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0일 토요일.
하루종일 구름의 빛깔이 짙었다. 바람도 불고 비도 왔지만 이젠 봄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1교시 수업이 끝날때 즈음이다. "선생님, 누가 제 독서통장 찢어놨어요!" 다급하게 부르는 주연이의 목소리에 바라보니 독서통장 여기저기가 찢겨져 있다. 일부러 그런듯이 사진이 붙여진 부분에 더욱 심하게 찢어져 있다. 벌컥 화가 솟는다. "아니, 이게 왜 이래. 누가 이런 짓을 했어?" "선생님, 그리고 이런 쪽지도 들어있었어요." <니 물건은 내가 접수한다ㅋㅋㅋ>
어떤 녀석이 못된 장난을 쳤구나 생각하며 일단 알았다하고 찢겨진 독서통장과 쪽지를 들고 내 자리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여기저기서 여자애들이 소리는 지른다. "어 그 쪽지, 나도 받았는데!" 새로산 싸인펜, 연습장, mp4플레이어, 공책, 교과서……. 없어진 물건이 한 두개가 아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책상 서랍과 사물함 속에는 모두 똑같은 쪽지가 쓰여져 있었다. 아이들이 흥분하며 "누구야"를 외친다.
수첩을 뜯어 쓴 쪽지, 그 수첩의 주인인 준호가 의심을 받는다. 준호는 아니라며 소리를 지르고 누구는 옆에서 의심하지 말라고 또 소리지른다. 쪽지를 받은 여자아이들은 소름끼친다며 또 난리. '아, 이게 무슨일이지,,,,,,' 감당하기 어려운 일 앞에서 일단 눈물부터 쏟고 보는 한심한 요놈의 성격. 아이들앞이라 꿀꺽꿀꺽 눈물을 참는다. 마음이 너무 힘겹다.
"선생님, 애들한테 글씨 다 써보라 그래요" "어제 누가 제일 늦게까지 있었어? (누구누구) 아냐?" "아, 왜 교실에는 CCTV가 없는 거야" 아이들은 범인을 잡아야 한다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이런일이 내 교실에서 벌어지다니, 마음이 괴롭다.
나는 일단 "조용히 하고 다 자리에 앉아!" 하고 소리를 빽 지른다. 그래도 아이들의 흥분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내 마음도 진정이 안되는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차분해지려고 애쓰며 지난 주 '으뜸헤엄이' 공부가서 강의를 들은 정기진 선생님 말씀을 되새긴다. 정말 다행이다. 딱 일주일 전, 으뜸헤엄이 모임에서 교실에서 도난사건이 생겼을 때 교사가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던 것이다. "얘들아, 지금 범인이 누구냐가 중요한게 아니야. 우리반에 이런 일이 생겼고, 그래서 우리가 지금 서로를 의심하고 있고, 그래서 교실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졌다는 것이 더 중요해. 이게 뭐야,,, 우리 반 친구가 아닐 수도 있는데, 서로 범인이냐고 따지고, 의심받은 사람은 기분 나쁘고. 또 서로 짜증내고. 선생님 지금 엄청 속상해. 그러니까 이제 범인 이야기는 하지 마." 다급한 마음에 일단 범인이라는 말은 꺼내지 말라며 아이들 입을 막았다.
2교시가 체육 수업이라 일단 아이들을 내보내고 물건을 잃어버린 친구들만 남겼다. "얘들아, 속상하지? ,선생님도 너무 놀랍고 속상해. 그런데 잘 들어요. 선생님은 범인 찾지 않을거야. 만약 범인이 누군지 알게 되면 어떨까? 우리는 아마 1년 내내 그 친구 미워할거야. 그렇겠지? 그것도 너무 속상한 일이잖아. 대신에 이런일이 생기니까 서로 너무 속상하고 슬프다는 걸 우리가 느끼고 다시는 이런일이 생기지않게 서로 조심하고, 바라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아. 이게 선생님 생각이야. 이해할 수 있겠니?" 이들이 끄덕끄덕 한다. "그래서 너희들한테 미안해. 범인을 잡아서 물건을 다시 돌려주라고 못하니까. 그건 선생님이 정말 미안해." 그리곤 아이들에게 쪽지를 나눠주고 없어진 물건과 그 물건이 없어져서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적으라고 했다. 애써 삼키려고 했지만 이미 감정이 심하게 동요된터라 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렇했다. 아이들이 눈치 못채게 손등으로 훔쳐보지만 이미 다 들킨 것 같다.
쪽지를 써서 낸 아이들까지 다 체육관으로 보내고 혼자 앉아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다. 내 마음은 어떤지, 왜 범인은 안 잡는지, 아이들에게 충분히 설명을 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얘들아, 정말 슬픈일이 우리 교실에서 일어났네.
선생님 마음이 너무 아프다.
서로가 친해지고 믿음을 쌓아가야할 때인데,
이렇게 서로를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일이 생기다니 말야.
그런데, 얘들아-
선생님은 범인을 찾지 않을거야.
만약 우리 반 친구들 중에 한 명이 그랬고 그 범인을 찾았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우리는 아마 그 친구들 1년 내내 미워할거야.
도둑놈이라고 부르겠지.
그리고 그 소문은 학교에, 동네에 쫙 퍼질거고.
그래서 그 친구가 중학교가고, 고등학교에 가도 “재는 예전에 도둑질 했대” 하면서 손가락질 받겠지.
그 친구가 뉘우치고 다시는 그러지 않더라도
한 번 찍힌 ‘낙인’은 그렇게 쉽게 지워지지 않겠지.
그래서야, 그래서 범인을 찾지 않을거야.
어쩌면 장난을 심하게 친 걸 수도 있고, 실수를 한 걸거라고 선생님은 생각해.
선생님도 어렸을 적에 엄마 지갑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 오락실에 간 적이 있어.
그러면 선생님도 도둑놈인가?
아직 어리니까 그럴 수 있어.
어려서 판단을 잘 못해서 할 수 있는 실수라고 선생님은 생각해.
그래서, 범인을 찾지 않을래. 선생님은 범인을 잡아서 벌을 주는 형사가 아니니까-
옳지 않은 행동을 옳게 고쳐주는 선생님이니까.
그러니까 우리, 이제 범인 이야기는 하지 말자.
대신 그 친구가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기를 다같이 바라자.
우리가 같이 서로 위로해주고 용서해주자.
혹시 우리반에 ‘그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슬프고 아픈 친구들과 선생님을 마음을 보고 반성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몰래 가져갔던 것 처럼 몰래 다시 돌려주면 좋겠어. 미안하다는 쪽지와 함께. 부탁할게.
우리 교실에서 이런 일이 생겨서 선생님이 많이 미안해.
오늘 선생님이 많이 안 웃어줘도 이해해줘.
한참을 울며,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썼다. 왜 이런일이 생겼는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전교회장에 당선된 소영이 어머니께서 피자를 사가지고 오셨다. 사실 학부모님이 토요일에 피자 쏘시는 것을 별로 반기지 않아 어제 소영이 어머님이 피자를 사주시겠다 했을때는 미리 말씀을 못 드린 것을 후회하고 있었는데, 오늘 피자가 도착하고 나니 이것 역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범인색출에 열중하던 아이들의 관심을 잠시라도 다른데로 돌릴 수 있겠구나 싶었다.
편지를 거의 다 써갈 무렵 아이들이 체육수업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세상 어디에나 태양이 비추듯이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내가 가르쳐준 노래를 부르며 들어온다. 물건이 없어진 여자애들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주 해맑게. 한 명, 두 명. 교실에 있는 아이들이 부르고 있으니 뒤에 들어오는 아이들이 자연스레 같이 부른다. "선생님, '바로 그 한사람이' 틀어주세요!" 다들 모여 내가 입을 열때까지 계속 계속 부른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요녀석들, 선생님이 훌쩍거리는 걸 봐서 그러는구나- 그 마음 씀씀이들이 고맙다. 왈칵 감동에 겨워 또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얘들아, 선생님이 편지 썼어요. 그리고 물건 없어진 친구들도 지금 마음이 어떤지 쪽지를 썼어요. 저기 붙여두었으니까 오늘 집에 가지 전까지 꼭 읽어보고. 혹시 우리반에 물건을 가져간 친구가 있다면 선생님이랑 친구들이 이만큼 속상하고 마음 아파하고 있으니까 꼭 반성하고 미안해했으면 좋겠어. 물건을 다시 돌려주면 더욱 좋겠구요."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가 편지를 읽는다. 이제 더 이상 범인이 누구냐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자, 소영이 어머님께서 피자를 선물해주셨어요. 선생님이 모둠별로 나눠줄게요." 아이들은 얏호, 환호성을 지르는데, 내 목소리는 여전히 촥 가라 앉아 있다. 그러자 지혜가 와서 "아이 참, 선생님. 이게 얼마나 기쁜일인데! 그렇게 슬픈 목소리로 말하시면 어떡해요-" 하고 어르듯이 말한다. 순간 아이들에게 미안해졌다. 아이들은 선생님 기분 풀어준다고 애쓰고 있는데, 나만 계속 근심,걱정,시무룩 표정과 목소리로 일관하고 있던 거다. 아,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표정과 목소리에 웃음을 챙겨 넣으며 말했다. "얘들아, 오늘 슬픈일 하나, 기쁜일 하나니까 똑같은 거지? 우리 이거 먹고 땡치자~!" "네-!" 아이들의 목소리도 다시 살아났다. 저 쪽에서 산이가 말한다. "아,,,, 이제 기분이 보통이 됐어요." 아이들이 참 이쁘고 대견스럽다. <바로 그 한사람이> 노래를 틀어주었다. 플레이어에 있는 노래가 그 한 곡 밖에 없어 계속 반복되는데도 지겨운 기색도 없이 다들 어찌나 신나게 따라 부르는지-
먹고 노래하는 걸로 3교시를 마치고 주말 인사를 나누었다. 요 이쁜 것들을 한 명 한 명 꼬옥꼬옥 안아주었다. "사랑합니다-행복합니다" 진심을 다해 속삭인다. 오늘은 왠일인지 다들 얌전히 안긴다. 이제 좀 익숙해져 그런건가, 아님 담임선생님 위로하려고 인심써주는 건가, 암튼 고맙다. 25명 인사를 다 나누고 내 책상으로 와 앉았는데 쪽지 몇장이 올려져 있다. 물건이 없어진 친구들이 남기고 간 쪽지였다. 선생님 힘내라고, 선생님 말을 들으니 범임을 잡지 않아도 괜찮다고, 우리 반에 이런일이 다시는 없을거라고-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리고 제일 속상했을 아이들이 지들 선생님이 우는 걸 보고 이렇게 마음을 쓴다.
아, 정말! 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 그동안 잘 찾지도 않던 예수님께, 자주 못 보는 우리 엄마한테, 지난 주 함께 했던 으뜸헤엄이 모임에게, 지금 이 순간이 이루어지게 된 모든 우연 혹은 필연에게 "이 아이들을 만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열번도 넘게 되내이며 엉엉 울었다.
아이들이게 내가 더 많이 배우고 사랑을 느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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