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의 오늘이었습니다. (25일) 학생들과 1주일동안 봉사활동을 갔던 한 젊은이가 물에빠진 학생을 구하고 다른 학생을 구하러 다시 들어갔다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고야 말았습니다. 아이 아빠의 직장 동료이기도 하고 후배인 그는 언제나 맑은 웃음을 간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의 무엇을 보아도 불평하거나 단점을 이야기할 줄 모르는 깨끗하고 고아한 성품의 소유자였습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알고 있던 두 부부인 우리 넷은 잘 통했고 가까이 살면서 저녁식사도 자주 함께했습니다 그곳으로 떠나기 전날도 같이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약속했는데... 그 봉사활동이 끝나는 토요일 저녁 두 집 식구들이 피자헛에 가자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잘있으라는 인사말도 없이 그렇게 가버렸습니다. 결혼 9개월만의 일이었습니다. 어느덧 일년전의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데, 가족들 가슴의 아픔은 여전한데 그가 누워있는 곳에는 파란 잔디가 천연덕스레 돋아있었습니다. 어제 통화를 하던 어머님은 그러셨습니다. "1년 전 오늘엔 우리 OO이도 있었는데..."그리고는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으셨습니다. 왜 아무 말이 없는지, 수화기를 움켜쥔 손으로 무얼하고 계시는지 알면서도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 그 파란잔디 위에는 '사랑하는 아들에게'라고 적힌 하얗고 도톰한 봉투가 하얀 국화꽃다발과 함께 놓여있었습니다. 얼마나 이름이 부르고 싶으실까, 얼마나 얘기가 나누고 싶으실까... 갈수록 사무친다시던 말씀이 떠올라 몇번이나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져가는 오늘이 서글퍼졌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이, 특별히 그 가족이 남아 있는 사는 날들의 그리움과 아픔을 극복하며 살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인가봅니다. 한번만 극복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을 극복하며 그 극복의 고리로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니까요. 날더러 언니라고 부르는 그 친구가 보고싶습니다. 너무나도 어린 스물 여섯의 나이에 감당키 힘든 아픔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그 친구..어느새 다른이들 앞에서 슬픔을 감추는 법을 터득해버린 그녀... 옆에 있으면 안아 줄텐테... 손이라도 꼬옥 잡아줄텐데.... 비행기를 타고 10시간이 넘게 가야 하는곳에 가 있는 그 친구.. 오늘 통화를 하면서도 한마디 위로의 말도 꺼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아무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1년이 지난 오늘 그 앞에 또 다시 숙연해집니다 그가 땅에서 이루지 못한 일들, 그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살아있음이 부끄럽지 않도록...


쑥쑥몰
체험이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