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을 한참 걸어 마당이 넓은 집에 살았더랬습니다.
김광균 시인 말마따다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구겨진 길이었죠.
우리 집은 입구에서는 약간 멀고 그렇다고 길 끝까지는 가지 않아도 되는 위치였어요.
그 골목이 주는 의미는 이렇습니다: 골목이 깊으면 가난도 깊어라.
우선 시장, 버스 정류장 등 인근 편린 시설에서 멀다는 뜻입니다.
요즘도 역세권이니 해서 전철서 가까우면 집값이 비싸잖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집은 가난이 염치 없이 드러나던 골목 중간,
나름 그리 비참하지도 그렇다고 잴 것도 없는 삶을 뒤집어 쓴 곳이었죠.
딱 2년 살았답니다. 그런데도 저의 유년의 기억은 다 그 집 마당에 있습니다.
흐드러지게 피던 배꽃, 앉은뱅이 과꽃, 맨드라미, 사루비아....
제가 아는 꽃이름은 거기서 배웠습니다.
그 집을 뒤로 저는 마당을 못 가져봤습니다.
집에서 세를 받아야한다고 마당 없이 휑하게 건물을 지어 이사 다닌 탓입니다.
이사를 다닐 때 마다 역에서 조금씩 가까워졌지요.
그건 형편이 점점 나아진 뜻이며 추억은 점점 황폐해진 의미입니다.
가끔 골목 입구에 있던 후추공장 냄새를 기억합니다.
후추를 전문적으로 빻는 곳은 냄새가 지독합니다.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발검을을 재게 하고 숨을 끊었어요.
지금도 수영은 못 해도 숨은 잘 참으니 그 때 훈련한 덕입니다.
그 긴 골목을 바퀴달린 큰 가방을 달달달달 굴리며 제 아빠가 오십니다.
아빠는 후추냄새를 어찌 피하셨을까?
우리 아버지는 원조 기러기 아빠입니다.
지방에서 일하시면서 한달에 한 두번 집에 오셨어요.
가방은 제게 시집도 꺼내주고, 일제 녹음기도 내며 영어회화 테이프도 싣고옵니다.
당시 최신 영어회화책 English 900. 녹음기는 그림만큼 구식은 아닌데 사진이 없네요.
제가 초등3-5학년이었으니 1970년대였지요.
오빠를 위해 사오셨대도 중학생이 영어회화를 알게 뭡니까?
오빠더러 헤드폰 씌워주고 영어 들으라니 죽을 지경인가보대요.


그 덕은 제가 봤습니다.
테이프 60개를 수 년간 보관했다가 제가 대학생 되어서 다 들었어요.
스크립트 없이 듣고 - 보고 듣고 - 외우고 - 말하기를 반복했어요.
혼자 힘으로 안 되어 나중에 오빠 친구들이랑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1년에 걸쳐 했습니다.
그리고 독해책 몇 권의 지문을 몽땅 외웠어요.
이듬 해 100명 응시자 가운데 5명 뽑는 학생 통역으로 뽑혔습니다.
살다보니 이런 얘기할 기회도 있군요.
듣기 붐과 리더스 읽기에 열심인 쑥쑥맘들께 먼저 그 길을 간 제가 수다 겸 떠들었습니다.
아이들 많이 듣고 읽게 하세요. 더 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아참, 메리 크리스마스!!


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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