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님이 아래 댓글에서 저에게 물으셨네요. “그러니까.. 유아 영어가 오히려 불필요하고 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는 말로 해석해도 될까요? (조심스레)…”
저도 조심스레 답변드려볼께요.
유아영어는 오히려 불필요하고 오히려 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고 전 봅니다. 왜냐 하면요, 유아는 아직 자신안에 지배적(dominant) 언어를 미쳐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우리말의 대체적인 구조를 체화하는데까지는 약 만5세까지 가야한다고 봐요.)
우리 엄마들이 저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영어를 가르치려는 기대는 결국 영어를 제2언어로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겠지요. 즉, 영어를 한국말의 연장으로서 ‘단어’를 몇 개 더 얹어 사용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 ‘문장’을 만들거나 영어 자체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려는 것일 겁니다.
즉, 단어나 숙어가 아니라 <문법적으로 가지런한 문장>—적어도 뒤죽박죽이지 않은 문장—을 만드는 능력입니다. 게다가 이 문장은 한국말을 통해 쥐어 짜낸 번역문이 아니라 영어라는 자체의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말’이 되도록 하는 것이죠.
잘 아시다시피 한국말과 일본말은 그 뿌리가 같지 않습니까. 우리가 일본어를 배우는 건 영어를 배우는 것에 비해 얼마나 쉽습니까. 우선 어순이 같지요. 기본적으로는 거의 우리말 문장에서 일본어로 단어만 바꾸면 될 정도입니다. 이렇게 문법구조가 비슷한 언어를 배울 때에는 영어를 배울 때와 같은 갈등상황에 놓이지 않는 것이지요. 즉, 한국말이 지배적언어로 채 자리 잡기 전에 일본어를 배운다 해도 일본어 자체가 한국말이라는 지배적언어의 학습을 오히려 돕는 기능을 할 것입니다.(우리는 그 실례는 상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인 유아가 불어나 스페인어를 배울 때도 역시 큰 갈등(헷갈려하거나 혼동하는)을 겪지 않고 그 외국어를 수월하게 배울 수 있는 실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말과 서양언어는 정말 상극입니다. 쉽게 말해서, 각 단어의 발음에서부터 판이합니다. 혀를 제대로 굴릴 수도 없게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일단 혀를 굴릴 수 있어도 한국말에는없는 강세가 모든 영어 단어, 단어에 다 있습니다. 우리말에서는 무시해도 의사소통상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 단음 장음이 많은 영어 단어에는 붙어있습니다. 이것 하나로 의사소통이 딱 막혀버리고 맙니다. 우리말에는 서로 혼동해 쓰면서도 소통상 문제가 안되는 ‘에’와 ‘애’의 구분이 영어에는 똑부러지게 명확하여 이것만으로도 단어의 뜻이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말처럼 평이한 억양과는 달리 영어에는 진폭이 큰 인토네이션이 있습니다. 그리고 단어와 단어를 ‘엮어주는’ 어미나 접사 등이 없으면 말이 안되는 한국말과는 달리, 영어에는 그것이 없어 단어들을 어순에 맞게 나열하기만 하면 되게 되어있습니다 (물론 단어의 꼴을 그 단어 자체 안에서 바꾸는 것은 빈번하게 있습니다만).
게다가 결정적인 차이는 어순이 거꾸로라는 데 있습니다.
자, 이렇게 한국말과는 최상극에 놓인 영어라는 언어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과연 누가 우리에게 영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영어학습의 목적이 영어로 ‘문장’—‘words and phrases’가 아닌—을 만들어 소통하는 데 있다면 말이죠. 어떠한 교재도 교사진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제 말이 너무 길어졌군요. 되도록 생략해서 말씀드릴께요.)
그러니, 유아 그리고 초등 저학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실 적에 엄마들께서 일단 기대치를 (현실적으로!) 낮춰잡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가 영어원어민과 매일같이 만나는 환경이 안되는 한에는 엄마분들이 아무리 노력을 하셔도 그 열성만으로는 아이가 영어의 언어구조를 체화하는 수준으로 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테니까요.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아적부터 영어를 가르쳐주고 싶다고 하신다면…
그 목표를 (영어를 배운다라는 독립 목표로 놓지 마시고) 아이의 두뇌발달을 자극하는 한 방편이라는 수준으로 두시는 게 좋지않을까 생각합니다. 즉 이것으로 내 아이가 이제 영어를 술술 말하는 영어도사가 될 것이다가 아니고, 이 학습으로 내 아이가 두뇌가 발달하면 그 총명해진 두뇌로 나중 국어도 수학도 영어도 과학도 더 잘 하게되겠지라고 기대하시는 거지요. 이렇게 현실적으로 수정된 목표를 가지게 된다면 영어학습은 엄마가 정한 진도가 아니라 그 아이 고유의 호기심과 유희의욕에만 의존해야 하겠지요.
초등3학년부터 영어가 학교 커리큘럼에 들게 된지 10여년, 그와 함께 한국 엄마분이 나선 희생적인 엄마표 영어가 실제로 원래의 목표인 <영어로 비교적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주기>에 얼마나 성공적으로 도달했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앞으로 더 시간이 가면 그 목표에 더 근접하리라는 믿음이 있으시는지요. 현실은 우리들의 실험이 실패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시위하고 있지 않나요?
거의 공상에 저 가까운 목표는, 출판사와 미디어, 그리고 확신이 없는 언어학자들, 그리고 순진한 한국의 엄마들의 추종에 의하여 확고한 문화로 굳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이제라도 그것을 비판하고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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