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미국대학에서 박사후과정을 하며 초등학교에서 ESL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지도교수가 저를 보낸 첫 학교에는 아시아계 ESL학생들이 열 댓 있었습니다. 한국부모들은 영어를 제법 하여 제 힘을 빌릴 일이 적었는데 일본 학부모들은 사정이 달랐습니다. 하나 같이 영어가 그야말로 꽝이더군요. 아이들도 일본서 영어공부를 안 했는지 교사들을 무척 힘들게 했습니다. 부전공이 일본어였던 저는 -그게 25 년 전 일입니다- 한 두 마디 더듬는 일본어로 문제해결사가 되었습니다. 일본학부모가 처음 급식비를 내러 와도, 일본학생이 미국 애 몸을 만져도(함부로 신체접촉 하면 안 되거든요), 심지어 응가가 마려 울어도 불려 다녔습니다. 훌륭한 인력을 발견했다고 굳게 믿은 학교 선생 하나가 교육청에 긴급 무전을 쳤습니다. “여기 3개국어를 구사하는 ESL박사가 있다...오바.”
여기까지는 성공담. 문제는 일본 학부모들 쪽에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여자가 미국교사들 마냥 신분증 목에 걸고 그들 귀에는 유창한 영어를 하며, 게다가 일본어를 쓰면서 자기애들 영어를 가르치니 얼마나 멋졌는지! 그 다음부터 일이 꼬입니다. 제가 하는 일본어를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겁니다. 저하고 단 둘이만 얘기하면 제가 말을 반복하고 손짓 발짓을 하니까 그런대로 통하는데 주변에 미국선생만 있으면 더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겁니다. 제가 일본어가 유창한 척하느라 몸짓 없이 입만 놀리며 오버했기 때문이죠. 애를 기다리는 한 일본모친이 자기 애가 언제 교실서 나오냐고 묻길래 미국 선생에게 통역했더니 곧 온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홍박: “니 애 갔다.”
일본 모친: “에~에?”
또 한 번은 교장이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말썽부리는 일본학생 부모를 교장실로 불러달라는 겁니다. 그 꼬마는 수업 중에 자꾸 교실을 돌아다녔습니다. 미국 교실 분위기는 자유로워 보입니다. 초등학교, 특히 저학년 일수록 그룹식 수업이 많습니다. 교사와 함께하는 그룹이 아니면 교실마다 센터(centers)가 많아서 선생이 지정해주는 독서센터, 과학센터, 컴퓨터센터 등에서 주어진 과제를 하게 되어있습니다. 학생들은 하루에 두 서너 센터를 돌기 때문에 사정을 알지 못하면 미국 교실 안에서는 마구 돌아다녀도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국 학생들도 쉬는 시간으로 착각해 센터를 벗어나 지적당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아무튼 그 일본 소년이 다른 학생에게 방해가 되니 담임이 교장에게 하소연을 한 것입니다.
저는 전화를 하기위해 ‘교장이 당신을 만나고 싶어합니다.’를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만나다’ 동사가 ‘아우,’ ‘~하고 싶다’가 ‘시타이’... 뭐, 이런 식으로 말을 붙여 학부모에게 중대사안을 전했습니다. 그 일본모친, 제 전화에 뒤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교장이 불러 놀란 게 아니라 웃다가.
일본모친: 해로우(일본식 Hello)?
홍박: “교장이 당신을 사랑하고 싶다우”
‘아우’는 ‘만나다’인데 ‘사랑하다’가 아마 ‘아이...’ 어쩌구가 있을 겁니다. 그걸 섞다보니 그리 되었답니다. ‘용무로 만나자’는 데는 어떤 관용적 표현이 따로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저만 보면 달려오던 일본 학부모들이 언젠가부터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차라리 자기들이 영어를 더듬거리는 게 나았던 거죠. 일본 꼬마들은 대놓고 나더러 “무슨 말을 떠버리는 거냐?”고 항변했고 어떤 녀석은 내 입술을 양손으로 꼬-옥 잡으며 입을 다물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미국 선생들은 나와 일본 애들이 무엔가 통하고 있다고 여겼죠. 나는 아시아 문화의 대변자요 위대한 아시아 교육관 전도사로 교육청까지 불려가 강연하는 닥터 홍이 되었습니다.
미국 학교에 적응을 못해 걸핏하면 책상 밑으로 들어가 있던 일본 아이를 바깥세상으로 불러냈던 유창한 나의 일본어, 유일하게 통했던 일본어는 이 것이었으니,
“스낵꾸 타이므데쓰” Snack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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