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신'은 그리 모질고 막되어먹은 남정네는 아닙니다.
그는 전쟁 때 병역기피로 집에서 잠을 잘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당신'을 잡으러 올까 두려워 한밤중에 집을 뛰쳐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전쟁직후 세상이 흉흉할 때 젊은 아낙들이 인민군에 잡혀갈 수도 있다하여 혼인을 서두르게 되던 시절,
모두들 그러하듯이 부부의 연을 맺어 살게되었지만,
답답하고 새로운 희망이란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시골 작은 마을을 떠나지 못할 것 같은 갑갑함 또한
'당신'을 바깥으로 떠돌게 하였습니다.
2.
ㅡ 대체 어디에 있소!
아내를 잃은 당신은, 혼자남은 당신은, 빈집의 마루에 다리를 뻗은 채 소리를 팩 내질렀다.
아내가 사라진 뒤부터 늘 목에까지 차오르던 울음 대신이었다.
소리를 지를 수도 울 수도 없던 분노인지 뭔지 모를 치받침으로 인해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ㅡ 불쌍한 사람.당신은 이제야 당신이 얼마나 비겁했는지를 깨닫는다.
당신의 아내에게 그 상처를 죄다 떠넘기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은 아내였건만 함구해버림으로써 오히려 궁지에 몰아넣었다는 것도.
3. 엄마와의 만남이 가장 인상깊습니다.
내가 태어난 어두운 집 마루에 엄마가 앉아 있네. 엄마가 얼굴을 들고 나를 보네.
-중략-
내 발등은 푹 파인 상처 속으로 뼈가 드러나 보이네.
엄마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지네.
저 얼굴은 내가 죽은 아이를 낳았을 때 장롱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네. 내 새끼. 엄마가 양팔을 벌리네.
엄마가 방금 죽은 아이를 품에 안듯이 나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네.
내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나의 두발을 엄마의 무릎으로 끌어올리네.
엄마는 웃지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평생 힘겹게 살아온 ,이제는 너무 늙어버린 엄마도 그 엄마의 아이같은 딸이었습니다.
그 엄마의 귀하고 귀여운 안스러운 하나의 여자아이였습니다.
다시 그 아이로 돌아가 엄마품에 쉬는 엄마의 모습에 가슴 뭉클합니다.
파란 슬리퍼에 살이 패어 뼈가 보이고 곰팡내가 나는 엄마의 발이 비로소 그녀 엄마품에서 그 상처가 아뭅니다. 새가 되어 이승의 연을 떠돌던 그 엄마가 포근한 엄마품에 안깁니다.
그 순간, 조마조마 하고 위태로와 애쓰던 제 마음도 이제 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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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힘들었습니다.
중간 중간 많이 쉬면서 읽었구요.
여운을 간직하고싶어 한 참 멍하니 시간도 흘려보냈습니다.
엄마는 희생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밥 먹듯이 집 나가는 남편을 정성껏 아끼고 염려하고, 자식들 자랑스레 훌륭하게 키워내고,
시어미보다 독한 시누에게도 복종하며 살았습니다.
공부못해 한이 된 시동생이 결국 자결한 것도 가슴찢어질 노릇인데 생판 억울한 누명까지도 덮어 썼습니다.
다달이 붙여오는 용돈을 고아원에 기부하며 밥 먹으러 오는 동네 꼬마들에게도 넉넉한 인심을 다 나누던....
그러나 그녀는 평생 자식의 글을 읽지 못하는 스스로 부끄러운 까막눈이었으며,
장남에게 딸을 맡겨 늘 죄스러운 죄인이었고,
죽은 아이를 가슴에 묻고 사는 어머니임과 동시에 외간남자를 사랑했던 한 여인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한 여자를 두고 딸, 아들, 당신, 그리고 자신이 인생 전반에 대해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참 고단했을 인생에 마음이 아픕니다.
읽는 내내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게 되어 머리가 아픕니다.
대단히 위대해서가 아닌, 한 여자의 결혼, 생활, 약점, 고뇌,외로움, 미안함, 고달픔, 사랑
이런 일련의 사건과 감정들이 작가의 디테일한 표현과 필연적인 아픔, 그리고 인간적인 미안함이 뒤엉켜
어느 누구를 뚜렷이 생각할 필요를 못 느낀채 가슴 한 켠이 아려옵니다.
시절이 그리했을 겁니다.
정서가 그리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 누구의 마음 속 깊은 곳에도 정과 사랑은 있었습니다.
그걸 왜 그리 표현함에 인색했을까.
왜 그리 부족함을 못 채웠을까.
지난 번 읽었던 '은교'에 늙어가는 것에 대한 절망감에 대해 표현한 구절이 나옵니다.
늙어가는 것이 죄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불쾌하거나 더럽거나 혐오스러운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누구나 늙는다는 것
읽으면서 묘한 공감을 했었는데.. (그 책의 내용과 엄마를 부탁해는 아주 다른 성질이지만요.)
아무튼, 엄마가 늙어가며 겪는 고통, 늙음이 주는 아픔, 평생 고생과 한이 부른 신체의 반응.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드러내어 아프지도 못하는 엄마의 존재, 알면서도 외면하는 듯한 당신의 무심함.
너무 여러생각이 섞여 글만 길게 썼지, 뒤죽박죽입니다.
내가 더 늙으면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