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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 26일 일요일]
형태는 시간과 공간의 요소를 지니며
내적 필연성에서 태어난 감정과 지식의 결합이다.
눈에 보이는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형태가 지니고 있는 내적 울림과 생명이 중요하다
-칸딘스키-
비가 부슬거리며 내리는 주말..
시댁에 들러 며칠 맡겨 놓았던 아이를 데리고 나와 바로 성곡미술관으로 향했다.
3호선에서 내려 다니곤 했었는데..5호선에서 내려서도 갈 수 있다고 봤던 기억을 더듬어..광화문이었나..서대문이었다..망설이다 서대문역에서 내려 7번 출구라고 기억나서 그곳으로 나와 한참을 걸어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나가던 사람에게 물어보니..광화문쪽 아니냐며..자기도 지금 그쪽으로 간다고..같이 택시를 타고..우산도 씌워주고..
택시값도 반은 부담을 하겠다고 하니 어차피 자기도 이쪽으로 오는 길어었다며 사양한다.
하하..좋은 사람과 스쳤다..
구세군회관 쪽으로 들어가는 성곡미술관도 멀기는 마찬가지였다.
'추상화의 이해'라는 붉은색 플랭카드가 보여..아이와 한번 읽어보고..추상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얘기를 해보았다.
"오늘은 추상화의 이해에 대한 전시를 보러 가는거야..추상화라는 것은..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닌 잘 알 수 없어 보이는 그림이야..이렇게 보이기도 하고..저렇게 보이기도 하고..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게 추상화야"
추상화라고 하면 모호하고 난해한 장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문학으로 표현하자면 시어가 품고 있는 은유의 매력처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을 끌어낼 수도 있고 그림속에서 자신만의 인생의 의미를 부여해 해석할 수도 있는 여유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아이가 무슨 그림을 그릴 때마다 추상적이라 무엇을 그렸는지 물어봐야 하지만 그 한장의 그림을 갖고 "현지는 무슨 그림을 그린거야?" 물어본 후 "엄마는 현지가 이런 그림을 그린 것 같아" 하고 얘기할 수 있어서 난 아이의 추상화가 좋다.
아이가 설명해주는 그림은 뚜렷한 형태가 없이 추상적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이만의 대상표현인 것이기에..시간이 지난 후에 물어봐도 비슷한 얘기를 하는걸 보면 결코 아무렇게나 즉흥적으로 그린 것은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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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화의 이해"전은 본관과 별관 두군데에서 모두 이루어지고 있었다.
비가 주절주절 와서인지 가족단위의 관람객 몇팀을 제외하곤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본관의 1층은 추상화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과 미술사의 흐름을 주로 다루었다.
"여기에선 추상화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어..추상화가 뭘까.."
나는 수첩에 두 사람이 마주보고 입맞춤을 하는 그림을 그린 후 그 밑에 부드러운 선이 서로 맞닿은 그림을 같이 그려 비교를 해주었다.
"이건 뭐처럼 보여?"
"뽀뽀하는거"
"그럼 이 밑에 것은..?"
"음..구불구불해서..날아가는 것같아"
"엄마는 뽀뽀하는 모습을 그린건데..이미지로만 그린거야..곡선과 곡선이 부드럽게 부는 바람처럼 만나는 것처럼 표현한거지..추상적으로 그런거야..이런게 추상화야..엄마가 뭐 그리나 봐? 이건 뭐지?"
"사과"
"근데..엄마가 빨간색..초록색..노란색..이런식으로 형태없이 색으로만 칠해놓으면..엄마는 사과를 추상적으로 그런거야..사과를 그대로 그려놓은게 구상화라면..색만으로 이미지를 보여주는게 추상화야..현지도 사과를 생각하면서 현지만의 추상화를 그려볼래?"
펜을 잡고 수첩에 조금 그적거리다..난 못하겠어..하고 포기했지만 사과를 그리는데..지글지글하며 사과처럼 안보이게 뭔가를 그리려고 하면서도..사과의 형태가 되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각 미술학파의 대표적인 그림들을 작게 예화처럼 붙여놓았는데 미술학적 흐름보다는 재미있거나..독특한 그림에 우선 관심을 두며 보는 것 같다.
대표적인 작품과 화가, 그리고 화파의 특성을 다루었고 추상화가 어떻게 단순하게 변화되는지의 과정을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이라는 작품에서 나체의 여자를 모델로 뜨거운 추상과 차가운 추상의 전개가정을 간단하게 보여주고 있었기에 추상화가 어떻게 그려지는지 시각적으로 풀어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제사로 보인다.
열심히 차가운 추상과..뜨거운 추상에 대해 논했다.
처음과는 전혀 다른 형태지만..구상적인 그림에서 봤을 때의 색채가 그대로 남아있음으로 인해 아이는 조금은 처음그림이..이런 추상화로 변했다는 것을 눈치챈 것 같다.
정확하게 어떤 작가..어떤 제목의 그림보다는 아이와 그림을 보면서 어떤 얘기를 하는지..어떤 방법으로 아이가 그림을 볼 수 있게 했는지..그런 것에 중접을 두었다.
"이건 뭘 그린걸까.."
"고양이가 딱딱 발자국을 낸 것 같아..갈색같은 건 모래고.."
"엄마..이건 텔레비젼 같아..근데..이건 뜨거운 추상이야? 차가운 추상이야?"
어..갑자기 말문이 막혔다.."글쎄..엄마는 차가운 추상같긴 한데..잘 모르겠다..큐레이터 언니에게 엄마가 물어보자"
큐레이터 언니에게 물어보니 아이가 그런 질문을 다 한다며 웃는다.
추상화가 꼭 뜨거운 추상..차가운 추상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라 미니멀 경향으로 강점을 최소화한 작품이라고 보면 된다며 아이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며 그림에 대해 얘기를 나눠준다.
"저게 뭐처럼 보여?"
"TV를 보다가 딱 끈 것 같아요.."
"그래..근데 저기 끝부분에 하얗게 비우진 공간이 있네? 그건..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여백을 남긴거야.."
우리나라의 전통기법인 '배채기법'을 이용한 작품도 아이와 나누기 좋은 대화거리였다.
"이건..배채기법이라고..뒤에서 그림을 그려서 앞에서 보이게 하는거야..현지는 보통 그림 그릴때 스케치북 위에서 그림을 그리지? 이건 스케치북 뒤에다 물감을 짜서 꾹꾹 눌러서 새어나오게 한다음 뒤집어 놓은거야..현지 등이 이 캔버스라면..등에서 물감을 쭉쭉 짜서 꾹꾹 누르잖아..근데 그 그림이 앞에서 보면 물감이 배로 삐질삐질 삐져나와 있어서 그게 하나의 작품이 되는거야..이건..현지 배에다 그림을 그린건가?"
"아니..등에다 그렸어"
"그래..그게 한자로 등 배자를 써서 배채기법이라고 하는거야..뒤에서 그렸지만 앞에서 보는것"
확실히 읽으면서 보는 것보다는 보면서 듣는 것이 기억에 훨씬 쉽게 저장되는 것 같다.
큐레이터의 도움으로 감상하게 된 작품들은 지나칠 수 없는 매력을 던지곤 한다.
종이 자체가 입체가 되고 마티에르가 되는종이추상화..한지를 찢어 붙여 겹겹이 쌓여 깊이가 느껴지는 작품..기하학적인 논리가 반복되어 기계적이고 차가운 느낌을 전해주는 작품..틀에 잡힌 캔버스를 타파하려는 듯 외부로 나와 입체가 되어 있는 작품..각양각색의 주제와 기법으로 작가의 내면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대할 때마다 조금이라도 이해를 하려는 듯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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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에서는 김환기 작품을 비롯..이응로..이항성..등 정말 이름있는 작가들이 많았다.
본관의 작품들이 이름있는 작가들의 것이었다면 별관의 작품들은 실험적이고 독특하며 젊은 작가들의 작품 위주라 한다.
보다보면 아이들을 위한 전시회에 참여했던 작가도 몇몇 눈에 띄곤 한다.
별관에서도 나름대로 또 기준이 있나보다.
1층은 동양화적인 추상화가 주를 이루고..2층은 강렬한 색채와 몽롱한 추상화..3층은 현대적 추상화를 다루었다고 한다.
그림을 보는 방법도 다양하다.
눈을 감았다가 실눈을 뜨면서 봐야 하는 그림..코팅이 되어 있어서 내가 그 앞에 서면 내가 작품과 하나가 되는 체험이 가능한 작품..낙서가 가득한 작품..한가지 색이지만..시간과 온도의 영향을 받아 결이 생겨 오랜시간 윤회를 거듭하는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작품..숨어있는 미키마우스를 찾아봐야 하는 작품 등..현지에게 추상화는 지루함보다는 모든게 호기심이었다.
한젬마의 '그림 읽어주는 여자'에서 봤던 작가들의 그림도 몇개 보여 반가운 마음도 있고 아이가 좋아할만한 화려하기도 하고 실험적이기도 한 작품 또한 지루하지 않은 미술관람이 되게 해주었다.
큐레이터를 따라다니며 정해진 시간안에 봐야할때는 자신이 마음에 드는 그림앞에서만 있으려고 손을 자꾸 잡아끌기는 했지만 설명 듣고나서..다시한번 좋아하는 작품 앞에가서 살펴보자..하고 달래보기도 한다.
추상화에는 정이 머문다.
굳이 형태를 정해놓고 표현하지 않아도 그안에 숨겨진 형태를 찾아 깍아내는 조각처럼 추상화는 정해놓은 형태는 없지만..입히고 칠하면서..숨겨진 마음을 찾아 내는 작업인 것 같다.
오늘은..김택상의 '결'이라는 작품이 날 오래도록 끌어당겼다.
아이를 일부러 데리고 가 "엄마가 제일 맘에 들은 작품이야.."하며 자랑도 해보았다.
눈을 감으면..하얀 벽면에 피빛처럼 물이 오른 붉은 색 결이 움직인다.
아이가..아무것도 없이 붉은 색만 화면 전체를 매운..이 결의 의미를 스스로 느낄만큼 어른이 되어..공유의 장을 같이 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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