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도화지 같은 화면에 뭐든 쓰라고 펴 놓은 공간에 소리라도 지를 양으로 들어왔는데 글쎄요, 네가 뭘 잘했다고 하소연이냐하는 켕김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우리 둘 째를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이 엄마, 진단받고 치료되고 싶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욕쟁이입니다. 울컥해지내요. 어떤 엄마가 욕쟁이가 되고 싶어 되는 건 아니잖아요. 둘 째는 첫째보다 자기 주장이 강합니다. 첫 째가 엄마 말 대로 하면 떡이 나와도 나온다고 믿는 반면, 둘 째는 떡 안먹을테니 간섭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 둘 째 지금 초등 3학년이고, 1학년 말까지 집에서 영어와 수학을 매일 30분 씩 해 왔습니다. 어느 날 부터 공부를 밀어 내기 시작하더니, 한 달에 한 두 번 디비디를 보기 위한 형식적인 공부가 다 입니다. 시간이 나면 레고 쏟아 놓고 집중해서 만듭니다. 다 만들면 가지고 와 제게 보여 주고 자랑합니다. 칭찬을 원하는 거죠. 가끔 칭찬 해 주지만 마음에서는 원망의 외침이 터져 나옵니다. 그리고 가끔은 만든 것 일부로 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도 시간이 나면, 만화책을 봅니다. 글씨는 거의 읽지 않습니다. 그림만 설렁설렁, 그러다가 필이 꽃히면 종이에 그림을 그립니다. 군인들이 전쟁하는 만화만 그립니다. 연필 쥐는 법 남 들하고 틀립니다. 글씨와 숫자 모두 알아보기 힘듭니다.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천진난만한 표정이 짓지만, 둘 째는 형과의 비교 의식으로 움츠러들어 있습니다. 본능적으로 부모가 공부 잘 하는 아들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부족한 자신을 숨기고만 싶은가 봅니다. 학교 수학 숙제 끝내놓고 틀린것을 지적해 주니, 엄마, 나 이제 공부 못하는 것 알았지. 그러니까 나 잡고 공부시키려로 하지마 하는 투의 말을 합니다. 문득 제 고 1 담임 선생님과의 대화가 떠 올랐습니다. 그 때 선생님은 수학을 담당하셨고 반 아이 하나가 첫 중간 고사에서 성적이 잘 나오니 칭찬을 해 주셨죠. 그 때 제가 뿌듯함을 느꼈을까요. 사실 제가 느낀 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아, 이 선생님이 나를 잘 모르는 구나. 나는 수학 잘 못하는데, 마침 내가 좋아하는 명제 파트라 어렵지 않았을 뿐 연산이나 수열, 그래프로 가면 실력이 드러날 텐데, 아 차라리 이 번 성적이 낮았더라면 선생님의 이런 부담스런 기대는 받지 않았을 텐데. 이해 되십니까? 이해 하실 분도 계시고 이해가 확 안 와 닿는 분도 계실 겁니다. 성격 탓이니까요. 둘 째가 생각하는 것도 이런 걸까요. 스스로 능력을 평가해 볼 때, 부모의 기대가 부담스럽다.
저는 둘 째에게 언제부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공부 못하는건 용서해도, 공부 안하는 건 용서 못하다. 학생의 일은 공부다. 최선을 다하면 더 이상 바라는 게 없다. 그런 데도 절 닮은 둘 째는 겁을 내는 것 같습니다. 욕심 많고, 학업면에서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머리 좋은 형에게 매일 채입니다. 그런 형의 머리를 쥐어 박으며 동생의 감정을 생각하고 막말하지 말라고 하지만, 아직은 5학년인 형, 동생을 보며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만족감에만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매일 동생에게 막말하는 엄마를 둔 아이가 그 막말에 얼마나 죄의식을 가지 겠습니까? 큰 아이에게 말 합니다. 네가 엄마냐고, 엄마가 충분히 나무랐는데 너 까지 왜 설치냐고, 네 동생은 한 번 이 엄마에게 혼난 걸로 족하다. 네가 동생의 잘못을 나무랄 일 없다.
어제는 둘 째가 이해하기 힘든 발언을 했습니다. 숙제를 안하겠다. 이런 모진 말 듣는 어머니 많지 않으 실 걸요. 수학 익힘책 3장 입니다. 못 푸는게 아닙니다. 집중하면 풀 수 있습니다. 엄마가 자식을 압니다. 우리 둘 째 못풀어도 사랑하지만, 아무리 공부를 안 해도 학년 초 문제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부족하진 않습니다. 며칠 전 눈 비벼가며 익힘책에 해 놓은 숙제를 보고 다음 날 이거, 이 거 틀렸으니까 고쳐 보자고 했는데, 그게 싫었던 걸까요. 아예 숙제를 안 하겠답니다.
1학년 때 형이 잘 따라 오니까 둘 째를 너무 윽박지른 것 같습니다. 첫 째를 키우면서 자신감이 충천했습니다. 제가 잘 이끌어서 애가 이렇게 잘 해주는 구나하는 착각을 했던 거죠. 다그치면 둘 째도 첫 째랑 똑 같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깨닳았지요. 첫 째는 내 도움이 아니어도 스스로 나아갈 수 있는 아이다. 네가 애꿎은 둘 째 아들만 잡았다.
제가 많이 단순합니다. 한 꺼번에 두 가지 일을 처리 잘 못합니다. 그런 단순함으로 아이 둘을 키웠고 지금도 그들만 원한다면 제 모든 시간을 투자해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큰 아이가 원하는 분량과 둘 째가 원하는 분량이 다르네요. 제가 아이를 잡는 엄마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첫 째에게도 영, 수 학원 안다니고 하루 영어, 수학 꼬박 꼬박 40분씩 만 투자 하자고 합니다. 학교 특별 활동으로 바쁜 날은 제가 안쓰러워 모르는 척 넘아가 주는 날도 많습니다. 욕심이야 하루종일 붓잡아 놓고 싶지만... 아직도 아쉬운 마음입니다. 가랑 비에 옷젖는다고, 형은 저렇게 학교 영어 말하기 대표, 학교 수학 경시 대표로 내일 전교 부회장 선거날을 앞두고 폼나게 재고 있는데...
저는 남들이 보면 말도 어둔하고 학업 성취도도 썩 뛰어 나지 않은 둘 째 아들을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그 녀석 있는 그대로 에서 최선만 다해 줬으면 합니다.
어제 반복 된 칭찬은 좋은 행동을 강화시키고, 반복 된 책망은 나쁜 행동을 강화 시킨다는 말을 듣고, 둘 째 아들에게 얼마나 많은 책망을 했는지 떠 올리며, 그렇지 우리 아들에게 문제가 있는게 아냐, 문제는 바로 너라고 하는 확신이 또 한 번 들었습니다. 부족한 저, 이제 좋은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자식의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은 욕심을 어떻게 하면 버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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