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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회 다이어리 : 오호! 한약이 달단 말이지?

  • 승호아빠
  • |
  • 2002-07-09

지난 6월 중순 경, 한창 월드컵 열기에 빠져서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 였습니다. 그 날도 퇴근하자마자 월드컵 경기 보려고 TV 앞에 앉으려는데 식탁 위에 종이 한 장이 놓여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게 뭔가 하고 쳐다 보았지요. 그것은 승호가 얼마 전에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실시한 건강 검진 결과 통보서였습니다. "야.. 승호 건강 검진 결과 나왔네..." 제가 소리 지르자, 승호 엄마는 "응, 아주 깨끗하게 나왔어.." 하고 대꾸해줍니다. 검사 항목과 수치를 자세히 보니까 모두 다 정상이라고 되어있었습니다. 비만도 같은 경우는 80에서 120이 정상인데 승호는 딱 100이더군요. 승호가 조금 마르지 않았나 하고 평소에 생각해왔는데 수치상으로는 정상이라고 하니까 일단 안심이 되었습니다. 종이 한 장이 이렇게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통보서의 제일 마지막에 써 있는 한 줄.. '축하합니다.' 하는 글이 정말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이 통보서를 받기 얼마 전에 승호를 데리고 한의원에 갔었습니다. 누나가 조카를 데리고 아는 한의원에 간다는 소식을 들은 제 어머니께서 이번 기회에 따라가라고 재촉을 하시는 바람에 가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 왈, "승호, 약 먹인지 한 참 되었잖니.. 지금쯤 용 먹어야 돼." 저는 답하길 "아.. 그거 효과는 있나? 꼭 먹여야 되요? 그리고, 승호는 건강한데.."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가게 되었는데요. 한의사 : 특별히 아픈 데는 없습니까? 저 : 예, 별로 없습니다. 아, 코피를 자주 흘리기는 해요. 승호가 코피를 잘 흘리거든요. 어렸을 때 코피 흘린 적 별로 없는 저로서는 처음에 몹시 당황했는데, 승호 엄마가 어렸을 때 코피를 많이 흘렸다고 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이 되긴 합니다. 한의사는 승호를 침대에 눕히더니 손으로 배를 만져봅니다. 간지럼을 지독히도 못 참는 승호는 저를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느라 정신 없습니다. "승호야.. 좀 참아라.. 그렇게 움직이면 선생님이 진찰 못 하신다." 하고 이야기했지만 별로 효과는 없었습니다. 여전히 몸을 배배 꼬고 있었습니다. 한의사 : 음, 승호에게 변비가 있죠? 저 : 아, 맞아요. 변비기가 조금 있습니다(사실 전 아이들은 어느 정도 변비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의사에게 먼저 이야기 안 했거든요.). 한의사 : 장기로 보아서는 승호가 아주 건강한 아이는 아닌 것 같은데, 체질이 약해요. 저 : 어? 그래요? 밥도 잘 먹고 건강한데... 옆에 있던 제 누나 : 아니야.. 승호가 그렇게 건강한 체질은 아니야. 이거 참, 저만 승호를 건강한 아이로 생각했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승호 체질이 그리 강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감기도 자주 걸리고, 코피도 자주 흘리고, 변비도 자주 오고, 보기에도 튼튼해 보이지는 않고, 밥을 잘 먹긴 하지만 아주 잘 먹는 것은 또 아니고, 수영장 갔다 오면 피부에 발진이 나는 경우가 많고(수영장 물 알러지 때문인지 햇빛 알러지 때문인지 모르겠어요)... 뭐 생각해보니 문제가 있는 것도 같네요.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결국 용을 넣은 약 5첩을 먹기로 했습니다. 승호가 만 5세라서 다섯 첩을 먹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조카는 만 9세라서 아홉 첩을 먹기로 했구요. 조카는 밥을 엄청 먹는데도 빼빼 마른 체격의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인데, 잠시도 가만 있지 않고 뛰어 다니는 체질이이에요. 엄청난 운동량 때문에 그렇게 마른 줄 알았는데, 진단 결과 위가 늘어졌다고 하네요. 위가 늘어지면 많이 먹어도 살이 잘 안 찐답니다. 그나저나, 누나는 약을 지으러 가서는 한다는 소리가 "저, 이거 묻기가 뭐 한데요. 요즘 약재가 농약에 많이 노출되어 있어서 먹이기 꺼려진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괜찮은지요?" 였습니다. 전 뭐 그런 것을 묻냐 생각하면서도 과연 한의사께서 뭐라고 대답할까 궁금하더라구요. "우리가 마시는 공기, 물 그리고 먹는 음식들이 이미 공해에 오염되어 있는데, 그렇게 치면 뭐 하나 먹을 것이 없게요?" 한의사의 대답입니다. 허허.. 자, 이제 승호가 약을 잘 먹는 일만 남았는데요. 한약이 조금 쓰잖아요. 비싼 돈주고 약을 지었는데 승호가 잘 안 먹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야말로 기우였어요. 승호는 약을 아주 잘, 그것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약을 방금 먹고 나서도 "엄마, 나 또 약 먹으면 안돼?" 하고 물어 볼 때도 있었습니다. 무슨 음료수 마시듯 먹더라 이 말이지요. 아이 약이라고 감초를 많이 넣었는지 약이 달짝지근하다고 승호 엄마가 그러긴 했는데 그래도 그렇지 한약을 맛있다면서 더 달라고 할 줄은 몰랐어요. 다른 아이도 그러나요? 승호가 '승호는 체질이 약하니까 철마다 약을 지어먹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하는 한의사의 말을 들었는데다가 약이 맛있기까지 하니 진짜로 철마다 약 지어달라고 하면 어쩌나 걱정됩니다. (^_^) 승호 엄마와는 철마다는 안되어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먹이자고 합의해두었습니다. 어쨌든 비싼 약을 지어주었는데 잘 안 먹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약 효과가 있는 것인가요? 요즘 승호는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자랑하며 제가 집에만 있으면 축구하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마루에서는 물렁공으로, 놀이터에서는 피버노바 공으로 축구를 하는데 제가 지칠 정도입니다. 자기가 골 넣으면 안정환 골 세러머니도 똑같이 흉내냅니다. 제가 흉내내면 틀렸다고 하면서 자세를 고쳐주기도 하네요. 열심히 뛰며 땀흘리는 승호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까, 방학이 되어도 방에 틀어 박혀서 책 읽고, 컴퓨터 조작하는데만 열중하는 아이를 운동에도 관심을 두게 하는 방법에 관한 기사가 나왔더군요. 전 승호 때문에 그런 걱정 안 하게 되었으면 합니다. 비가 와도 밖으로 뛰어나가 놀 수 있는 승호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 제 누나에게 하면 누나가 화 낼 거에요. 누나의 걱정거리가 바로 조카가 차분하게 앉아서 공부하는 것 보다는 너무 뛰고 노는 것만 좋아한다는 것이거든요. 학교에서도 선생님께서 위층, 아래층으로 심부름시킬 것 있으면 전부 조카에게 시킨다고 합니다. 크크.. 열심히 계단을 오르내리는 조카 생각하면 웃음이 납니다. 언제 한 번 축구 같이 하기로 했는데 승호랑 셋이서 하면 진짜 재미있을 것 같아요. 어디 얼마나 잘 뛰나 한 번 보고 싶습니다. (승호는 97년 3월생 남자아이로 2001년 9월초부터 집에서 영어를 접하게 되었으나, 2002년 들어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어린이집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 외에는 특별한 활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집에서는 아주 가끔 영어 비디오를 보거나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습니다.) 덧붙임) 균형을 잡는다는 것이 참 힘들잖아요. 요즘 승호가 축구하고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전혀 책을 읽지 않아 제가 정말 간만에 책을 한 권 사들고 퇴근했습니다. 뭐 여전히 승호가 영어 책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책을 한 권 샀지요. 책 제목은 '해치와 괴물 사형제' 였습니다. 이제 승호는 애기가 아니라서 부모 취향에 따라 책을 샀다가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이번에는 철저히 승호의 취향을 고려했습니다. 승호가 좋아하는 책은 단연 '싸우는 내용'이 들어있는 책입니다. 굉장히 호전적이지요? 남자 아이라 그런 것도 같고, '탑 블레이드', '디지몬'과 같은 만화영화 탓인 것도 같구요. 하여간 현실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고른 책이 '해치와 괴물 사형제'였습니다. 해태라고도 불리는 해치가 괴물 사형제와 싸우는 내용으로 그림을 그린 분이 동양화를 전공했다고 합니다. 그림이 아주 독특하면서도 힘이 있어 참 맘에 들더라구요. 책에 대한 승호 반응은 아주 좋았습니다. 재미있다고 하면서 또 읽어달라고 하더군요. 그럴 줄 알았죠. 흐흐.. 그런데, 책을 읽고 나서 승호가 내뱉은 이 한 마디 말 때문에 전 승호가 많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 되게 잘 그렸다" 오호! 승호가 드디어 그림에 대한 평가까지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제 좋은 내용과 좋은 그림의 그림책을 찾는 일에 더 시간을 써야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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