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어라.
이 말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 배고픈 민중이
'빵이 없다. 우리에게 빵을 달라'라는 구호를 외친것에 대해 무지몽매(?), 혹은 순진한
마리 앙트와네트가 했다는 말입니다.
혹자는 케이크가 아니라 과자라는 둥, 혹자는 바게트였다는 둥,
혹자는 마리 앙트와네트는 그런 말이 한적 없는데 후세에서 날조된 말이라는 둥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이 한마디로 호화로운 삶을 살면서 현실에는 무지했던 그녀를 사람들은 곧잘 언급하곤 합니다.
과연 마리 앙트와네트의 입장에서는 빵이 없는 삶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의 환경이 그랬고 자라온 인생이 그랬으니 일반인들의 궁핍한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겠지요.
그래서 마리 앙트와네트의 저 이야기는 순진해서, 몰라서 지은 죄이므로
욕할수만도 없는 그녀를 묘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연 '몰랐다'는 이유만으로 면죄가 될까요?
그녀의 위치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무지, 군림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대중들을 보살피고 그들을 위해 고민해야 하는 위치였다는 것을 몰랐다는 죄야말로
그녀의, 혹은 그녀를 둘러싼 무리들의 가장 큰 죄일 것입니다.
가끔, 아주 가끔 쑥쑥의 게시판에서는 외국에서 살고있는,
혹은 외국에서 거주를 하거나 공부를 하신 분들의 글이 올라옵니다.
그 방향도 여러가지여서 한가지로 정의할수는 없지만
대체로 드러내놓고 쓰시는 분들은 거의 다 '유아영어, 혹은 한국에서의 영어의 불필요성, 또는 한계점'을
주장하기 위해 글을 올리십니다.
이런 주장과 다른 경우는 조용히 게시판에서 흐름을 따라가거나
간간이 나와서 도움을 주시거나 하시지요.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겪어보지 않은 길에 대해서 확정적으로 얘기해서는 안된다.'입니다.
척박한 한국의 환경에서 영어를 가르쳐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미 머리가 굵을대로 굵은데다가 입시위주의 영어교육에 피폐해져서
영어라면 몸서리 치는 중고생들을 만나본 적이 있으신가요?
뒤늦게 사회생활을 하며 피나는 경쟁을 위한 영어공부를 하다가도
유학파들의 넘을 수 없는 언어장벽때문에 좌절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유아들에게 맞는 언어교육을 시켜야 된다는 명제를 알면서도
막상 내가 실력이 안되서 좋은 교재를 구해주려고 하면
턱없이 부족한 도서관, 거기서도 턱없이 부족한 영어책의 수 때문에
허탈해본적이 있으신가요?
그래서 눈 딱감고 결혼반지 팔아서 자식 영어책 마련해준 부모 얘기 들어본적 있으세요?
전 봤습니다. 많이 봤습니다. 그런 분들과 함께 안타까와하기도 하고, 울어보기도 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왜 아직 우리 현실은 이정도 밖에 안되는가 분노해보기도 했습니다.
미국에 있기 때문에 한국어를 못가르쳤다는 것은,
지금 한국에서 모자라는 실력으로 영어를 어떻게든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떠먹여보고자 하는 엄마들에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으십니다. 무엇보다 새미아빠님은 이렇게 훌륭한 주장을 한국어로 펼치실
국어실력이 있으신, 멋진 한국어 선생님이시니까요.
우리는 그 실력도 안되면서 이 현실에 적응하고 이 안에서 최선의 결과치를 끌어내기 위해
같이 고민하고 격려하고 나눠왔습니다.
물론, 이런 반문도 가능합니다.
'그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나요?'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영어가 뭔데요?'
저 역시 목숨 걸고 영어교육을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점점 영어실력이 부의 상징처럼 되버리고
사회계층이 대를 물려가며 고착화되어 가는 이 현실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것 뿐입니다.
그 '최선'이 어떤 분에게는 정말 힘든 길일 수도 있고, 설렁설렁 콧노래 부르며 따라가는 길일 수도 있고,
어떤 분에게는 가보지도 않고 안되는 길이라고 비웃을 수 있는 길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영어권 문화에서 ESL 환경으로 쉽게 영어를 접할 수 있는 분들은 이런 현실을 이해 못할 것입니다.
유학이라도 갈 기회가 있어서 어쨌든 더 많은 노출이 가능했던 분들은
한국의 엄마들이 이렇게까지 영어 때문에 힘들어 하는 이유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왜? 빵이 없으면 케이크 먹으면 되잖아?'
이런 마리 앙트와네트의 일화처럼 느껴지기도 하는건 그때문입니다.
풍요로운 환경 속에 있는 이들은 결핍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혹은 약간 다른 얘기지만, '유아영어가 불필요하다'라는 명제가 아니라
'한국에서의 영어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봅니다.
'영어를 잘한다'라는 기준이야 말로 주관적이고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영어권에 있으면서 '잘한다'의 기준을 한국에 들이댄다면
할 이야기가 아주 아주 많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사교육을 통해서든, 엄마표를 통해서든, 혹은 공교육을 통해서든
한국아이들의 영어실력은 틀림없이 성장하고 있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수많은 연구논문이 증명하고 있기에
이곳 쑥쑥에서 체감하고 있는 증거를 굳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반박할 수 있습니다.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한계가 있더라도 언젠가 뛰어넘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기 위해
지금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끔 우리의 교육계에서도 새미아빠님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전문가분들을 가끔 봅니다.
자녀들과 함께 유학시절을 보내서 이 힘든 한국에서의 어린이 영어교육현실을
직접 체험해보지 않은 분이, 지금와서 유아영어 무용론을 주장하는가 하면
자기 손주는 무릎에 앉혀놓고 영어로 얘기하신다는 분이 방송에서는 유아영어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게 한국의 현실입니다.
물론 이런 분들의 주장이 100% 그르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과열된 유아영어 양상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현상에 대한
브레이크 역할을 해주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안된다'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 한국의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해라.'를 제시해주는 교수님들이 많지 않다는 현실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많지도 않습니다.)
마리 앙트와네트를 떠올리게 합니다. 정말 그 분들이 한국의 영어교육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같이 고민해본 적이 있는지.
잘못된 현상만을 비판하고 그에 대한 대안제시에는 소홀하지 않았는지.
'유아영어가 불필요하다, 혹은 엄마표 영어는 불완전하다'는 의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잘 알겠습니다. 또 새미아빠님의 논리 또한 많은 분들이 겸허히
수용하고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것은
귀족들의 특권이었던 교육을 '공교육'이라는 개념을 통해
국민의 자격이 있는 모든 이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게 해준 것입니다.
그러나 '평등'의 개념인 이 공교육이 '자유'의 개념인 사교육과 배치되면서
마구 흔들리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아마 밖에 있는 분들은 절대로,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 틈바구니에서 공교육도 아니고 사교육도 아닌, 엄마들 스스로 일어서서 대안을 찾고자 하는
움직임은 비단 한국에서만 국한된 상황은 아닙니다.
앞서가는 부모들이라 해도 좋고, 혹은 나대는 부모들이라 해도 좋습니다.
어쨌든 이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이곳의 교육접근법에 대해 공감하고 실천하셨던 분들이라면
새미아빠님의 주장에서 옥석을 가려내고 나름대로의 반론도 도출해내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희가 생각해볼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더 긴글을 쓰고 싶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네요.
기회가 된다면 머릿속에서 엉켜 있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풀어보겠습니다.^^
: 새미아빠님의 글입니다.
사랑가득님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를 읽고..
저의 글이 심정적으로 엄마분들의 마음을 건드린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제 글이 전하고자 하는 뜻 자체가 그렇다보니, 저에게 동의하지 않는 분께는 반대만으로 끝나지 않고 동시에 기분을 상해주기까지 하리라는 것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글을 썼습니다. 주장하는 논지 자체는 적어도 여러 엄마분들께서 읽어봐줄 만 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의 글을 만약 더욱 신중히 읽으셨다면 간파하셨으리라 봅니다만 그 글 전체에 걸치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을 간과하고 읽으셨기 때문에 님의 비판이 논지에 대한 반론의 근거를 제시하기보다는 감정적인 반대 선언에 그치고 말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소위 '엄마표영어'를 반대한다고 적었던 윗 글의 전제는,
첫 째, 아이가 <우리말에 대한 대체적인 얼개를 충실히 소화하기 전에 배우는> 영어공부에 대해 반대하다는 것입니다. 즉, 저는 만5세 이전에 시작하는 영어공부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그 효용을 불신한다는 뜻이고 초등저학년인 만 7,8세경까지의 영어공부도 영어를 저 스스로 문장으로 ‘만들어서’ 쓰게 만드는 목표 달성에는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좋은 교재를 사용하더라도 그 목표—통상 반복으로 쓰이는 단문을 말하고 마는 수준이 아니라, 말을 영어 어순에 맞는 옳은 문장을 스피킹에서 창작해내는 수준을 목표로 잡았을 때를 말합니다—에 도달하기는 역시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있다는 주장입니다.
두 번째의 전제는, 8,9세에 이르러 우리말이 더욱 굳건히 자리잡고 난 뒤, 이제 전혀 다른 언어의 구조를 받아들일 만한 <여력>이 생겼을 때 더욱 인텐시브하게 시작하는 영어 학습이 정말 확실하게 결실을 보아나가는 방법이라는 주장을 깔고 있었던 겁니다.
엄마들께서 자신은 이렇게 충분히 성과를 보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저의 주장이 곧 엉터리임을 증명했다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성공적이라고 주장하는 엄마들이 열 분 계시다면 똑 같은 방법과 열정을 동원했을 지언정 성공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고 토로하시는 분들이 그보다 몇 배 많을 것임은 자명합니다. 성공했다라고 증언하는 유독 뛰어하신 몇 몇 분들 뒤에는 낭패감과 자괴감에 입을 닫고 계시는 수많은 다수가 존재하는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이 사실을 부정하시면 안됩니다.
또한 성공적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말하는 기준이 제가 말하는 기준 보다 낮은 단계로 설정되었던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즉, 나의 자녀가 지금 한창 영어능력이 향상되고는 있을지언정, 우리가 원래 선정했던 ‘비교적 자유로운 문장구사 능력’이라는 목표에는 한참 멀리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겁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어느 단계인지는 몰라도 영어학습 방법론이 뭔가 잘못돼있었다라고 의심해봐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감히 주장하는 이유는, 4, 5, 6,세의 미국아이가 같은 계열인 독어 등을 우리 한국 엄마표 영어의 열정으로 학습했다면 이미 그 기간 전에 일찌감치 그 외국어를 완벽히 마스터를 해버렸을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의 엄마분들이 어린이 영어 때문에 얼마나 큰 희생을 하고 있으며 또 좌절이 큰 지를 정말 안타깝게 지켜보는 사람입니다. 저의 글과 같은 돌출된 주장이 많은 분들께 혼란을 줄 수도 있음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제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깊은 슬픔을 안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만14, 16, 18세의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이 영어를 확고한 저희들의 모국어로 만들기 전에 한국어를 동시에 배우면서 아이들이 커다란 혼동을 겪고 그만 한국말을 배우는 동기를 점차 잃고 말았던 데 있습니다. (물론, 더 일찍 한국말을 모국어로 가르쳐주는 기회를 잃었기 때문에 영어가 모국어가 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있습니다) 저의 뼈아픈 실패를 거울 삼고 제가 배우고 연구한 지식을 총동원하여 말씀드렸던 겁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글이 파문을 던졌다면 전 다행이었다라고 칩니다. 그러나 엄마분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풀을 꺾으려는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단지, 좀 더 효과적이고 또한 인간적이기도 한—엄마도 살고(좀 자유롭게 살고) 아이도 더 즐겁게 살수있는—학습방법을 개발해야만 할 때라고 믿어 저의 생각을 개진해본 겁니다.
우리 한국엄마분들의 열정은 불가능도 가능으로 버젓이 바꿔놓지만 간혹 그것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너무 가혹한 주문이라고는 생각 안하십니가?


쑥쑥몰
체험이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