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 게시판에 초등 경시에 대해서 햇살맘님께서 물어오신 것에 대한 답변입니다. 내용이 초등 경시와 관련된 것이라서 답글로 달려다가 생각해보니 글이 많이 길어질 것 같기도 하고, 초등 게시판에 더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해서 이곳에 글을 쓰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사실 그제 저녁에 올리신 글을 보았습니다. 글을 보고나서 사실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유는 경시라는 것이 단순히 수학이라는 학문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좌절감, 자신감같은 심리적 측면도 고려해야하고 교육학적 측면도 고려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고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너무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경시에 대해서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을 만큼의 교육학적 지식과 이론이 과연 나에게 있는가? 심리적으로 어떤 경로로 어떤 스타일의 아이에게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을 미칠것인지와 관련된 이론과 사례들을 알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이런 대답을 해줄 수 있을 만큼의 수학적 지식이 과연 있는가?
이 세가지에 대해서 2일을 생각해 보았고, 제 자식들 경시대회에 참가하였을 당시의 상황들에 대한 회고같은 것도 해보았습니다. 제가 저에게 물어본 3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은 불행히도 "난 모르고 부족하다" 였습니다.
그래서 실력부족을 고백하고, 대답을 못하겠노라고 양해를 구할가도 생각해봤는데, 올리신 글의 마지막에 제 의견을 물으신다 하셔서 부족해도 올려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답변을 할 수 있을가~ 라고 생각해 보았는데요, 호,불호의 이분법적 논리로 쓸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이마다 다르다는 정답이 될 수 없는 정답으로 쓸 수도 없고... 고민끝에 초등 경시에 대한 분석과 장,단점에 대해서 제 생각을 써보구요, 결정은 아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부모님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지 않을가하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답변입니다.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초등 경시 대회들의 종류
2. 경시별 난이도 및 유형
3. 경시의 장점
4. 경시의 단점
5. 수학에 대한 개인적 철학
1. 초등 경시 대회들의 종류
초등 경시에서 가장 권위 있는 것은 초등생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 수학 올림피아드입니다. 흔히들 대교 올림피아드라고도 부릅니다. 이 시험은 학교장 추천을 받은자나 대학부설/교육청 영재원 재원 혹은 수료생, 과거 동대회 수상 경력이 있는 자인데 지원자격이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다른 경시 대회로 권위가 있는 것이 성대경시, KMC이고, KME,NMC,HME같이 문제집 출판사들에서 시행하는 시험들이 있습니다.
2. 경시별 난이도 및 유형 분석
가장 어려운 시험은 물론 한국 수학 올림피아드(한국 영재 올림피아드 중에서 수학 부분을 말합니다.) 입니다. 그 다음으로 어려운 것은 성대경시와 KMC, KME 류의 본선 시험이고 KME류의 예선시험은 교과 과정의 범위에서 출제량이 많고, 난이도도 쉬운 편입니다. 이 글에서는 응시 자격에 제한이 있는 초등 올림피아드는 제외하고, 3단계의 난이도로 분류하여 분석을 해보겠습니다.
KME 예선 수준의 문제는 교과 과정 20문제, 교과서 마지막 단원에 해당하는 문제들을 다루는 10문제등 총 30문제로 되어있습니다. 난이도는 교과 과정을 충실히 했다면 앞의 20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구요, 마지막 단원 관련 문제는 좀 까다롭습니다.
성대경시, KMC 예선, KME 본선등의 문제들은 분석이 좀 필요합니다. 관련 문제들은 크게 문자와 식, 규칙과 함수, 확률과 통계, 도형과 측정의 4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분야별로 간단히 설명을 해보자면 문자와 식이라는 것은 수의 계산과 관련해서 다루는 것이고, 규칙과 함수는 수열이나 도형의 규칙찾기, 확률과 통계는 경우의 수, 도형과 측정은 기하와 관련해서 다루는 것입니다.
문제 스타일중에 특이하면서도 자주 출제되는 것들을 좀 정리해보자면 수열, 포포즈, 마방진, 복면산, 숫자 세기, 도형의 겟수세기, 쌓기나무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문제들은 사실 초등 교과과정과는 큰 관계가 없는 영역입니다. 이런 부분들을 과연 할 필요가 있을가라는 것에 대해서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제 생각은 어느정도 연관성은 있지만, 중등 수학에서조차 다루지 않는 어려운 문제들이며, 오히려 고등수학과의 연계성이 더 높다는 점에서 아이의 능력에 따라서 신중히 접근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난이도는 KMC 본선이 아닐가 싶은데, 2시간동안 6문제를 푸는데도 시간안에 다 못풀정도로 깊은 사고력을 요하는 문제들입니다. 매해 문제 스타일이 다르기에 경향 분석이 상당히 까다롭고 문제마다 몇개의 개념들이 뒤섞여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본선에 올라가는 비율은 예선 응시자 대비 상위 15%인데요, 저도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대교 올림피아드에 출전하는 아이들과 겹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수학적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이 보는 시험입니다.
3. 경시의 장점
제가 생각하는 경시의 장점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 유형들을 접할 수 있기 때문에 길게 봐서 수능같은 시험에 대한 적응도를 어려서부터 기를 수 있습니다. 시중에 사고력 문제집에서는 이런 스타일들을 유형화하여 소개하고 있으며, 성대경시, KMC 기출같은 문제집은 하늘교육 홈페이지에서 구입 신청을 해야 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집들을 풀면 어느정도 도움도 되겠습니다만, 매년 새로운 유형도 나옵니다. 시험장에서 새로운 문제를 접했을때에 당황하는 정도를 줄일 수 있다는 측면은 있습니다만, 새로운 유형을 만드는데에 한계가 있다보니 해가 갈수록 문제를 비틀고 꼬아서 좀 지저분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두번째는 수학을 잘한다는 아이들 사이에서의 내 아이의 위치를 어느정도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이에게는 현재 위치와 목표를 향한 동기부여를 줄 수도 있다는 점이고, 부모에게는 내 아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갖추게 해준다는 점입니다.
4. 경시의 단점
제가 생각하는 경시의 단점은 크게 세가지입니다.
첫째는 아이에게 좌절감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 아이들도 그랬고, 어린 아이들은 점수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입니다. 평균이 30~40점대라고 설명을 해주어도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점수의 중요성이기 때문입니다. 적응되기 전까지는 좌절감을 느낄 수 있는 위험이 분명 존재합니다.
두번째는 사고력에 대한 오해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초등의 사고력, 중등의 사고력, 고등의 사고력은 일정부분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초등에서 뛰어난 직관과 사고력을 보여주는 아이가 아니고, 시중의 문제 풀이 유형에 익숙해짐으로서 좋은 성적을 거둔 아이들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초등 저학년부터 경시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거나 대학부설 영재원등을 다녔던 아이들이 초5부터 점점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하다가 중등부터는 아예 상위 15%에 이름도 못올리는 아이들도 봤습니다. 입상자 명단으로 확인을 해보시면 제 이야기가 팩트임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저도 이렇게 확인했습니다.
이런 아이들의 경우에 사고력에 대한 개념 변화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 아닐가 제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고력에 대한 진정한 의미는 사고력을 학원을 다닌다거나, 문제 유형에 익숙해지는 것은 아닌 듯 싶습니다.
세번째는 시간적 측면입니다. 경시 대회 성적이 좋다고 고등학교 수학도 잘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수학에 지나치게 시간을 많이 투자하거나, 심지어는 중등 KMO를 준비하기 위하여 초등부터 수학에 올인하는 현상도 생긴다는 것입니다. 해두면 도움이 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아이를 힘든 수학 공부로 내몰 수도 있으며, 인문학이나 경제학, 역사같은 학문에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됨으로서 균형잡힌 두뇌 개발에 저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수학만이 최고의 학문은 아닙니다. 분명 수학이 우수한 학문이지만, 세상의 어떤 학문도 우수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5. 수학에 대한 개인적 철학
수학은 언어입니다. 원래 모습은 언어였습니다. 디오판토스 이후 수학 기호를 사용하여 간단하게 표현하는 방식이 생겼고, 그 이후로 계속 간소화가 이루어지면서 현재 수학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논리학을 공부해보면 수학과 같은 엄밀성이 부여됨을 알 수 있고, 수학에서 쓰이는 논리적 기호들도 많이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수학의 원래 모습은 언어가 분명한데, 언어와 수학을 구분지어서 생각하는 이분법적 논리가 초등생들의 부모님들에게 많은 것 같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수학은 문제를 많이 풀고, 유형에 익숙해진다고 해서 잘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언어적 능력이나 문학 작품의 독서를 통한 상상력 개발이나 영감등도 수학을 잘하게 되는데에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이나 미술같은 예능도 본질은 수학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상당부분 많다고 생각합니다. 피타고라스의 음계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미술작품등이 한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수학에 대한 접근을 죽어라 문제 푸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100문제 푸는 것보다 개념의 원리를 깊고 제대로 정립하는데에 시간을 쏟으며 수학을 즐길 수 있도록, 고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가 싶습니다.
이 원리는 왜 그런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들을 이끌어내야 하는가 같은 고민의 과정에서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닐가 합니다. 고등 수학부터는 대학 입시와 관련이 되기 때문에 유형별 접근도 부분적으로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중등까지는 가급적 깊은 사고, 한 문제를 풀기위한 충분한 시간투자가 더 효과적이지 않을가 생각합니다.
또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수학을 배우는 이유를 깊게 고민해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수학이 위대한 학문인 이유는 학문적 효율성과 응용의 범위때문만은 아닙니다. 평범한 개인들에게도 수학이 주는 장점은 많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간결하면서도 알차게 표현할 수 있는 논리력, 세상을 살다가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에 해결하는 순서를 정리하고 방법을 찾아가는 인내심, 선택의 문제에 닥쳤을 때에 합리적으로 선택하게 해주는 지식같은 세상 살이의 꼭 필요한 부분들에 대해서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가 수학을 배우는 것이 아닐가 싶습니다.
경시라는 어려운 주제에 대해서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점이 못내 아쉽습니다만, 제 능력의 한계가 여기까지인지라 제 생각의 장단점 제시와 문제 분석같은 것 외에는 그 어떤 조언도 드리지 못함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라구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쓰다보니 예상보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이제 잘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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