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고 있는 오하이오 톨리도에 유학와 공부하는 P씨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 나는 미국에 유학와 6년째 살고 있는데 원어민들과 꾸준히 접촉한 덕에 영어사용에 별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실력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단 며칠이나마 미국인과 접촉을 안하게 되면 영어 실력이 좀 줄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반면, 미국에 조기유학 온 만13세까지의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불과 1,2년만에 거의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걸 보게 된다. 그러므로 영어학습 효과면에서만 본다면 누구나 조기유학을 보내는게 좋을거라고 본다. 그리고 빠르면 빠를수록 영어학습 효과는 크다."
그의 말을 듣고 저는 아래와 같이 반론을 했습니다.
” 어린이의 뛰어난 언어 학습 능력만을 고려하여 조기유학의 정당성이 입증되고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하지만 어린이가 언어학습 능력이 뛰어나다는 주장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더라도, 조기유학 1, 2년의 학습으로써 영어를 자기의 모국어로 '일생'을 통하여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배양한 셈이 과연 되는가에 대한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어린이들이 1년여만 미국에서 생활하면 영어가 거의 완벽한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그 <놀라운 언어 학습 능력>과, 아이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경우 지속적인 노출(exposure : 원어민과의 접촉)이 없는 환경에서 그 습득된 영어 구사 능력을 <성인이 될때까지 유지할 수 있는 능력>, 이 두가지를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커다란 오해입니다.
강조합니다만, 어린이의 놀라운 언어 학습 능력과, 그 학습 내용을 오랜 기간 보유하는(Retain) 능력은 서로 별개의 능력입니다. P씨는 30대 성인으로서의 자신이, 요즘 들어 노출을 적게 함으로써 겪었던 학습의 퇴행 현상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면 어린이들은 그 퇴행 현상이 없을까요? 대체적으로 어린이들은 오히려 훨씬 심합니다. 만약 어린이의 학습 퇴행 현상이 사실로 증명된다면 조기유학의 정당성(탁월한 언어 습득 능력이라는 장점에 국한한 유학의 정당성)은 약화될 것입니다.
이럴 경우 조기유학의 기간은 1, 2년이 아닌 훨씬 긴 기간일 때만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얘기가 될 겁니다. 가 굳이 1,2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의 언어 습득 능력을 강조한 것으로 봐서, 조기 유학의 효과는 그 기간만으로도 웬만큼 달성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P씨가 조기유학 성공의 조건으로서 훨씬 긴 기간(3년 이상 5년여까지)을 염두에 두었었다면 굳이 1,2년 이란 말을 강조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차피 4-5년이나 머무를 기간이라면 어린이가 가진 놀라운 습득 능력은 별 의미가 없을테니까요. 그러므로 P씨는 사실상 길어봤자 2,3년의 조기유학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는 믿음을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아까 언급했듯이 이 점은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이 검토가 없이 그냥 지나간다면 어린이들의 탁월한 언어 습득 능력이 있다는 주장을 믿게된 사람은 곧바로 1~2년간의 조기유학의 성과를 낙관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조기유학을 결정하는 정보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에게도 성인과 마찬가지로 학습 내용을 잃어버리는 퇴행의 능력(성향)이 있음은 상식선에서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즉, 어린이가 2년여 동안에 익힌 언어는 계속적인 노출이 없는 환경에서는 단 몇년 만에 날아가버리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무조건 1~2년 유학했다가 한국에 돌아온다는 계획은 위험합니다. 그러므로 자녀의 조기유학을 계획하는 분들은 기간을 잘 설정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미국에 20년 넘게 살고 있는 제가 보기에, 조기유학이란게 섣불리 실행에 옮길 일이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너무도 많은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 중 한분과 함께 와서 유학하는 것일 때마저도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조기유학의 최소한의 조건은 어떤 경우에도 부모 중 최소 한 분과의 동행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한국의 한 어머니가 막 말문을 트기 시작한 아이를 붙들고, 숟가락 대신에 스푼, 머리 대신에 헤드, 하는 식으로 아예 한국말을 한마디도 가르치지 않고 순 영어 단어만을 가르치고 있는걸 비디오로 본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요즘, 아이 혀의 아랫부분을 절개해주겠다는 부모들의 무지에서 처럼 그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가능한 한 유아기 때부터라도 최소한 우리말과 더불어 영어를 동시에 가르쳐 주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것이 성공하려면 필요충분 조건을 구비해야 합니다. 즉, 완벽한 각각의 언어를 구사하는 부모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있다 하더라도 그 아기의 언어 발달기에 적합한 수준의 언어 자극을 '지속적'으로 해줘야만 한다는 겁니다. 너무 빤한 얘기를 하고 있다구요?
한국인으로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영어실력( 네이티브 스피커의 수준에 버금가는)을 갖춘 부모라 하더라도 이 조건엔 아직 미달입니다. 왜냐하면 한 아이가 서로 이질적인 문법 체계를 지닌 두개의 언어를 구분하여 습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고 상호 갈등적으로 작용하여 그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말기 때문입니다. (한국말과 영어는 문법 체계에 있어 거의 상극입니다)
아이가 첫마디를 익히고서부터 평균 2년여에 걸쳐 '대강의' 문법의 틀을 익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만 3살반이 좀 지났을 무렵에 이르러서야 기초를 습득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기간 이전에, 상충되는 문법체계를 가진 국어와 영어를 구분해서 배워야 한다면 두 배에 가까운 힘이 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언어의 체계를 습득하고 나면 그 언어가 문법의 틀이라는 면에서, 또 어휘의 뜻 파악이라는 의미에서 새로운 제2언어를 받아들이는 튼튼한 토대의 역할을 하여, 이제 또다른 제2언어의 습득 과정은 하나의 응용이라는 유희의 차원이 된다는 겁니다.
두개의 '상이한' 체계의 언어를 동시에 배워줄 적에 아이는 그 차이점을 분별해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됩니다. 그대로 스트레스죠. 하나의 주 언어를 먼저 확실하게 세워줘야하는 것은 필요충분 조건입니다. 아주 드물게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익히는 교포 아이의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것은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한쪽 부모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한 쪽 부모를 둔 탓일 뿐이지 그것이 그 아이의 언어 학습/구사 능력을 더 발달시키는 촉매의 역할이라는 증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유심히 관찰한 바로, 두 언어를 동시적으로 익히는 아이에게도 분명히 선호하는, 즉 '지배적인 언어'가 그에게 있습니다.
아이는 이해의 편리를 위해서 자연스럽게 어느 하나를 지배적 언어로서 선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영어가 되느냐 한국어가 되느냐의 문제는 언어의 특수성에 의해서가 아니고 그 특정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아기 자신과의 유대 관계나 습득 과정에서의 흥미 유발 요인, 그리고 노출되는 빈도 등에 의해 영향 받는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른 어떤 요소보다, 노출의 빈도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번 자리 잡은 언어는 얼마의 기간 동안 역할을 할까요?
이것은 크게 보아, 아이의 언어 학습시의 나이, 그리고 그 언어를 '자기의 언어(모국어)로서 보유해왔던 기간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래서 대략 다음과 같은 기간을 상정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성인이 될 그 시기까지 하나의 외국어를 잊어버리지 않고 자기 언어로서 보유하고 있으려면 만5,6세의 경우 향후 5년여, 7,8,9세의 경우 향후 4년여, 10-12세의 경우 향후 3년여가 걸린다는게 유력한 가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이론은 저의 세 아이들(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만 18, 16, 14세)의 성장과정을 통하여 몸소 겪고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만 12세를 기점으로 외국어 학습 능력은 그 이전 시기에 비해 급하게 쇠하게 됩니다. 대신, 이 시기에 도달하는 동안에 걸쳐 자기의 언어로서 굳어진 외국어는 그만큼 항구적으로 보유되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겁니다. 이 시기가 되면 언어가 통신 수단의 차원을 너머 '추상사고의 도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므로 인간이 사고를 멈추지 않고 있는 한 그 언어를 뇌 안에서 사용하게 되는 겁니다.
물론 오랜 기간에 걸쳐 그 외국어의 필요성이 전혀 없었고 자극의 경험도 없다면 정말 퇴화하고 마는 것처럼 일단 표면에서는 사라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세 전후한 기간에 걸쳐 견고히 입력돼 있던 (즉, 그때까지 최소 3년간 학습했던) 외국어는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결코 깨끗이 지워지지 않고 뇌의 한 부분에 저장돼 있다가 나중 재출력을 부단히 시도할때 줄줄이 사탕처럼 끌려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아직 이 이론이 어떤 경우나, 어느 아동에게나 적용된다는 법칙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학계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는 유력한 이론입니다)
그러나 태어나서부터 모국어로 배웠을지라도 10세경까지만 익히고 중단한 언어는 뇌 속에 항구적으로 저장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4세부터 9세까지 5년에 걸쳐 학습한 언어는 그 긴 기간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언어로서 남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또, 9세부터 11세까지 2년에 걸쳐 익힌 언어도 항구성을 잃습니다. 역시 7세에서부터 11세에 걸친 4년간의 학습도 항구성을 담보하는덴 좀 애매하다는 뜻입니다. (물론 여기선 개인차를 감안하지 않은 일반론만을 말하는 것입니다)
조기 유학온 8세에서 13세 사이의 아이의 경우, 온 지 2년여 밖에 안됐는데 자유자재로 영어를 구사하는걸 우리가 종종 보게 됩니다. 보통 사람의 관찰력으로, 10세의 아이가 유창하게 영어를 말하는 것을 보게 되면 우리는 그 아이가 영어를 마스터했다고 성급하게 결론내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잘 못 본 겁니다.
자유자재로 회화를 하는 것과 언어를 완벽하게 사용한다는 차원은 한참 거리가 있는 것이며, 또 그 언어를 매개로 추상적인 사고를 하는 차원과는 더구나 한참 떨어진 얘기가 됩니다. 그러니까 한 언어가 항구적으로 자기의 것이 되기 위해선 이 추상적 사고가 가능하고 그 시도가 어느 정도 일상적인 일이 되고 말 그 나이, 즉 최소한 만 12세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추상적 사고의 능력이란 모든 구상적 사고의 범주를 뛰어 넘은 차원을 말하는데 이 상태는 사물과 현상에 대한 개념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창조해내고 그 창조된 개념을 바탕으로 다시 재창조를 해내는 차원을 말합니다. 이런 개념화 작업에서 인간은 입으로 말할 때보다 훨씬 빠르게 '속'으로 말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며 제 안에 가지고 있는 언어 자체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해내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네이티브 스피커인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회화를 하는 것입니다.
이 능력이 생기지 않은 나이에 있는 아이의 영어 구사 능력은 당연 완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결국 항구적인 언어로 남을 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 아이가 조잘조잘 끊임없이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이제 갖췄더라도 추상을 창조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애라면 그 언어 능력은 점차 퇴행하고 맙니다. 그러니 그런 아이들을 보고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고 말하는 것은 오해의 소치라고 봅니다.
어린이들의 영어 본토식 발음이나 속사포로 말하기,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영어 감탄사 등을 봤을때 그저 경탄하고 부러워 할 일이 하등 아니라는 겁니다. (그들이 일상으로 쓰는 말일수록 빠른 속도로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의 회화능력 보다는, 그것이 과연 그 아이의 ‘항구적 언어’로서 남을 수 있느냐의 여부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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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게시판’의 2007년 12월 25일 자에 제(새미아빠)가 올린 “미동부 명문 보딩스쿨에 재학중인..”이란 글을 읽어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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