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의 착각은 우리의 운명이다.
뽀얀 나이의 복희는 대학생청년의 고급스러운 표정과 오라버니와 같은 자상함을 평생 잊지못하고 살아갑니다.
지질이도 가난했던 시절, 그 중 유난히 더 더럽고 가난한 시골여자아이에게 피어난 우유빛깔 사랑씨..
청년이 건넨 마알간 글리세린으로 몸이 점점 더 귀해지고 내 몸속 숨어있는 황홀한 감각도 살아나는 신비체험을 느낄 즈음...
"너 왜 요새 자꾸 암내를 풍기냐?"
그가 나에게 했던 첫번째 착각.
그녀는 강간으로 원치않은 임신을 하고, 방산시장 가게주인의 후처로 들어가게됩니다.
본디 천성이 모질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벌레한마리도 못 죽일 만큼 가녀린 여자는 아니었지만,
그리하는 것이 참으로 실속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복희씨는
잇속을 챙겨야 살아남는 시장통에서 엉성하게 어설픈 모습을 일종의 전술로 삼아서 삽니다.
친절한 복희씨는 전실아들에게 친절했습니다. 구박하거나 모질게 굴지 않았죠.
외손자를 끼고 안방차지하던 전처장모는 복희씨의 모질지 않고 얼뜸에 마음이 누그러져 제 집으로 가버렸지요.
친절한 복희씨는 남편이 원하는 대로 친절히 잠자리를 응합니다.
여편네가 돈을 흔하게 쓰려면 서방이 돈을 잘 벌어야 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죠.
나는 그 짓을 하는 동안을 견디기 위해 내가 지금 하는 짓은 말이나 소를 혹사시키기 위해 모질게 채찍질하고 있는 것으로,
그리고 내가 지르고 있는 비명은 내 소리가 아니라 채찍질을 당하는 마소의 비명인 것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꿔 생각했다.
착각도 길들이면 진짜 같아지는 법이다.
친절한 복희씨는 복수를 꿈꿉니다.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자기와 띠동갑인 홀아비에게 겁탈당해 억지결혼하여 전처소실까지 합하여 오남매를 거둔 복희씨는
평생 몸에 지닌 아편덩어리를 만지작거리며 자신에 대한 살의를 잠재웠습니다.
그 오남매가 다 출가를 하고 이제 복희씨곁에 남은 것은 오른쪽 반신이 흐느적대고 , 제 입안의 침도 잘 수습못하는 중풍에 걸린 남편뿐입니다.
' 입술이 오므라지 못하니까 나를 '복희야'라고 부르고 싶을때는 입가에 심한 경련이 인다. 나는 그게 불쌍하지 않고 고소하다.'
복희씨는 요즘 남편의 하체를 씻어줄때 그가 질러대는 소리에서 성적인 낌새를 느낍니다.
그녀안에서 출구를 찾고 있는 잔인한 충동이 겁난 그녀는 다시금 아편을 만지작 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친정 엄마가 자기 부모님을 살리려고 도망쳐 가지고 온 아편을 복희씨는 도시가 무서워 갖고 나왔습니다.
마치 은장도처럼 늘 자신의 품에 지니며 언제든지 죽을 수도 있다고 늘 스스로를 위로하며 버티게 해 주던 그 아편은
사실 복희씨 운명을 점점 죽음으로 몰고가는 쇠사슬이었습니다.
죽을 각오로 그녀의 삶을 버티게 함과 동시에 그렇게 죽을만큼 힘들게 자신의 목을 죄는 올가미였던 것입니다.
산책을 나갔던 남편이 약국으로 심부름을 보내어 딸보다 어린 여자에게 경멸의 시선을 받으며 정력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난 후
복희씨는 그 생철갑을 손에 쥐고 한강으로 향합니다.
그와 나의 착각은 우리의 운명이다.
그 갑은 너무 작아서 허공에 어떤 선을 그었는지, 한강에 무슨 파문을 일으켰는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가 죽고 내가 죽는다 해도 이 세상엔 그만한 흔적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허공에서 치마 두른 한 여자가 한 남자의 깍짓동만 한 허리를 껴안고 일단 하늘 높이 비상해 찰나의 자유를 맛보고 나서 곧장 강물로 추락하는 환을,인생 절정의 순간이 이러리라 싶게 터질 듯한 환희로 지켜본다.
복희씨는 그 죽음의 생철갑을 한강으로 던져버립니다. 죽을 만큼 힘들었던 그녀의 인생, 인내, 위선, 가식도 함께 강물로 추락합니다.
그래봤자 인생에서 영원하리라 생각했던 것들도 일종의 신기루같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 그저 환과 같다는 것.
인생이란 거부할 수도, 헤어날 수도 없다는 것.
그녀는 죽음의 충동이 일렁일때마다 죽을만큼 힘들게 인내하며 만지작 거리던 아편덩어리를 던져버림으로서
적극적인 삶의 자세로 변환하는 결말을 보여줍니다.
이제 박완서의 친절한 복희씨를 마무리합니다
노인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생.. 그 허위, 가식, 위선, 허탈..
그녀의 문장은 지루한듯 고요하면서도 섬뜩하리만치 빠르고 날카롭습니다.
독자로 하여금 섣부른 비판이나 권선징악, 선악의 구분을 요구하지 않은채 중심을 유지하며 읽히도록 공정하기까지합니다.
그녀의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어린시절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바로 625전쟁이 발발하는 통에 학교를 중퇴하고 맙니다.
그리고 전쟁으로 오빠와 숙부를 잃습니다.
1953년 결혼하고 이어 네 딸과 외아들을 낳아 키우던 중 1970년 나이 마흔에 문단에 등단하게 됩니다.
그녀의 작품은 분단의 아픔을 다룬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폼과,
가진자의 허례허식에 대한 시각,
그리고 여성의 정체성찾기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작품활동을 하던 중
그녀는 외아들을 잃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지않으면 그 지루함을 어떻게 견뎠겠는가... 하는 그녀의 글에서 그녀의 아픔을 봅니다.
그녀의 글에는 한결같이 인생의 극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녀의 따뜻하고 맑은 이야기, 겸손한 글쓰기에 대한 향수가 너무나 그립습니다.
이제 그녀의 이야기를 더이상 들을 수 없는 슬픔에 한없이 잠겨봅니다.
그녀는 떠났지만, 그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은 남았습니다. 조금더 긴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안녕히 쉬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