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배우'라는 이 아이는 키가 크고 서글서글한 외모에 표정이 밝고 씩씩하며 말도 똑소리 나게 했습니다. 저를 처음 보면서도 눈을 맞추고 방긋 웃는 걸 보니 친구들은 물론 학교 선생님들께 예쁨을 받겠다 싶더군요.
아이 부모님의 고민은, 우수한 다른 과목에 비해 현전히 낮은 수학 성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는 않는 것 같았어요. 그 보다는 어떻게든 부모님을 설득해서 오디션에 가야겠다는 생각만 강해 보였습니다.
저는 이 아이에게 제가 얼마 전에 상담을 했던 가수가 꿈이라는 남자 아이(초6)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너와 꿈이 비슷한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자기가 가수가 되기 위해서는 수학을 잘 해야한다던데?"
"?"
"자기는 노래를 잘 못하고 춤은 좀 잘 추는 편인데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이 있다기 보다는 틈만나면 연습을 해서인데, 그걸로는 타고난 사람들을 이길 수 없을 것 같대. 그걸 보충하려면 학벌이 필요하다는 거야.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수나 배우에게도 학벌을 요구을 하기 때문에 학벌이 좋으면 춤을 좀 못 추어도 유명해 질 수 있다고. 그리고 또 자기가 가수로 성공을 못 할 수도 있으니까 차선책이 필요하대. 20대 후반까지 최대한 노력을 해 보았다가 가수로 성공을 못하면 과감히 포기하고 회사에 취직을 하겠대. 그때 회사에 취직을 하려면 또 학벌이 필요하니까 지금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거야."
이 말도 덧붙였습니다.
"너는 상당히 눈이 높은 것 같아. 그냥저냥하는 배우가 아니라 최고의 배우가 되고 싶어하잖아, 그치? 배우 중에 연기만 잘 하는 사람도 있지만 공부도 잘 하는 배우가 있어. 내가 보기에 너는 수많은 배우 지망생들 중에서 너를 차별시킬수 있는 뛰어난 학습능력이 있어. 네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네가 가진 그 능력을 잘 활용하면 좋겠구나. 내가 가지지 못한 것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걸 활용하는게 더 쉽잖아?"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이를 내 보낸 후 엄마 아빠와의 면담 차례...
아이의 아빠는 근심이 가득해 보였고, 엄마는 아이와 남편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아빠는 성실한 분인 것 같고 엄마는 다정한 분인 것 같았구요.
부부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만, 저는 솔직한 생각이 아닌 것으로 느꼈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이에게 솔직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부모님께서도 솔직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생각해 보셨으면 하구요. 아이가 원하는 것을 받아주겠다는 것은 머리로 하는 생각이고, 아이가 원하는 걸 해 주면서도 실제로는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못 마땅하시잖아요? 이 아이는 고집이 강해서 말로 설득하기는 힘드실 거에요. 이런 경우에는 본인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기회를 주는게 좋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오디션을 한 번이라도 보는 것이었고, 부모가 원하는 것은 수학 공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에게는 "자식이라고 해서 부모에게 무조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해달라고 하는 건 너무 뻔뻔한 거지."라고 했고, 부모님들에게는 "부모라고 해서 자식에게 무조건 부모가 원하는대로 살라고 하는 것도 자식을 위한 일은 또 아니잖아요."라고 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각자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 주는 건 어떨까하는 제안을 했고, 아이와 부모가 모두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증인이 되기로~
그리하여 부모님이 원하는 만큼 1학기 수학 성적을 받고, 아이는 1학기에 오디션에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1학기말에 그 결과를 보고나서 2학기 때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서는 부모와 아이가 다시 합의하기고 하구요.
부모 입장에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해 주면서 그에 대해 공치사하는 것이 쑥스럽고 치사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자기가 원하기만 하면 그게 무엇이던 부모님이 해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부모로서는 야속하고 미운 마음이 들게 됩니다. 감정을 숨겨도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티가 나게 되겠지요.
어느 한 쪽이 무조건 복종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동등한 인격체니까 평소 공평하게 생활하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게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