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겨울방학엔 놀다놀다 발이 얼고 코가 헐어서 남은 시간 학교도서관에서 코박고 옛날이야기에 심취했던 기억이 나네요. 우리 때 책은 지금만큼도 친절하거나 다양하지 못해서, 삽화도 많지 않았는데, 실은 이미지가 적었다는 그 이유 때문에 더 내 맘대로 이렇게도 상상하고 저렇게도 상상하곤 했던 것 같아요. 당태종이 선덕여왕에게 모란도를 보냈던 이야기를 읽으며 선덕여왕은 도대체 어떤 느낌의 여왕이었길래 진덕도 예쁘고 선덕도 예뻤다는데, 선덕만 놀려먹었을까...등등. (나중에 이런 의문은 당대의 동아시아 권력구도상 당의 기선제압용 술수였다는 자료들을 끌어내게 됐지요 ^^ )
역사가 아이들에게 어려울까요? 익숙하지 않은 옛날 말, 옛날 이름들이 나와서 그럴지도...
역사는 일종의 옛 이야기(histoire)지요 ^^ 경험해보지 않은 옛이야기를 후대에 옮겨 전하는 거라면 좀 더 감칠맛나게, 감탄사가 난무하는 단문이 아닌 이야기체로 풀었을 때, 더 잘 전달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왕과 권력의 연대기로, 어느 왕 시기에 어떤 일이 있어났고, 무슨무슨 이름을 단 시대에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가를 잘 파악하는 것도 역사책을 읽고 역사를 아는 재미이기도 하지만, 그걸 교과서적으로 꿰는 것이 역사에 대해 사고하는 왕도라고 생각하면, 이거 다음 저거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겐 버거울 수도 있겠지요.
박물관은 많은 이야깃거리를 줘서 주말에 아이들이랑 산책삼아 자주 가요.
큰아이가 이제 제법 똘똘한 질문도 하더군요. 이 시대에 이런 토기들만 사용했어? 그 때 사람 모두 다 ?
최근 많은 역사 학회들에서 제기되는 내용의 요지가 그 질문에 담겨있어요 ^^ 박물관에 전시될 유물은 누가 선택한 건가... 박물관에 전시되는 바로 그 순간 또다른 역사는 사장되고 있는 것이라고... 에고 너무 멀리가고 있나요 ?
역사에 접근하는 여러 가지 방식 중에, 권력의 자취를 좇지 않고도 시대상을 알고 생각해볼 수 있는 길이 있어요. 예를 들어 저희 아이 1학년 때 봤던 걸로 기억하는데,

[괴짜요리사 알렉시스]란 책을 보면 한 인물의 일대기를 통해서 당시 모습이 보여요. 당시 서구유럽에서 요리사란 직업의 의미, 戰時의 모습, 19세기(?기억이 가물가물) 부르조아 식당 주방의 모습, 요리를 통한 과학적 사고의 진화 등등. 그런 책들을 읽으며 계몽사상에 대해 궁금해지고 세계 1,2,차대전이 뭐길래란 생각도 튀어나오고, 현재와 다른 직업세계에 대한 개념 등등 생각의 갈래가 여러 곳으로 튀지요 ^^
제목이 확실치 않지만 (제가 지금 점심시간에 급하게 쓰는 거라서요... 양해해주셔요 ^^) [음악사에 뭍힌 여성음악가들] 이런 책을 보면 뛰어난 음악가가 클라라 슈만 말고도 많았다는 거 외에도 그 시대 여성과 남성상에 대한 아이디어, 그 시대에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가 형성되기도 하구요.
[네안데르탈 아이들] 같은 책들은 역사와 상상의 경계가 막 허물어지지만, 결국 역사적 상상력이 얼마나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적 진리를 구성하고 있는건가 생각해보게 되요.

역사스페셜이란 시리즈 중 [선덕여왕과 지귀]도 1-2학년 때 보면서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선덕여왕이 그렇게 예뻤을까? 왜 모든 여왕들은 클레오파트라나 진덕여왕이나 중국의 황후들이나 다 그렇게 예뻤나 ? 무사이고 권력자인 남자만 왕을 하다가 여인이 왕을 하다니 힘을 가진 여자가 이뻐보였을 수도 있겠다, 게다가 신라는 금이 많던 나라, 서민들은 먹지도 못해 구질구질한데, 힘을 가진 여자가 금관 금귀걸이하고 따뜻하게 대해주니 안예쁠 수가 있겄나...
요런 아기자기한 책들이 있어서 아이는 역사를 궁금해합니다. 무성히 곁가지가 쳐지구요.
에구 말이 길어집니다. 점심시간도 땡입니다 ^^
저희 아이 읽었던 재미난 역사책 일일히 다 소개하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아, 전에 라이노 님이 소개해주신 [아버지와 고추장 담그기](제목이 맞나요? ㅎㅎ )도 참 재미있게 읽었더랬네요. 저희집도 이제 여러 역사책의 맛을 알았으니, 자소월님이 소개해주신 역사만화 전집같은 걸 통해 통으로 시점을 정리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아이들 읽은 책도 잘 정리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글 쓰는 건 좀 삼가자 생각하고 있는데,
눈반짝님과 자소월님의 역사 이야기에 꽂혀서 이리 떠들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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