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엄마라는 이름으로 무모해 질 때가 있어요.
오늘 그런 이야기 하나 할게요.
작은아이 정빈이의 밤 기도는 엄마가 kbs 방송에 나오게 해달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왜 그런 소원이 생겼고, 왜 꼭 kbs여야 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는데 참 오래 된 아이의 소원입니다.
그래서 다가 올 여름방학 계획을 세우다가 이 번 방학에 아이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제 kbs 방송국 홈의 '아침마당' 게시판에 방청객으로라도 얼굴을 한 번 비칠 수 있을까 하는 글을 올렸답니다. 방청객이라도 되어 앉아 있을 프로를 찾는 것도 쉽지 않더군요. 아이가 굳이 kbs를 고집하니 이거 원….
지난 번 아나이스님 대교방송 때 대구에서 새벽 차를 타고 가 방청객이 되었던 것도 정빈이의 소원을 들어 주고 싶다는 것이 절반의 이유이기도 했어요. 아나이스님이 정빈이의 소원을 알고 있기에 일부러 방청객의 질문 기회도 저에게 주셨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kbs방송이 아니라서 자기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방학 시작하자마자 상담연수로 빠듯할 일정 중에서 어느 날 방청객으로 앉아 단 몇 초라도 TV 화면에 엄마의 얼굴을 비쳐 아이가 매일 밤 간절히 하는 기도에 답하고 싶은 마음, 이해 하실런지요?
아래 글은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구에 살고 있는 정빈이 엄마라고 합니다.
아래의 긴 글은 지난 4월 2일 부터 2박 3일 동안의 수학여행을 앞 둔 날의 제 육아 일기입니다. 제가 중학교 교사거든요.
저의 작은아이 소원 중 하나가 엄마가 텔레베전에, 그것도 KBS에 나오는 것이에요. 왜 꼭 KBS인지는 모르겠어요.
딸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지난 겨울 방학에는 대구에서 서울까지 가서 방청객이 되어 앉아보기도 했는데 KBS가 아니어서 소원이 이루어진 게 아니라고 하네요. 방청객 되기도 쉽지 않더군요.
남들 눈에는 아이도 유난스레 키운다 탓하실 지 모르지만 저는 아이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해 주고 싶어요.
솔직히 저는 직장인이라 아침마당을 볼 수 있는 날이 거의 없어요. 그러면서도 염치 불구하고 도움을 청해 봅니다.
도움을 청할 곳이 KBS에는 아침마당말고는 없네요.
방청객으로라도 한 번 KBS에 얼굴을 내밀 기회를 주시면 안될까요?
기회가 닿으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현장의 교사로 서요.
연락처는 053-571-7903(이영미) 학교이고 아직 휴대폰은 없습니다.
아래 글을 읽어보시면 감이 오시겠지만 아이 건강이 그리 좋은 게 아니랍니다.
아이의 소원이 들어 있는 저의 육아일기입니다.
"언니들이랑 여행가서 두 밤만 자고 올게."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는 온통 얼굴이 눈물 범벅이 되면서
"가지 마세요. 나 엄마 없으면 잠도 못 잔단 말이에요."라며 내 품에 달려와 가슴에 얼굴을 묻는 아이.
"빈아, 엄마 말 들어 봐."
"싫어요, 안 들어요. 듣기 싫어요. 여행가지 말아요."
"정빈이가 이런다고 엄마가 여행을 안 갈 수 있는 게 아니야. 엄마 말 한 번만 들어 봐."
"그럼 나 엄마 가방에 넣어 가지고 가요. 엄마 여행 갈 때 큰 가방 가지고 갈 거잖아요. 그 가방에 넣어서 데리고 가요. 나 엄마 떨어지기 싫어요. 나 지금 가방에 들어가 있을 거야."
엄마와 두 밤을 떨어져 자야한다는 게 일곱 살 빈이에게는 참으로 큰 일인가 보다.
보통 때 같으면 꼬박 꼬박 '어머니'라고 부르고 '나'가 아닌 '저'라는 말을 쓰는 아이가 여행을 가지 말라, 꼭 가야한다면 가방에 자기를 넣어서 가라며 떼를 쓰며 눈물로 뒤범벅이 된 얼굴 "엄마 엄마"를 외쳐대니 말이다.
정빈이를 가슴에 안고 아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이야기를 했다.
"정빈아, 우리 빈아는 이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지?"
아이는 눈물을 멈추지 않고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도 이 세상에서 우리 빈아가 제일 좋아. 그런데 엄마 반에는 엄마가 없는 언니가 다섯 명이나 있어. 그 언니들은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고 엄마라 부르거든. 진짜 엄마가 없으니까 선생님을 대신 엄마라 생각하는 거지."
"왜 엄마가 없어요?"
"엄마가 돌아가신 언니도 있고 사정이 있어서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는 언니도 있어."
"왜 멀리 살아요? 같이 살면 되지? 그리고 왜 아이가 있는데 엄마가 먼저 돌아가셨어요. 아이랑 오래 오래 살다가 죽어야지."
"그 엄마도 언니와 오래 살고 싶었는데 몸이 아파서 어쩔 수가 없었대. 그리고 같이 살고 싶어도 떨어져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야. 그 이유는 엄마도 자세히 알지 못해."
"그 언니들 진짜 슬프겠다. 엄마가 없어서."
"그래, 많이 슬플 거야. 그리고 언니들은 엄마와 같이 여행을 가보지 못했대. 언니들 소원이 엄마와 같이 여행을 가는 것이거든. 그런데 엄마가 여행을 가지 않으면 그 언니들은 정말 슬플 거야. 그 언니는 아마 지금쯤 이런 기도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을 거야. 부처님, 선생님과 여행을 갈 수 있도록 정빈이가 어머니를 딱 두 밤만 양보하게 해주세요, 하고 말이야. 그리고는 그 기도가 이루어지는 꿈을 꾸면서 쿨쿨 자고 있을 거야. 코오옥 코오옥 하며 코까지 골아 가면서."
"코까지 골면서요?"
"응, 어쩌면 크아악 크아악 이렇게 골지도 몰라."
"크아악 크아악 코를 곤다구요? 진짜 너무 웃긴다."
아이 얼굴이 웃음이 번지고, 아이 코끝에 내 코를 마주 대고 서너번 비벼주니 아이는 간지럽다며 깔깔거리며 몸을 뒤틀며 웃어댔다.
"정빈이와 엄마도 매일 밤마다 기도하잖아. 엄마 기도가 이루어져서 엄마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알지? 엄마 기도가 뭐였지?"
"제가 쭉쭉 빵빵 크는 거요."
"맞아 맞아, 정빈이가 건강하게 자라줘서 엄마의 기도가 이루어졌잖아. 정빈이가 엄마를 두밤만 언니들에게 양보해주면 언니들의 소원이 이루어질 거야. 다섯 명의 언니 소원이 말이야. 그 언니들의 소원을 정빈이가 이루어지게 해 줄 수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
"제가 부처님이에요? 언니들은 부처님에게 소원을 빌었는데 어떻게 제가 언니들 소원을 들어 줘요?"
"엄마는 소원을 누구에게 빌었었지?"
"부처님께요."
"그런데 누구 때문에 엄마 소원이 이루어졌지?"
"모르겠어요."
"바로 정빈이 때문에 엄마 소원이 이루어졌어. 정빈이가 밥도 많이 먹고 안 아프고 쭉쭉 빵빵 커줬잖아. 엄마가 기도할 때마다 정빈이가 엄마 소원이 무엇인지 들었지? 그럴 때 어땠어? 엄마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겠지? 그리고는 엄마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밥도 많이 먹으려고 노력하잖아. 결국 엄마의 소원은 정빈이가 들어 준 거지. 엄마가 부처님께 소원을 빌었다고 해서 부처님이 이루어지게 해줄 거라 생각하고 정빈이가 밥도 안 먹고 매일 아프면 엄마 소원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라. 그런데 정빈이는 그렇게 부처님께 미뤄버리지 않고 엄마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해 주었잖아. 엄마도 정빈이 처럼 누군가의 소원을 듣게 되면 내가 들어 줄 수 있거나 내가 도와 줄 수 있는 길이 있으면 그렇게 하고 싶어. 언니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해 주고 싶어서 정빈이에게 부탁을 하는 거야."
"엄마하고 여행하는 게 뭐 소원이에요. 나는 몇 번이나 갔었는데. 어린이날 또 갈 거고."
"그렇지? 정빈이는 엄마가 늘 곁에 있고 함께 여행을 많이 가니까 그런 게 소원일 필요가 없지만 엄마가 없는 언니들에게는 그것이 참 간절한 소원이 될 수 있는 거야. 그 소원을 우리 정빈이가 이루어지게 해주었으면 해. 부탁이야. 아마 언니들도 무척 고마워 할거야."
아이는 한 참을 생각하더니
"알았어요. 두 밤만 자고 오세요. 그런데 예쁘게 해서 가야죠. 제가 옷 골라 줄게요."
하고는 옷장 쪽으로 걸어가더니 옷장의 옷들을 꺼내 나름대로 코디를 하느라 부산스러웠다.
"이 재킷에는 노란 바지, 진노랑 바지가 어울릴텐데…, 어머니 진노랑 바지 있어요?"
"어떡하지? 진노랑 바지는 없는데."
"아이참, 그렇게 입어야 특이한데. 난 좀 특이하게 입는 게 좋던데."
갑자기 『특이』한 걸 고집하더니
"으음∼ 그럼 이 바지랑 딸기 모양 양말이랑은 어때요? 그리고 모자는 이게, 아니 이게 좋겠어요. 이거 입어 보고 있으세요. 저는 신발을 고를게요. 신발은 어떤 거 신고 싶으세요? 높은 게 좋아요 낮은 게 좋아요? 하얀 구두는 어때요?"
그런 아이에게
"왜 이렇게 예쁘게 해서 가야 해?" 하고 물어 보았더니
"언니들이 예쁜 엄마와 같이 가고 싶을 거잖아요."한다. 그리고는 마치 어른처럼 한 마디 덧붙인다.
"어머니, 여행가서 언니들에게 잘 해 주세요."
아이의 그 말에 내가 눈물이 핑 돌았다.
"정빈아, 정말 고마워. 언니들이 진짜 좋아할 거야. 넌 엄마가 알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야. 너 정말 멋있어. 진짜 짱!이야."
"어머니가 그랬잖아요. 저는 빛이 될 아이라고요."
"그렇지 그렇지. 엄마가 늘 그랬었지. 넌 세상을 사랑으로 넘치게 만들 아이라고."
새벽 2시가 넘도록 내 짐을 챙겨준다며 옷장의 옷들은 죄다 꺼내 놓고는 정말 특이한 옷들을 골라주고는
"잠이 와서 안되겠어요. 내일 아침에 인사해야 되니까 꼭 깨우세요."하더니
"아참, 기도 해야죠. 아니다. 오늘은 안 해도 되겠어요. 언니들이 기도를 많이 해서 부처님이 바쁠 거니까. 아니다. 부처님 대신 제가 언니들 소원을 들어주었으니까 기도해야겠다. 그런데 부처님은 언제 제 소원을 들어 주실 까요? 어머니 KBS 방송국에 좀 나오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하는데. 어머니가 전화 좀 해보세요. 제가 기도할 때마다 방송국 사람들이 전화로 들어야 제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도와 줄 거 아니에요." 하고는 스스르 잠이 들어 버린 아이.
할머니와 둘이서 사는 Y.
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는 K.
부모의 이혼, 아버지의 딴 집 살림으로 혼자 살고 있는 M.
아버지와 동생과 살고 있는 P.
부모의 가출로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고 있는 G.
정빈아, 너에게는 늘 함께 있는 엄마가 이 언니들에게는 꿈에라도 보고 싶은 소원이라는 걸 넌 아니?
아버지가 안 계셔서 엄마와 둘이 사는 D, J, L, W.
퇴근해 돌아오면 정빈이의
"아버지 같이 놉시다"라는 한 마디가 가장 듣기 좋다는 아버지를 정빈이도 참 많이 사랑하지?
그 언니들에게는 그런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그리운, 눈물나는 존재라는 걸 넌 아니?
누군가의 소원이 살짝 들려 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해주자꾸나.
세상에는 엄마와 우리 정빈이의 작은 도움이라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을 거야.
작지만 따스한 빛이 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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