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번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만 저는 시골 읍내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고
동료 국어 선생님의 초등 1학년 아드님을 최대한 엄마표에 가깝게 가르치 (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매일 저랑 2,30분 하고 숙제로 그 날 읽은 책 두 세 번 배경음악 삼아 들어주시는 게 전부라
실력도 노력에 비례해서 아주 정직하게 조금씩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ㅎㅎ
기초 파닉스와 사이트워드 이후 저의 주교재는 가격 대비 높은 성능을 자랑하는 삼성 그림책으로 영어시작
시리즈였습니다. 지난 글을 봤더니 딱 5개월 채웠을 무렵에 2단계 중간까지 나갔던데 그 이후로는
좀 지지부진 했습니다. 거의 일주일을 통으로 빼먹은 적도 있고요.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 로버트 먼치의 below zero를 읽어주었는데 역시 이 나이 때 애들은
crazy 같은 단어에 열광하더군요. ㅎㅎ 한동안 You are crazy, I don't crazy (?), crazy teacher 같은 말을
달고 살더군요. 같은 작가의 시리즈를 두어개 더 읽어주면서 3단계로 넘어갔습니다.
이 때쯤 슬슬 쓰기를 시켰어요.
사흘에 한 번 꼴로 이미 읽은 책에서 아무 문장이나 다섯 줄 적기를 숙제로 내줬습니다.
3단계에는 해적들이 섬사람들에게 보물지도를 빼았아갔다가 벌 받는 얘기가 있는데
엄청 진지한 얼굴로 '해적이 아이들을 내놓으라고 했다, 왜냐면 엄마아빠의 보물은 아이들이니까'라는
멘트를 날려 저를 웃겨주셨습니다.
한 번은 there is a book이라고 했더니 그건 너무 가까워서 here이라면서
방구석으로 마구 달려가더니 거기서 there is a book하더군요.
here, there, this, that, she, he같은 대립쌍의 개념은 확실해져 있더군요.
갑자기 자기 발냄새를 맡더니 'smells bad~~~'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림 카드만 보고 비교급 최상급을 한큐에 이해하고 써먹는 모습을 보이는 등 살짝살짝
선생님이 너무 좌절하지 않도록 입질을 해주셨으나 전체적으로는 더디고 힘든 시기였어요.
근본적으로 책을 좋아하지 않는 타입이어서 아이는 자꾸 액티비티만 하기를 바라는데
저는 읽기를 시키고 싶어해서 두 욕심이 서로 부딪히는 시기였던 것 같네요.
3단계가 끝나면서 메이지 시리즈를 대여섯 권, 기초 회화 그림책 대여섯 권을 읽었는데
아이 자신은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잘 읽게 됐지?' 하면서 좋아하고
저도 '캬아~ 천재천재'하면서 추켜세워줬지만
사실 생각보다 파닉스가 잘 잡혀있지 않아서 약간 실망했습니다.
swim과 swing, want와 went를 구분할 줄 모르는 건 아닌데 읽기 귀찮아한달까요..
첫 두 글자만 보고 대충 읽어버리더군요.(원래 이런가요?)
단어가 좀 길어지만 파닉스고 뭐고 아주 대충 읽어버리기도 하고요.
아이는 두 번째부터 매끄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에 매우 흡족해했지만
저로서는 왜 처음부터 매끄럽게 읽을 수 없는지 좀 욕심이 나더라구요.
(제가 욕심이 과한 걸까요. 저학년을 가르쳐본 적이 없어서 가늠이 잘 안 되더라구요)
읽기에 자신감을 줄 생각으로 ort 1단계를 대여해서 36권을 2주 동안 읽었습니다.
과거형에 대한 개념도 약간 생기고 읽기에도 조금은 속도가 붙더군요.
워크시트를 다운 받아 같이 풀면서 또 열심히 hide and seek 하면서 놀아주시고..
지금은 ort 2단계를 대여해서 18권, 딱 절반 읽었습니다.
그림책으로 영어 시작은 한글 해석이 있어서 유추력이 약했는데
ort하면서 유추력도 많이 는 것 같고요.
단답식 대답에서 문장 형식의 아웃풋을 이끌어내고자 노력해봤는데
인위적인 노력은 오히려 '한국 사람이 왜 미국말 해요?' 라는 대답으로 돌아오길래
'선생님 말 무조건 따라해서 선생님 골려주기'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요즘 이 녀석이 선생님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오히려 질문을 고대로 따라하는데
이 때 제가 막 곤란한 척, 약오른 척 하면서 점점 더 길고 빠른 문장을 내뱉는 겁니다.
'아무리 너라도 요건 못 따라오겠지~' 하는 표정으로요.
그러면 이 녀석이 호승심에 다 따라하더라구요.
승부는 언제나 제가 '지는' 걸로 정해져 있지만 우쭐해하는 녀석 얼굴을 보면서
선생님이 속으로 웃고 있는 것은 모르고 있겠지요. (넌 아직 하수란다~)
그래도 아웃풋은 신통찮습니다.
What is my homework? 나 This book is hide. Find it. (책 숨겨놨으니 찾아보라는 뜻) 정도의 문장에도
제가 크게 기뻐할 정도니까요.
스펠링 외우기는 전혀 시키지 않지만 따라쓰기는 양이 조금 늘어서 사흘에 한 번 꼴로 한 바닥을
쓰게 하는데 (가끔 두 바닥) 이것만으로도 스펠링이나 문장 구조에 대한 민감성이 조금씩
늘어가는 것 같아서 당분간 이대로 진행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듣기의 양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 수업 중에 제가 하는 말은 좀 길어도
이해하는 편이지만 그건 맨날 쓰는 말이니까 그런 거고 시간이 지날수록
듣기 부족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억지로라도 무자막 비디오를 보게 해야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읽기 레벨과 듣기 레벨이 같이 갔지만 이제 별도로 흘려듣기도 시켜야겠습니다.
....만 문제는 며칠 뒤에 국어 선생님이 서울로 이사를 가신다는 거. -_-;;;;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온라인으로 레벨 테스트를 받아볼까하는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네요. 이런 표현 쓰는 게 참 거시기합니다만 리딩타운과 영도 베이직에서
어느 정도가 나와줘야(?) 할까요. 서울 가면 청담 에이프릴에 보낼 생각이시라는데 seed 1정도는 되어야
선생의 도리(?)를 한 것 같아서요. ㅎㅎ (파닉스 완벽해야 seed 1 되나요?)
8개월 동안 진행하면서 느낀 것은 역시 영어는 듣기와 읽기의 힘이며 당장 단어 몇 개
외우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였어요. 언어라는 게 하루 한 단어씩 순차적으로 느는 게 아니라
어느 날 폭발적으로 느는 것이라는 것도 재확인했고요.
이렇게 별 거 없는 진행기를 올려도 되나 약간 고민했지만 엄친아 엄친딸이 아닌
아이들의 사례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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