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 형규의 첫 영어 비디오는 'Wee Sing Train'이었습니다.
2000년 4월, 그러니까 형규가 만 30개월이 되었을 때에 매달 책을 몇 권씩 받아봤는데 그 때 사은품으로 받았죠.
위씽이 그렇게 유명(?)한 비디오 시리즈라는 것도 전혀 모른 채 말이에요.
첫 느낌은 조금은 오래된 것 같은 세련되지 못한 분위기지만 왠지 모르게 정이 간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아이가 말이 빨라 굉장히 말을 잘 하는 시기였고 영어에 노출된 적이 없었는데도 전혀 거부감 같은 것 없이 1시간 가까이 시선을 떼지 않는 게 놀라웠습니다.
현재 52개월, 우리나이로 6살인 형규가 지금도 제일 아끼고 즐겨보는 비디오는 바로 이 'Wee Sing Train'입니다.
같은 비디오를 싫증내지도 않고 보는 게 신기하지만 그건 바로 어른이 아닌 아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무슨 소리냐. 아이들이야말로 쉽게 싫증을 내고 새로운 것을 찾는데..'라고 반문을 제기하실 분이 많으실 줄 압니다.
물론 그 말도 맞습니다. 아이용으로 특별히 제작된 장난감의 경우 아이의 호기심을 끌고 사랑을 받는 게 정말 한순간이니까요. 물론 한동안 갖고 놀지 않던 물건을 다시 꺼내어 마치 새로 산 장난감처럼 갖고 놀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이는 그만큼 성장했고 같은 물건이라도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 있고, 색다른 방식으로 놀이 친구가 되어줍니다.
비디오나 책은 그런 면에서 보면 볼수록 새롭게 느껴지는 게 아닌가 합니다.
똑같은 화면이나 그림, 똑같은 내용이지만 아이들은 매번 새로운 걸 발견해내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다양하게 접근해 활용해내지요. 제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전 미처 생각해내지 못했던 걸 아이의 눈과 사고를 빌려 보고 느끼며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니까요.
3년 째 테이프가 늘어지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로 도대체 몇 번이나 봤는지 손으로 꼽을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본 이 비디오와 함께 형규는 어떻게 자랐을까요.
첫 번째 시기 ,
유난히 노래하는 것을 즐기던 형규는 비디오에 수록된 곡들에 흠뻑 빠져 하루종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습니다.
같은 비디오 속에 있는 노래라도 엄마의 목소리로 더 많이 들은 곡을 빨리 소화해 불렀구요. 요즘에도 느끼는 거지만 테이프나 CD로 노래를 듣고 따라 불러도 엄마가 자주 불러준 노래의 문장을 더 정확히 발음하고 쉽게 따라 부릅니다. 가장 친밀한 엄마의 목소리가 아이의 귀를 통해 머릿속에 쉽게 인식되는 게 아닐까요.
영어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부른다고 영어로 말을 할 수 있거나 순식간에 표현력이 느는 건 물론 아니지만 우리말과 그 어순이 다르고 문형이 다양한 영어를 접하는 데 있어 노래만큼 좋은 건 없는 것 같아요.
속도를 느리게 혹은 빠르게 변형해 부르고, 멜로디 없이 그냥 말하는 것처럼 혹은 리듬감있고 경쾌하게 노랫말을 따라 부르면서 혼자 수없이 반복하는 건 즐거움 없이는 불가능하지요.
이 때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 낯선 단어나 문장에 대한 질문은 없었고 저역시 우리말로 설명을 해 주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시기,
영어 단어 어휘력이 늘어나고 문장을 표현 능력이 발달한다고 해도 우리말만큼은 좇아가지 못해서인지 "이건 우리말로 뭐예요? 이게 무슨 뜻이예요?'라는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비디오를 보면서 즉시 즉시 묻기보다는 다 본 후에 질문하고 들리는 대로 발음해 정확하지 않은 경우도 많아 그 단어가 대체 어디 쯤에 나오는 지 함께 얘기를 나누며 되짚어 어렵게 생각해내야 할 때가 많았죠.
영영 사전을 이용해 설명해 주면 진지하게 듣고 있다가 제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우리말로 알려달라고 고집하기도 했습니다. 다음 번에는 또 다른 질문을 해 나가면서 그 장면에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하려고 했지요. 그리고 다른 데서 같은 단어나 문장이 나오면 연관지어 사고하구요.
세 번째 시기,
비디오 내용 중 인상깊었던 장면 등을 블록과 그림으로 표현해냅니다.
블록으로 책이나 비디오에서 봤던 걸 만들며 놀기를 좋아하는데 블록으로 어떻게 그런 것까지 재연해낼 수 있을까 싶게 아이는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세계를 꾸밉니다. 종이에 그림을 그려 오려 등장인물을 세워놓고 자신이 설정해 놓은 상황에 해당하는 노래를 부르고 말을 하지요. 자신이 카우보이이나 개구리로 변한 왕자가 되어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구요.
비디오 장면이 현실이 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아이에게 Barney 비디오에 수록된 노래 중 하나인 'Just imagine' 내용을 얘기해주고 상상을 통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해주니 더 적극적으로 즐깁니다.
자신의 느낌 등을 가미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걸 칭찬해주는 것 못지 않게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천천히 귀기울여 들어주면 아이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어 좋더군요.
네 번째 시기,
언제나 새로운 걸 발견해내고 의문을 가집니다.
아이와 함께 비디오를 보는데도 아이만큼 집중을 해 보지 않기 때문인지 저는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걸 찾아내 관심을 갖고 왜 그런지 물어옵니다.
공주의 성에 도착하기 전 내리막길이 있는데 그 주위에 행성그림과 숫자(어떤 숫자였는지 지금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납니다. 육아일기를 뒤져봐야 알겠네요.)가 있다며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문을 갖고 물어도 엄마가 전혀 그 장면을 기억해내지 못하자 리모콘 '일시정지' 버튼까지 눌러가며 가리킵니다.
그 '행성과 숫자'를 보신 기억이 있으세요?
다섯 번째 시기,
노래 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대사를 말하고 동생과 역할극을 하고 놉니다.
'Casey, where this should go?
It won't stand up by itself.'부터 시작해 일인 몇 역을 해내며 대화를 하고, 비디오를 볼 때는 대사가 나오기 전에 미리 알고 있는 그 말을 하는 게 재미있는 모양입니다.
아직 말을 잘 하지 못하는 동생 재영이와 Tusky 가 학교종을 고치려 지붕위에 올라간 것과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노는 걸 보면 정말 우스워요.
재영이가 장난감 자동차 (탈 수 있는 큰 것 있죠?) 위에 올라가 오빠에게 내려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면 형규는 위험한 행동에 대해 주의를 주는 걸 잊지 않으면 마치 사다리를 내려오는 것처럼 동생을 뒤에서 잡고 내려오고 성공했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여섯 번째 시기,
노래를 그냥 부르는 게 아니라 단어를 적당히 바꿔가며 개사를 합니다.
스스로 응용을 하는 걸 보면 새삼 그 동안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잠자리에 누워서 엄마에게 옛날이야기(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모두 옛날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를 들려준다면서 책이든 비디오든 그 줄거리를 이야기해줍니다.
문맥이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그것이 우리말이든 약간은 서툰 영어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요.) 말하는 걸 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모든 아이가 다 똑같은 단계를 거치지는 않겠지만 비슷한 과정을 거치지 않을까요.
조급하게 이것 저것 하기 보다는 하나를 가지고 아이의 특성을 살펴 보는 것도 다른 여러 가지를 적용하는 데 앞서 가이드가 되어 줄 겁니다.
가끔씩 한동안 보지 않았던 비디오를 꺼내어 아이와 함께 보세요.
아이는 분명 전과는 다른 걸 찾아내고 즐거워할 것이고, 또 부모님은 아이의 언어와 사고의 성장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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