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학년이 된 큰 아이가 첫날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서, 입학식을 앞두고 전단지를 돌리느라 장사진이 벌어진 정문과 후문을 차례로 순례하며 솔찮게 학용품들을 두둑히 챙겨왔습니다. 1년은 쓰고도 남을 알림장, 영어공책, 오답노트, 보조가방, 연필에...모 태권도장 관장님의 메모가 붙여진 냉이나물 봉지까지. 어젯밤새 흙뭍은 그 많은 냉이를 봉지마다 옮겨 담으며 그분은 평생 잊지 못할 봄을 맞이하셨겠지요...메모에 쓰인대로 학부모님께 봄내음을 전해주시려는 천하무적 관장님의 봄나물처럼 여리고, 따듯하고, 소박하고, 깊은 뜻이 참 재미있게 여겨졌습니다. 잇달아 1학년 입학식에 참가하는 엄마들의 약간은 긴장되고 비장한 표정을 보며, 아이가 초등1학년 시기를 잘 보내고 여러면에서 순조롭게 잘 커가고 있어 감사했습니다.
돌아보면 처음 입학 후 적응하는 몇달은 참 혼란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때로 엄마의 조급함이 앞서 불안해하기도 하고, 아이의 수준을 몰라 엄마 혼자 계획 짜고 틀어지기 일쑤요, 아이에게 기대를 해야할지, 실망을 하고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지, 얼마만큼 눈과 귀를 열어야 할지, 뒤쳐지지 않도록 늘 앞서가는 아이들의 수준을 파악해야 하는 건지, 내 아이만 바라봐 줘야 하는지, 얼마큼 당겨주어야 할지, 얼마만큼 놓아 주어야 할지...여러가지를 조율하는 데 한학기가 꼬박 걸렸습니다. 확실히 2학기가 되면서는 다시 배짱과 소신으로 무장하면서 다시 안정적으로 엄마표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취할 것을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면서 내실있게 아이의 수준 대로 차근차근 천천히 끌어당겨 주는 것이죠.
초등1학년동안 저와 아이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4살때부터 시작한 엄마표를 어떻게 학습적으로 잘 연계를 하여 안착시키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엄마표 처음 시작은 우스웠지요. 4살때만해도 너무 일찍 보낼 필요는 없으니 어느 정도 하다 영유를 보내지 뭐 하면서 시작했고, 그 다음엔 파닉스 뗄 때 까지만 집에서 더 봐주지 뭐~ 했다가, 그래도 엄마표로 시작했는데 읽는 거나 좀 보고, 어느정도 읽으면 그때 보내지 뭐~ 하고, 그 다음엔 챕터북 좀 더 읽히고 보내지 뭐 하면서 한해 한해 미루듯이 이어가 초등 2학년이 되었고 지금은 영어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해 결국 학원에 다닐 겨를도 없습니다. 지금은 아이 스스로 너무 재미있게 하고 있어, 하루에 세권씩 챕터북을 보고 있는 아이를 수학 연산 문제 규칙적으로 풀리자고 책상 머리로 끌고 오기가 미안할 정도지요.
저희 아이는 참 모든 것이 늦어서 유치원 때는 어디가서 엄마표 영어를 하고 있다고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아웃풋이 아주 미비했지요. 속은 불타고 있는데 언제까지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엄마표를 진행해야 하나 생각한 적도 있고, 속으로 '야~ 너도 사람이면 받아 먹지만 말고 좀 내뱉어 봐라~ '하고 약이 오를 때도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점차 수준이 말할 수 없이 벌어지고 있는 영유의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아이 발목 잡는다는 생각에 나의 고집과 욕심에 대해 심각한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뭐 나아지는 것도 없으면서, 세련되지 못하고 구시대적인 엄마표를 진행하는 저 자신이 너무 시대와 동떨어지나 하는 생각과 함께 도데체 뭐가 씌워서 언제부터 엄마표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외통수로 가는가 싶었습니다. 매달 감당할 수 없이 불어나는 영어책을 보면 하루는 뿌듯했다가 또 하루는 그것 자체가 탐욕스럽게 느껴져 괴로왔지요.
그렇게 1차 엄마표의 고비가 7세에서 초등 1학년 초인 것 같습니다. 7세가 영유의 꽃이라 할 만큼 영유의 아이들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여, 당장 미국에 데려다 놓아도 본토의 아이들보다 reading, writing이 탁월하니, 천천히 가는 엄마표에 비교해 무얼하겠습니까. 정말이지 날로 영유의 수준이 높아져가는 이 세대에 시대착오적인 엄마의 발상은 위태하여 여겨졌습니다. 그렇게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영유에 다니던 아이들은 거의 주5일 학원에 가더군요. 그리고 후발주자로 초1때 영어를 막 시작하는 무리들이 생기며 지금 아니면 또 시기를 놓친다는 압박에 흔들립니다. 아예 전략적으로 영유다닌 아이들을 1년내에 따라잡을 만큼 실력을 키우는 학원들도 있었지요. 조금 더 머리가 커서 시작하면 더욱 빨리 성장한다는 논리를 앞세워서 말입니다. 이런 혼돈의 시기에도 불구하고 큰 애 키워본 느긋한 둘째들의 엄마들은 '3학년때 해도 늦지 않아~'를 외치며 그나마 조금의 위로가 되지요. 하지만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믿고 싶은 엄마표의 기적은 쉽게 나타나지 않아 답답한 시기가 오래갔습니다.
저도 저란 사람의 교육론을 참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무엇에 홀려서 엄마표를 진행하고 있는지, 무슨 소신이 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전공자도 아니요, 조기영어교육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한 것도 아니요, 시부모님이 영유나 영어 학원을 못 보내게 하는 것도 아니요, 남편이 그런것도 아닌데, 왜 내가 마치 엄마표 아니면 안되는 사람처럼 이러고 있는지 가끔 자아분열을 일으킬 때가 있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면 다시 또 엄마표로 가고 있지요. 그 전에도 한번 글을 쓴 적이 있지만, 엄마표라는 유전자가 저도 모르게 내장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었지요. 혹은 쑥에서 너무 많은 세뇌를 당했다든지요..
1차 고비도 처음 시작과 마찬가지로 딱히 어떤 결정이나 각오를 한 것도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던 차, 아이에게서 드디어 발전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단계 단계를 겅중 겅중 뛰어 어느새인가 제가 바랬던 곳까지 와 있었습니다. 초1들어가면서 이제 조금 읽으려나 싶더니 바로 문장, 문단이 너무 쉽게 눈에 들어오는가 봅니다. 엄마표 처음 시작할 때 질러놓고 도대체 언제 읽을겨~ 하고 오매불망 기다리던 리딩레벨 1단계의 책은 읽을 겨를도 없이 바로 챕터북 리딩레벨 2.0, 3.0, 4.0까지 집중듣기를 시작하고, 재미를 붙여 읽기를 시작했지요. 그렇게 고민되던 쓰기도 파닉스 떼면서 바로 몇 문단씩 글이 써지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물론 단어를 외워 본 적이 없으니 스펠링은 엉망이지만, 나름 파닉스의 원리대로 단어의 형태를 만들고, 복문 구조로 서론, 본론, 결론을 갖춘 글을 쓰는 것을 보고 정말 눈물이 났습니다. 엄마표가 영 허당은 아니었구나. 그동안 그것이 미친짓은 아니었던 게야~~ 그것이 남의 자식 얘기만은 아니었어~~하는 감격! 그토록 쑥쑥에서 세뇌당하고, 또 무한정 부러워 했던 쑥쑥 아이들의 실력이 현실로 이루어 지면서, 정말이지 어디에 나가 간증이라도 해야 하나 싶었지요. 한없이 갑갑했던 긴 터널을 지나 처음 햇살을 보는 듯 했답니다.
답답한 시기가 무한정 계속 될 줄 알았는데~ 이런 발전이 불과 몇달 사이에 빠르게 일어나 정말 너무도 바쁘면서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쑥에 감사한 마음이 있으면서도 글을 남길 시간도 없었지요. 도서관에 가서 챕터북을 12권씩 빌려오고도 4일만에 또 가서 빌리고, 인터넷으로 챕터북 검색해 공구일정 맞추어 사고, 논픽션북 함께 읽으며 같이 공부하며 이제야 겨유 엄마표의 수치를 면했구나 싶습니다. 발빠르게 대처 하지 않고 궁색하게 나마 엄마표를 유지하고 기다렸으니 결과물도 있고 그런거겠죠?
한참 불붙은 큰 아이 옆에서 7살된 둘째가 탱자탱자 놀고 있습니다만, 아직 저 아이도 때가 아니려니 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적 알파벳 대소문자 구별도 못하지만, 엄마가 엄마표에 씌어 있는 한 그 녀석도 언젠가는 되겠지요. 큰 아이 보면서 이제야 조금 마음 내려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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