의 탑 네개를 포함해 보물이 그렇게 많다는데..스치듯 지나다니기만 했지..제대로 본 것이 하나도 없다.
누각의 높이가 낮아 머리를 조아리고 들어가라는 의미이기도 한다는데..그 누각이 어떤 것이었는지도 모르겠고..직지성보박물관에도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사찰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답사차원에서 다시 와봐야 할 것이다.
대웅전 앞에 모여 단체사진을 찍은 후..전국의 자기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부산팀..대전팀..등과 작별인사를 하고 우리버스는 서울로 출발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차는 막히지 않아 3시간 정도 후에 도착했다.
의미있고..뜻깊은 순례였다.


쑥쑥몰
체험이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