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의 지배적 언어가 형성되지 못한 것은 분명 언어발달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원인이 유아영어를 접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지배적 언어가 한국말이라고 할 때 지배적 언어가 형성되지 못하도록 하는 환경은 한국말을 배울 환경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일찍부터 영어를 배웠기 때문이 아니라요.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에서 산다고 해서 사람들이 다 한국말을 잘하고, 말을 잘 하던가요? 분명 말을 잘하는 사람과 말을 못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한글책을 많이 접하고, 한국말로 의사소통할 기회가 많았던 아이라면 한국말을 잘 할 거라고 생각해요. 이와 병행해서 외국어도 접할 기회가 많았던 아이는 외국어도 함께 잘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에서 살면서 영어는 잘하지만 한국말은 못하는 아이들이 있을텐데요, 그런 아이들은 일찍부터 영어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말을 접할 기회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려는 노력만큼 미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려고 노력했다면 이중언어에 성공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쑥쑥엄마들의 노력들을 보면 참 놀랍습니다.
영어를 한다고 해서 한국말 발달을 위한 노력을 안하는 게 아니거든요.
한국어 발달을 위한 자극도 충분히 주면서 영어까지 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한가지 언어에 100의 자극도 주기 힘든데 두가지 언어로 200의 자극을 주고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아이들이 스트레스 받는 것도 아닌 거 같아요.
오히려 맨날 그림책 읽어달라, 노래틀어달라고 비디오 틀어달라 졸라대니 게으른 엄마에겐 힘든 일이고 스트레스죠.
제 경험으로는 어릴 적의 유아영어에 대한 기회를 놓치면 이중언어에 대한 성공은 고난의 길이라고 생각해요.
: 새미아빠님의 글입니다.
every님이 아래 댓글에서 저에게 물으셨네요. “그러니까.. 유아 영어가 오히려 불필요하고 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는 말로 해석해도 될까요? (조심스레)…”
저도 조심스레 답변드려볼께요.
유아영어는 오히려 불필요하고 오히려 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고 전 봅니다. 왜냐 하면요, 유아는 아직 자신안에 지배적(dominant) 언어를 미쳐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우리말의 대체적인 구조를 체화하는데까지는 약 만5세까지 가야한다고 봐요.)
우리 엄마들이 저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영어를 가르치려는 기대는 결국 영어를 제2언어로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겠지요. 즉, 영어를 한국말의 연장으로서 ‘단어’를 몇 개 더 얹어 사용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 ‘문장’을 만들거나 영어 자체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려는 것일 겁니다.
즉, 단어나 숙어가 아니라 <문법적으로 가지런한 문장>—적어도 뒤죽박죽이지 않은 문장—을 만드는 능력입니다. 게다가 이 문장은 한국말을 통해 쥐어 짜낸 번역문이 아니라 영어라는 자체의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말’이 되도록 하는 것이죠.
잘 아시다시피 한국말과 일본말은 그 뿌리가 같지 않습니까. 우리가 일본어를 배우는 건 영어를 배우는 것에 비해 얼마나 쉽습니까. 우선 어순이 같지요. 기본적으로는 거의 우리말 문장에서 일본어로 단어만 바꾸면 될 정도입니다. 이렇게 문법구조가 비슷한 언어를 배울 때에는 영어를 배울 때와 같은 갈등상황에 놓이지 않는 것이지요. 즉, 한국말이 지배적언어로 채 자리 잡기 전에 일본어를 배운다 해도 일본어 자체가 한국말이라는 지배적언어의 학습을 오히려 돕는 기능을 할 것입니다.(우리는 그 실례는 상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인 유아가 불어나 스페인어를 배울 때도 역시 큰 갈등(헷갈려하거나 혼동하는)을 겪지 않고 그 외국어를 수월하게 배울 수 있는 실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말과 서양언어는 정말 상극입니다. 쉽게 말해서, 각 단어의 발음에서부터 판이합니다. 혀를 제대로 굴릴 수도 없게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일단 혀를 굴릴 수 있어도 한국말에는없는 강세가 모든 영어 단어, 단어에 다 있습니다. 우리말에서는 무시해도 의사소통상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 단음 장음이 많은 영어 단어에는 붙어있습니다. 이것 하나로 의사소통이 딱 막혀버리고 맙니다. 우리말에는 서로 혼동해 쓰면서도 소통상 문제가 안되는 ‘에’와 ‘애’의 구분이 영어에는 똑부러지게 명확하여 이것만으로도 단어의 뜻이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말처럼 평이한 억양과는 달리 영어에는 진폭이 큰 인토네이션이 있습니다. 그리고 단어와 단어를 ‘엮어주는’ 어미나 접사 등이 없으면 말이 안되는 한국말과는 달리, 영어에는 그것이 없어 단어들을 어순에 맞게 나열하기만 하면 되게 되어있습니다 (물론 단어의 꼴을 그 단어 자체 안에서 바꾸는 것은 빈번하게 있습니다만).
게다가 결정적인 차이는 어순이 거꾸로라는 데 있습니다.
자, 이렇게 한국말과는 최상극에 놓인 영어라는 언어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과연 누가 우리에게 영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영어학습의 목적이 영어로 ‘문장’—‘words and phrases’가 아닌—을 만들어 소통하는 데 있다면 말이죠. 어떠한 교재도 교사진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제 말이 너무 길어졌군요. 되도록 생략해서 말씀드릴께요.)
그러니, 유아 그리고 초등 저학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실 적에 엄마들께서 일단 기대치를 (현실적으로!) 낮춰잡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가 영어원어민과 매일같이 만나는 환경이 안되는 한에는 엄마분들이 아무리 노력을 하셔도 그 열성만으로는 아이가 영어의 언어구조를 체화하는 수준으로 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테니까요.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아적부터 영어를 가르쳐주고 싶다고 하신다면…
그 목표를 (영어를 배운다라는 독립 목표로 놓지 마시고) 아이의 두뇌발달을 자극하는 한 방편이라는 수준으로 두시는 게 좋지않을까 생각합니다. 즉 이것으로 내 아이가 이제 영어를 술술 말하는 영어도사가 될 것이다가 아니고, 이 학습으로 내 아이가 두뇌가 발달하면 그 총명해진 두뇌로 나중 국어도 수학도 영어도 과학도 더 잘 하게되겠지라고 기대하시는 거지요. 이렇게 현실적으로 수정된 목표를 가지게 된다면 영어학습은 엄마가 정한 진도가 아니라 그 아이 고유의 호기심과 유희의욕에만 의존해야 하겠지요.
초등3학년부터 영어가 학교 커리큘럼에 들게 된지 10여년, 그와 함께 한국 엄마분이 나선 희생적인 엄마표 영어가 실제로 원래의 목표인 <영어로 비교적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주기>에 얼마나 성공적으로 도달했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앞으로 더 시간이 가면 그 목표에 더 근접하리라는 믿음이 있으시는지요. 현실은 우리들의 실험이 실패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시위하고 있지 않나요?
거의 공상에 저 가까운 목표는, 출판사와 미디어, 그리고 확신이 없는 언어학자들, 그리고 순진한 한국의 엄마들의 추종에 의하여 확고한 문화로 굳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이제라도 그것을 비판하고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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