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살 때의 이야기다.
어느 날 큰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의 학부모회의에서 아이들의 올바른 교육을 위한 방향 등에 관해서 이런 저런 의견들이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오가고 있었을때 나에게 발언기회가 있길래, 아이들이 6세가 되었으니 이제부터 알파벳을 비롯하여 글자를 가르치는 것이 어떨까 하고 의사타진을 해 보았다. 내 딴에는 좋은 의견을 낸답시고 한 말이었는데 교사와 전 학부모들이 반대를 하였고 그 반대의 이유로는 아이들이 한창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뛰어놀 나이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글자를 가르침으로써 창의적인 상상력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며, 또한 학교에 가면 배울 것들을 미리 배워서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너무도 수긍이 가는 그들의 반대이유들이 그때까지 한국적 사고방식에 젖어있던 나를 비롯한 전반적 한국의 상황과 큰 비교가 되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위의 일이 있기 전 큰아이가 4살이었을 때 잠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때 우연히 만난, 역시 4살짜리 아이를 둔 한 엄마가 자신의 아이가 수학과외를 하는데 ‘면, 모서리’ 등을 벌써 알고 있다며 자랑스레 말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나 당시 그것이 그 한 엄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미 만연된 비뚤어진 조기교육열풍이라는 것을 알고 문제의식을 느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큰아이가 7세가 되었을때 우리 가족이 한국으로 영구귀국함에 따라 아이가 한국의 유치원에 다니게 되었으나 독일의 재밌게 뛰어놀던 유치원에 비해 공부를 많이 하는 한국의 유치원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고, 게다가 독일의 유치원에서는 즐겁게 노는 와중에도 아이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워주거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재미난 프로그램들로 잘 짜여져 있어서 아이들이 다함께 무척 즐거워 하였던 기억이 나는지 독일에서의 생활을 많이 그리워 하여 나를 또한 안타깝게 만들곤 했다.
그렇게 아이가 느끼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부담과 부적응의 원인을 알아 해결해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엄마인 나는 꼼꼼히 한국의 교육방법을 독일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이가 다니는 한국의 유치원과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에서는 아이가 주도적이고 독립적으로 선행하여 대상을 탐험하거나 몰두하게 함으로써 호기심과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자유로운 놀이 프로그램 대신에, 준비되지 않은 미성숙한 아이의 두뇌에 수많은 정보를 일방적으로 주입, 암기시키거나 조직에 순응하는 획일적 인간으로 만드는 교육이 대부분이어서 나로 하여금 외국의 교육선진국에서 아이를 공부시키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었다.
하나의 사안에 대해 아이가 갖고 있는 정보와 견해를 비판적, 논리적, 개성적으로 서술하게 함으로써 깊이 있고 성숙한 사고력을 함양하는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시험방식과 또한 그 다양한 관점의 답안에 대한 유동적 채점방식으로 '열려있는' 구미선진학교의 교육방식에 비해, 학생 자신의 내면적 문제해결력 향상의 기회를 애초에 차단하는, 교사와 교과서에 의한 기성적, 폐쇄적 사지선다형문제 일색인 한국학교의 시험문제를 볼 때에는 심지어 한국의 교육이 아이들을 오히려 바보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논리력이 급속도로 개발되는 연령대에 있는 아이들에게 배움에 대한 무력감, 집단의 기준에 일치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그들의 창조적인 잠재력의 싹을 없애버리는것이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들만큼 한국교육계의 현실이 나에겐 너무나 안타깝게 비춰졌다.
이러한 고질적이고 전근대적인 교육을 바꾸기 위한 대안으로는 대학의 시스템을 고치는 방법밖에 다른 수가 없다고 본다. 선진국의 보통대학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업의 질과 지적 역량, 경쟁력으로 세계적 공인기관의 저평가를 받고 있는, 세칭 "우물안 일류대학"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는 한,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소모적인 훈련'은 없어지기 힘들 것이다.
서서히 대학에 대한 인식이 전공분야쪽으로 많이 바뀌어 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일류대학을 나와야지만 출세를 할 수 있다는 일류를 향한 전국민적 무한경쟁체제, 그리고 일류라는 명성에 비견할 대단한 실적을 그리 많이 보여주지 못했던 무능한 일류패거리문화에 의한 독선적이고 배타적 아성은, 수긍할 수 없는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사회에 그 위세를 과시하고 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지식은 멈춤없이 끊임없이 발전하는 것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교사와 교수에, 그리고 19세기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무사안일한 교육체제에 대항하여, 비판할 수 있는 사고력도 일탈할 여유도 가지지 못한, 기성의 지식을 주입하는 것에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은 한국의 초일류대학생의 경쟁력이,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기초교육으로 스스로 커나가는 법을 익힌 외국의 우수한 학생들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우물안 사회에서는 평생보장라이선스로서의 혜택을 누릴 수 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제 한국에서 대학이 더 이상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 직업을 가졌다가도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면 언제든지 적성에 맞는 전공을 찾아 대학에 쉽게 입학을 할 수 있도록 문호를 완전히 개방하여 누구나에게 수학할 기회를 주는 일류 이류 구분없는 평등한 대학으로 바뀌었으면 한다.
그렇게 하면 사교육 때문에 강남으로 몰려 집값이 치솟는 기형적인 현상도 사라질 것이요, 우리부모들이 허리가 휘도록 학원비를 대느라 인생을 즐기지도 못하는 불행한 사태가 생기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졸업은 그 자격을 갖춘 자만이 할 수 있게끔 제도적인 제재를 가하여 간판만으로써 능력을 보이는 게 아니라 진정 실력을 키운 후에 졸업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초중고 공교육이 바뀌는 것보다 먼저 대학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그러면 거기에 따른 초중고의 교육방법도 달라질 것이다.
진정한 초중고교육은 개성이 다른 개개인이 경쟁하지 않고 각자의 소중한 재능을 발전시키기 위한 배움에 흥미를 갖도록 돕는 것이어야 하고 대학은 그 재능분야에 대해 '알고 좋아하는 것'을 뛰어넘어 '기꺼이 즐겨하는‘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그 역할을 하여야 한다.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져 자기주도적 관심과 열정이 사라진 한국의 학생들이 배움의 즐거움을 깨쳐 '즐기는 자'로 바뀔 때 우리사회가 그리도 열망하는 "노벨상"이 우리의 것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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