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중산층에서 우리 세대가 다 그러했듯이 엄마 대신 연탄불 갈며 등 미지근하고 코 시린 방에서 자곤 했지요.
예쁜 자기 방에 침대 있고 깨끗한 책상 있는 따뜻한 친구의 집엘 가면 내가 이런 방에서 공부하면 전교 일등 할텐데..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구요.
학원이라곤 고 1때 수학 단과 학원 딱 두 달..
원어민이라곤 아무리 둘러봐도 없던 그 시절을 보내고
이렇게 성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성적도 중상위 상하위(?) 정도 되었고 때문에 물론 좋은 대학도 못 갔습니다
정신 차리고 열심히 공부했던 때는 오히려 대학때 였지요.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직업을 앞두고 도저히 양심상 설렁설렁 할 수는 없더라구요.
그리고 진짜 열심히 살았던 건 직장 생활 할 때 였습니다.
일 하는 시간 만큼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했지요.
그리고 학창 시절에는 매일 지각해서 출석부로 머리 맞던 잠보였던 제가 지금은 하루 평균 수면시간이 6시간 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어른이 되었을 때 나를 지탱해 주는 양심.. 에너지..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해보니 학창시절에 다 축적해 놓은 거 아닌가 생각되더라구요.
정말 정말 친구도 많았고 일들도 많았고 추억도 많았고...
초등학교 때는 밤이 되도록 고무줄을 했지요. 한겨울에도 목도리만 달랑 두르고 말이지요.
중학교 때도 중창단에 수련회에 학교 행사에 바쁘게 뛰어다녔고
고등학교 때도 남들은 하나만 하는 써클활동을 저는 제일 바쁘다는 써클을 두 군데나 뛰어다녔습니다.
써클활동에 교회 활동에 체구도 작은 저에게 웬 카운셀링은 그렇게나 많이 들어오던지..
고 3 막판 몇 달 독서실을 다녔는데 수시로 저를 호출해대는 통에 공부도 제대로 못했지요.
어찌나 희한한 삶들이 제 주변에 많던지.. 입양아에 새엄마에 왕따에 사생아에 아버지 부도에... 무슨 고 3짜리에게 그러한 상담을 했던지.. 암튼 나 공부할래 하고 뿌리칠 수 없는 내용들이어서 진지하게 들어주곤 했지요.
우스개 소리처럼 난 그 때 공부 너무 안해서 망했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때 얻은 귀한 체험들은 평생을 두고 제 삶에서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공부만 했던 제 남편은 서울 일류대를 나와서 넘들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어도 추억도 하나 없고 학창시절에 에너지의 근간이 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기껏 추억이라고 두고두고 말하는 것이 기껏 소년중앙인가 하는 잡지 구독했던 거랍니다. 정말 불쌍하지 않습니까?)
남편은 저를 부러워하지만 저는 남편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현재 게시판은 뜨거운 감자가 여럿 올라와 후끈 하더군요.
잠시 머리가 지끈지끈 하다가 다시 평정을 찾으려 해요.
아이들이 학창시절 정말 친구들과 즐거운 추억과 많은 경험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면
어른이 되었을 때 가뿐히 모든 것을 이겨내지 않을까...
물론 일류가 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이가 아이답지 않게 많은 시간 공부를 하면서
제가 누렸던 그 즐거운 경험들을 제 딸들이 겪지 못한다면
저는 그냥 일류의 세계에서 살짝 물러나게 하고 싶네요.
저는 현재 일류의 삶을 살고 있지도 않고
인토네이션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지만
제가 느끼는 행복감은 어느 누구보다 뒤지지 않습니다.
학창시절 행복했던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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