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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15~16일 토~일요일]
사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부터 맺게된 인연을 따라 네번째 순례를 가게 되었다.
서울, 경기 지역의 그 많은 사찰중에 다녀본 곳이 두군데뿐인데 순례가 아니면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이렇게 단체로 일정이라도 잡혀야 '관심'을 조금이나마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지하철 문화정보 캘린더를 보면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여행지가 바로 '내소사 · 선운사'였다.
'저기나 한번 가볼까' 하는 마음이 몇번이나 들곤 했는데..눈 쌓인 겨울도 아니고, 꽃피는 봄도 아닌 어중간한 계절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어쨋든 탐나는 여행지가 아닐 수 없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양재역 집결지에서 만나 출발.
서해대교를 건너면서 "야 바다다~"하는 소리에 고개을 돌리니 바다를 가로지르며 지나는 곳이 바다길인지..그냥 강을 흐르는 다리인지..이렇게도 바다를 보는구나..
하긴, 강화도에 갈때도 건너는 다리 역시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쩐지..육지와 연결된 바다는 바다로써의 고집스런 이미지를 잃어버린 모습이어서 그런지 위용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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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는 전라북도 부안의 변산반도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고찰이다.
민박집에서 여정을 풀고 회원간의 인사를 마친 뒤 현지는 순례때마다 만나오던 반가운 언니, 오빠들을 따라 민박집을 몇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현지에게 순례는 반가운 사람을 만날 수 있기에 기쁜 행사일 것이다.
제일 반가운 친구는 같은 나이 또래의 부산사나이 '준형'이일 터..준형이에게 달리기시합을 하자는 둥..과자를 갖다주는 둥..지극한 관심을 보여준다.
새벽 4시에 예불을 드려야 하는데..새벽 2시가 넘어서 잠이 들었다.

가까스로 눈을 떠 준비하고 일주문을 들어서 올라가는 내소사 전나무숲길..
어두운 새벽이라 길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진한 듯 유유히 흐르는 솔향기에, 취한 잠이 다 깬다.
천왕문에 이르러 내소사 안으로 들어와 잠시 하늘을 보니 하양게 떠오른 달 곁으로 비천상처럼 날아오르는 운무가 장관이다.
"언니야, 사진 찍어. 작품감이다~" 하는데..사진을 찍으려 허둥대는 것보다 그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켜보기만 해도 가슴이 남는 한 장면이 될 듯 싶었다.
대웅보전에 들어서니 천장의 양 옆에 장식된 용 두마리가 법당 전체를 휘휘 감고 있는 듯 꿈틀거림과 웅장함이 그대로 느껴져 신비한 공간에 와 있는 듯했다. 법고..운판..목어..범종 소리를 조용히 들으며 시작된 예불은 두시간이 지난 후에야 끝났다.
불상 뒤에 나있는 통로의 벽화인 "관세음보살"의 눈을 보며 소원을 빌면, 눈동자가 따라오면..소원이 이루어지고 따라오지 않으면 그렇지 않다는 설명을 듣고는 지나온 후에 "눈이 정말 따라왔어?" 묻지만..믿는자에게만 보이고, 의심하는 자에겐 보이지 않을거야..하고 말하니 내가 부처라도 된 듯 바라들 본다.
이러다 말로만 부처가 되는 건 아닌지..
다시 민박집으로 내려와 현지를 깨워 아침공양을 하기위해 다시 내소사에 올랐다.
이제 동이 터 아침이 밝은 뒤의 전나무길은 하늘로 곧게 뻗은 전나무와 곧세기를 재기라도 하듯, 길게 뻗어 있었다.
"나무들이 날씬하고 키가 다 크네? 이게 전나무야..나뭇잎이 바늘처럼 뾰족뾰족해서 침엽수라고 해..현지는 향기가 나는 것 같니? 솔향 맡아봐..이게 나무냄새야.."
선잠을 깨운 탓인지 잔뜩 찡그린 얼굴로 겨우 절에 오르는 현지도 코를 킁킁거려보며 "맞아..나도 향기가 나" 한다.
"이곳을 걸어가니까 사계절 말고..새벽이라는 계절이 또 있는 것 같아"
아마도..내소사의 새벽은 솔향이 짙에 내리는 맑디맑은 청솔의 제 5계절이 아닐까..

공양을 마친 후 스님을 모시고 설법을 들었다.
장난꾸러기 같으신 인상때문에 말씀하시는 동안에도 자꾸 웃음이 나온다.
현지는 쏟아지는 잠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누워버렸다.
내소사의 법당에 대웅보전에 전해지는 두가지 전설을 들려주셨다.
첫번째는 대웅보전의 건축자체가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이 특징. 나무를 미리 다 깎아 놓고 꿰어 맞출 때 사용되는 기둥과 기둥사이를 잇는 다포집을 만드는 포호를 깎는데..사미승가 장난을 쳐서 이음목의 포 하나를 숨겨서 완성하지 못하다..숨겨놓은 포를 나중에 내놓자 부정이 탄 포라며 결국에 미완성으로 남겨놓았다며 이음목의 포 하나가 빠진곳이 어디인지..알려주셨다.
두번째 전설은 우측에 바탕만 칠해지고 단청이 새겨지지 않은 곳이 있는데 이곳은 화공이 단청을 다 칠할때까지 들여다보지 말라는 말을 어겨서 하얀 새가 단청을 칠하는 것을 목격하고야 마는데 그 새가 마지막 단청을 완성하지 못하고 정체가 드러나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며 바로 그 새가 상징하는 관음조가 새긴 단청을 강조하며 비워진 부분 역시 지목해 주었다.
전설만 듣고 설명없이 둘러보기만 했다면 발견하기 힘들었을 부분이지만 이렇게 듣고나니 다음에 여유를 갖고 다니러 올때 기억을 더듬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전설소개와 절의 유래에 대한 설명이 끝난 후 설법이 시작되었는데 종교의 목적이 무엇이냐..진리와 내가 하나됨을 터득하는 것이다..를 시작으로 물이 인연에 따라 구름이 되었다..눈이 되었다..이렇게 그냥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은 견(見)이고, 그 속을 보는 것이 관(觀)이다.
밤과 낮이 합해서 하루가 되고 선한마음과 악한마음이 합해서 마음을 이루니 이것이 음양철학이다.
내 마음이 선으로만 가득찬다면..선도 없어진다..등등 마음으로 느끼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머리가 아파오는 말씀을 들으며 그런 말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갖는 것부터가 우선되어야 함을 느꼈다.
사찰가이드를 하시는 분의 설명은 내소사를 한껏 즐길수 있을 만큼 흥미로운 역사이야기였다.
내소사는 장식적인 요소가 많은데, 사찰의 90%가 임진왜란이나 정유재란 때 불타 1633년 청민선사의 중창으로 다시 세워지면서 다포양식으로 기둥과 기둥사이의 포를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건축이 되었고, 수백송이의 붉은 연꽃이 그려지기도 했으며, 눈에 띄게 많은 악기그림과 입구의 문 위의 창방 또한 일반 사찰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장식적인 요소로써 재란으로 나무가 부족해 장식적인 것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닷집을 살리면 주위 장식적인 요소가 죽기때문에 우물천정으로 닷집을 대신해 절제와 장식미의 조화를 이루었고, 하중을 견디기 위해 포 양식을 내부와 좌우로 분산하였다고 한다.
대웅보전 바깥으로 나와..초석은 덤벙주초기법..그냥 돌을 가져다 그 안에 기둥을 꼭 맞게 맞추는 작업으로 목수의 최고기술을 보여주는 작업이라며 간단하게 보여지는 모든 것이 하나하나 대단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대웅보전의 글씨는 30년의 유배생활을 한 이광사의 필체인데..추사 김정희가 유배를 가는 도중 이곳을 지나다 현판을 바꾸라 하며 자신의 글씨를 올렸지만..자신도 9년의 유배생활을 해보고 올라오는 길..이곳에 다시 들러 이광사의 현판을 다시 올리라 했다는 이야기에 겪은 자만이 겪은 자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진리를 배울 수도 있었다.

대웅보전의 문에 새겨진 꽃창살은 단청의 색이 닳아 없어져 이미 낡은 무채색이 되었지만 뽀얀 속살을 보는 듯 화려함을 오히려 더 돋보이게 하였다.
이것 역시 재난으로 공양할 것이 부족해 평생 시들지 않고 지지 않는 꽃으로 대신하였으니..오히려 시들지 않고 몇백년이 지나도록 화려하고 깊이 있는 모습을 남기게 되었음에 여간 다행한 아이디어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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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에서 이렇게 설명을 들은 후..선운사로 자리를 옮겼다.
선운사의 동백이 그렇게도 유명하다던데..안타깝게도 선운사의 동백은 봄에 꽃을 피우는 춘백이라고 한다.
어쨋든 윤기있게 빛나는 동백잎이 숲을 이루는 모습으로 서운함을 채워야 했다.
선운사로 들어가는 길목..서정주 시인의 선운사에 관한 시비가 서있다.
선운사 洞口 -서정주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추사 김정희가 쓴 백파대사사적비와 채제공이 썼다는 설파대사사적비가 있는 부도전 앞에서 가이드의 설명이 계속되었지만 논쟁이 벌어지던 그때의 사상들은 그저 자존심 겨루기의 심리전 정도로만 느껴질 뿐이어서 그곳의 긴장감을 깨뜨리며 놀기에 바쁜 아이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야했다.
선운사의 대웅보전과 맞은편 건축의 기와에서 유약을 바른 청기와가 용마루 중간에 보일 듯 연하게 드러나 있었는데 알려주지 않았으면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뻔 했을 이 기와는 사찰위세가 번창했었다는 증거라고 한다.
내소사의 소박한 듯, 가슴을 채우는 풍만함에 정신이 나간 후 들린 선운사는 매력이 잘 느껴지질 않았다.
불자의 눈이 아닌 관람객의 눈이었으니 그랬을런지도 모른다.
아이는 부산꼬마 준형이랑 한참을 뛰어놀고..나는 나대로 법당마다 다니며..삼배를 드리고 난 후 선운사의 유래엔 이미 지친 탓에 관심을 멈추고 자리를 잡아 여유를 부렸다.
?_blank"우리 꽃필때 와서 열심히 다시 보자..운치느끼면서.."
하루에 두군데의 사찰을 도는 것이 무리였을까..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만큼 전설과 문화재와 경치의 빼어나다는 선운사에 와서도 꼭 가봐야 한다는 도솔암도 가보지 못하고 빨리 회향하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현지가 준형이를 얼마나 챙기던지 손을 잡자고, 같이 다니자고, 사진을 찍자고 쫓아다니더니..저 멀리 혼자 걸어가는 뒷모습에 대고 "준형아 너 너무 늠름한 것 같아" 하는 소리에 주위의 어른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두달 뒤에 다시 있을 순례때 만나기를 산회가로 다짐하며 회향을 서둘렀다.
언제 이 먼 곳까지 다시 올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기에 돌아갈 시간이 되니 제대로 보지 못한 선운사에 미련이 남는다.
두고 오는 것이 있으니..다시 들를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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