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호국의 달이 돌아왔습니다. 아주 오래전 언니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반공영화를 보러 밤늦게 운동장에 따라갔던 기억이 나네요. 이승복 어린이에 대한 영화였지만, 이승복 어린이가 문제가 아니라 깜깜한 학교 운동장, 구령대 옆의 유관순의 동상이 열리고 정말 칼을 입에 물고 소복을 입은 유관순이 살아 나오나 하는 괴담에 오가는 길 몇번씩 비명을 질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여튼 6월이면 전후세대에게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려는 어른들의 모습이 더욱 생뚱맞게 느껴지던 그런 철없던 시절도 있었지요. 하지만, 저도 늙어가나요. 벌써 기성세대 인가요, 아니면 자식을 낳아 기르는 입장이 되어서 인가요...어떻게 시간은 점점 흐르는데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더욱 가슴이 아프게 느껴지기 시작하네요. 아이들에게 한국전쟁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국제 정세에 무지해서 당할 수 밖에 없었던 냉전시대의 운명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비단 나라의 운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아이들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일이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조급한 마음으로 전하기 시작했답니다. 저도 나이들면서 점점 애국자가 되려나 봅니다.
아이들에게 우리가 공부 잘하고 똑똑해야 앞으로도 국제 정세에서 밀려 전쟁까지 치르는 운명까지 당하지 않아도 된다고 역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지고 어른들의 잔소리가 될까봐 조심스럽답니다.
그런데 이번에 뉴베리 수상작가 Linda Sue Park의 책, Keeping Score를 6월에 때도 잘 맞추어 읽게 되었네요. 처음에는 야구에 대한 얘기인 줄 알고 읽었지요.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랍니다.
이 소설은 50년대 미국의 야구 경기 중계가 소재가 되고 있지만, 한국 전쟁과 매기의 성장을 다룬 매우 무게가 있는 소설입니다. 6월이면 우리나라에서는 전후세대들에게 6.25전쟁을 상기시키지만, 내 일처럼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지요. 이 책의 작가 Linda Sue Park은 미국 Chicago에서 나고 자란 한국계 미국인이기 때문에, 어쩌면 한국전쟁에 대해 우리보다 더 남의 일처럼 여길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고맙게도 매우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전쟁을 화두에 올려놓았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도 매우 완성도 높은 문학적인 소설을 통해서 말이지요.
표지에 보여지는 연필과 소방호스관, 애완견, 야구공은 이 소설의 핵심요소를 상징하는 것들입니다.사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제 아이는 강아지 소설인 줄 알고 내용을 매우 궁금해했지요. 이책의 배경은 1951에서 55년까지입니다. 주인공 9살 매기는 소방관 아버지 덕에, 소방서를 매일 드나들며 소방관들과 가족같이 지내는 사이지요. 매기가 소방관에 드나드는 이유는 함께 야구경기 중계를 듣거나 그곳에서 기르는 애완견 Charkey를 산책시키기 위해서지요. 어느날 다저스팀의 열성팬들만 모인 이곳에 새로운 소방관 Jim이 들어오는데, 바로 다저스의 맞수 자이언트팬이랍니다. 매기는 Jim과 친해지면서 야구중계를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기 내용과 점수를 간편하고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표에 기록하는 법을 배웁니다. 단지 중계방송을 듣는 것이 아니라 경기내용을 꼼꼼히 기록하며 매기는 한층 더 적극적인 다저스 지원군이 되지요.
그러던 어느날 Jim에게 군대 징집 영장이 나오게 되고, 한국 전쟁터로 배치받게 됩니다. 매기는 Jim에게 편지를 써서 미국에서 있는 자이언트 구단의 경기내용을 기록해 보내기 시작합니다. Jim도 답장을 보내 한국에서 구조대원으로 활동하는 동시에 구조대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매기 또래의 한국 아이 재형에게 영어와 야구를 가르치는 근황을 전해줍니다. 하지만 52년 6월 이후부터는 Jim에게서 더이상 연락이 없고, 매기는 크게 실망합니다. 하지만, 매기는 이 일을 계기로 한국 전쟁에 대한 관심으로 도서관에서 신문자료를 찾아보며 어렴풋이 전쟁상황을 이해해 갑니다.
그리고 얼마뒤 매기는 우연히 Jim이 미국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는 더이상 정상인의 모습이 아니었답니다. 전쟁휴유증으로 실어증과 공황장애를 겪게된 Jim에게 더이상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지고, 매기는 옛우정을 생각해 Jim을 온갖 방법을 동원해 돕고 싶어합니다. 야구경기 기록을 계속하는 것 뿐만아니라, 야구경기 티켓을 사서 초대하기도 하고, 그의 회복을 위해 9일동안 꼬박 교회에 나가 9개의 초를 켜며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쉽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매기도 점차 모든 노력에 대해 회의를 느낍니다. 그러던 차 드디어 Jim이 옛 상사였던 매기의 아빠를 찾아와 그에게 공황장애를 가져왔던 한국에서의 일에 대해 입을 열게 됩니다. 그것은 연합군에 의해 자행되었고, 바로 재형이를 죽음으로 몰고간 양민 학살 사건이었지요. Jim은 무고한 양민들과 재형의 죽음을 목도하며 큰 충격과 자책에 휩싸여 전쟁휴유증을 앓게 된 것이었답니다. 매기는 Jim을 위해 기도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에 실망했지만, 실은 재형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던 것을 깨닫게 되고, 기도하는 것이 희망을 실천하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됩니다. 그리고 Jim을 위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야구경기 기록을 계속해 나갑니다.
이 책을 읽으며 이 소설은 한국계 미국인이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제가 작가였다면, 한국 전쟁에 대해 좀 더 의도적으로 자세하게 썼다거나, 전쟁과 관련하여 좀 더 감동적인 사건을 가미해서 매기 일생 일대의 변화를 가져오거나, Jim이 전쟁 피해를 보는 일이 없게 하는 등 한국사람으로서의 좀 더 드라마틱한 감정적인 욕심이 개입되었을 것 같네요.
이 책이 매우 훌륭한 것은 매우 실감나는 야구 중계 상황과 더불어 무게감 있는 소재들을 부담과 거부감 없이 다루는 story telling 능력을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이 책에서는 야구를 매개로 한국전쟁을 이야기하고, 무거운 소재도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히도록 쓰여졌지요. 또한 성실하고 인간미 가득한 휴머니스트 인물들을 통해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감동을 불러 일으킨답니다. 작가가 왜 수많은 작품상들을 수상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지요. 인간미와 유머, 감동과 작가의 인생관까지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완전 강츄!!!
RL 2.0~3.0에 있는 딸냄에게는 어려운 책이라 제가 먼저 읽었지요. 아마 초등 5학년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주인공도 9살에서 13살까지의 이야기이니 그 정도의 나이에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못 읽히는 대신 엄마가 먼저 책을 다 읽고 표지 내지에 이렇게 써두었지요.
Mom read 7. June. 2010.
I've read this book beside you while you've been reading your story books and doing some homework.
I hope you like it oneday.
그리고 미국 사람과 결혼하여 시카고에 살고 있는 저의 친구와 한국 사람과 결혼하여 스위스에 살고 있는 영국 친구에게도 꼭 사서 보라고 추천했답니다. 잘 했지요? 국제 결혼하여 한국에 대해 알고 싶은 외국인들에게도, 영어를 배우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Linda Sue Park이 애국하시네요. 정말 고마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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