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참 노래가 하고 싶었어요. 가수가 되고 싶었죠.
1980년. 제가 대학교 1학년 때입니다.
당시는 온 나라가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던 시기였죠. 5월은 전국 대학에 휴교령이 내려졌어요. 그런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대학생들에게는 대학가요제라는 축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변방에서 별다른 관심 없이 진행되는 가요제로 전락해 버렸지만 당시에는 폭발적인 인기를 몰고 다니는 축제였습니다. 고등학교에서 가수로 불리던(^^) 저는 당연히 대학가요제에 참가했죠. 바로 1개월 전에는 외대 가요제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본교 가요제 본선에서 물을 먹은(^^) 저는 심기일전 대학가요제의 문을 두드린 겁니다. 하지만 예선전에서 기라성같은 참가자들의 실력에 그만 기가 질리고 말았습니다. 정말 무지하게 노래들 잘하더군요. 영락없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대상 수상자는 한양대의 정오차 였습니다.
가수의 꿈은 접을 수 없었습니다.
1985년 종로외국어학원에 입성한 후, 정말 최선을 다해서 강의를 하는 중에도 머리 속에서 가수의 꿈은 떠나질 않았습니다. 당시 제게 영어를 배우던 학생 중에는 한국 최고의 프로그래시브 록 그룹인 <산울림>의 둘 째 김창훈씨가 있었습니다. 제게 2년 정도 영어를 배웠지요. 어느 날 김창훈씨가 신인 가수를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있나요? 데모 테이프를 냈지요. 결국 떨어졌습니다. 당시에 김창훈씨에게 픽업되었던 가수는 바로 김완선이었습니다.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중에도 틈만나면 기타치며 노래했어요. 그런 저를 학원에서는 기인이라 생각했겠지요. 1987년 저는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제 나이 28살 때였습니다. 제 학생들에게 공지를 합니다. "내가 콘서트를 열려고 한다. 참여할 사람은 모여라." 총 5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이 정도로 충분치 않아. 친구들 중에 노래나 연주를 잘하는 사람들있으면 모아봐." 그렇게 해서 8명 정도를 모았습니다. 학생들은 신이 났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공연장을 물색하러 갔습니다. 당시에 대학로에서는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라는 연극이 장기 공연 중이었습니다. 대단히 인기 있었던 연극이지요. 극단장을 만났습니다. "저 종로외국어학원 영어선생입니다. 음악 공연을 하고 싶습니다. 극장을 이틀만 빌려 주십시오." 저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단장님은 웃으면서 "그러쇼."했습니다. 그 후로 포스터 만들랴, 팜플렛 만들랴, 티켓 만들랴 정신 없었습니다. 학생 중에 미대생들이 중심이 되었죠. 그리고 주말이면 극장에 모여서 밤새 연습을 했습니다. 드디어 이틀에 걸쳐 4회 공연은 성황리에 끝이 났습니다. 학원에서는 모두들 정말 신기한 눈으로 저를 바라봤겠죠? 볼탬 보라지^^...
공연이 끝나고 같은 해, 얼마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원장님이 저를 찾는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원장실로 내려 갔지요. 그런데 원장실에는 원장님과 함께 뜻밖에도 김광한씨가 앉아 있었습니다. 당시 김광한씨는 한국 최고의 디스크 자키겸 비디오 자키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TV에서는 <쇼 비디오 자키>라는 프로그램으로, 라디오에서는 <김광한의 팝스 다이얼>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했지요. 원장님 말씀. "이 분이 오셔서는 우리 학원에서 영어선생님 중에 음악을 아주 좋아하는 선생님을 좀 소개시켜 달라고 해서 오선생님을 불렀습니다." 김광한씨는 제게 다짜고짜 묻습니다. "오늘 몇시에 강의 끝나십니까?" "아, 예, 9시에 끝납니다." "그러면 9시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떴습니다. 밤 9시가 되어 강의를 끝내고 내려가보니 김광한씨는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의 손에 이끌려 그의 차에 실린 채 어디론가 납치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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