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가을전시가 12-26일 까지 2주간 열립니다.
12일 개관 했는데 첫날에만 2만여명이 다녀 갔다고 하니, 간송미술관 정기개관을 사람들이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는지 알 수 있네요.
특히나 요즘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인기리에 방영중이라 그 실체를 확인해 보고 싶은 사람들이 방문객 숫자에
일조를 한 것 같습니다.(전 드라마를 못 봤어요ㅠㅠ)
2년전 간송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가족이 다녀 왔는데, 교과서나 책에서 보던 김홍도나 신윤복, 정선등의 작품에
아이가 탄성을 지르고 감격해 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네요.
아이도 좋았지만 저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서 한가할 때 다시 가 보려 했는데 살다보면 다시 가 보기가 쉽던가요^^
이번 가을개관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전 낼 가보려고 합니다.
주말에 아이랑 같이 가서 다시 보여주고 싶은데 주말엔 하도 밀리는 탓에 평일에는 그래도 주말보다는 좀 한가하겠지 싶어 일단 저부터 다녀오려구요.
벌써 부터 맘이 참 설렙니다. 소풍가는 아이처럼...
신문을 통해 이미 아시고 계신 분들도 많겠지만 모르셨다면 큰 맘 먹고 한 번 가 보셔요.
그곳 분위기가 요즘 리움처럼 현대적이고 최첨단은 전혀 아니지만,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느낄 수 있게..간송의 역사와 보화각의 역사를 느낄 수 있게 아주 애잔하면서 고즈넉 하답니다.
걱정스러울만치 허술하기까지 해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지요.
외국의 몇몇 박물관들을 가 보았는데, 가슴 벅찬 감동을 어찌 다 표현 할 수 있을까요~
수천년, 수백년의 흔적을 내 눈으로 생생히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벅차서 바티칸 시스티나성당 천장에
그려진 천지창조 감상에 너무 깊게 빠져 일행을 놓치고 미아가 될 뻔 했다는...ㅠㅠ
간송미술관(보화각)도 그런 곳이예요.
외형적인 비교는 절대 되지 않는 곳이지만, 개인이 사제를 털어 이렇게까지 후손을 위해 수집에 공을 들인
사연을 알고 보면 숙연해지는..그리고 건물을 보고는 더 숙연해지는. 마음이 아픈 곳이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거기 소장된 작품들 앞에선 정말 발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아요.
전시가 짧아 방문객이 넘쳐 여유있게 감상하기는 힘들답니다.
그곳이 상설전시는 없고, 봄/가을..이렇게 두번만 전시를 해요.
성북동, 성북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지요.
아래에 기사 옮겨다 놓을께요.
이번 전시와 보화각에 대한 설명이 있어요.

"보물은 흥정하지 않고, 대가의 명작은 100점 이상을 수집한다"
돈을 쓰려면 그렇게 써야 한다.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1962)은 서슬 퍼렇던 일제 강점기에 10만석 재산과 문전옥답을 팔아 우리 미술품을 모은 '문화 열사'다. 덕분에 벽안 외국인에게 팔려가거나 일본인의 손에 떨어질 뻔했던 조선시대 미술품은 오늘날 간송 미술관에 고스란히 남았다.
간송미술관은 최근 '바람의 화원'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단원 김홍도(1745~1806?)와 혜원 신윤복(1758~?)의 작품 등 조선시대 미술의 보고다. 서울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에서는 오는 12일부터 26일까지 '보화각설립 70주년기념 서화대전'을 열어 조선시대 명품을 공개한다.
이 전시에 간송이 1936년 일본에서 비싼 값을 치르고 찾아온 '혜원전신첩(惠園傳神帖·국보 135호)' 30폭 그림 중 '단오풍정(端午風情)'·'주유청강(舟遊淸江)'·'월하정인(月下情人)'·'유곽쟁웅(遊廓爭雄)' 등 계절별 풍속도 네 폭이 공개될 예정이다. 이 중 '단오풍정'과 '유곽쟁웅'은 '바람의 화원'에서 신윤복(문근영)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묘사된 작품이다.
'단오풍정'은 단오를 맞아 여인들이 그네를 타고 머리를 감는 모습을, '유곽쟁웅'은 기방 앞 마당에서 사나이들이 여인을 앞두고 다투는 장면을 묘파한 작품이다. 교교한 달빛 아래 숨막히는 밀회를 즐기는 남녀를 그린 '월하정인'과 양반자제들의 뱃놀이를 묘사한 '주유청강' 역시 이정명 작가의 원작 소설 '바람의 화원'에 언급된 작품으로 미술 애호가들이 손꼽아 공개를 기다리던 작품. 여기에 혜원의 걸작으로 꼽히는 '미인도'가 눈을 황홀하게 한다.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에 귀기울이는 선비의 모습을 그린 단원의 '마상청앵(馬上聽鶯)'도 감상할 수 있다.
간송미술관이 아니고서는 구할 길 없었을지 모를 이들 작품을 모으기 위해 천금을 아끼지 않았던 간송의 일화는 유명하다. 정작 자신은 낡은 내의를 입고 다녔으면서 간송은 재산을 다 팔아 미술품을 수집했다.
경성에서 기와집 한 채가 1000원 하던 시절, 식민지 청년 간송은 고려청자 걸작품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68호)를 얻기 위해 2만원을 기꺼이 내놓았다. 훈민정음해례본이 안동에서 1000원에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 거간꾼에게 1000원을 수고비로, 1만원은 물건값으로 전했다. 오늘날 간송미술관에 몇 점의 소장품이 있는지는 극비. 아직 한 번도 전시되지 않은 걸작이 상당수 있다는 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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