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공부를 시작하기에 앞서>
0. 들어가며
제가 어렸을 때, 수업시간 이외에 수학공부란 걸 해 본 것이 국민학교 6학년 때였습니다. 내일이 교내 산수 경시대회라는데, 남다른 교육열정(이었는지 모르겠는데)을 갖고 계신 담임선생님께서 나름 우리반의 우등생들에게 개별적으로 산수 경시대회 ‘준비’ 하라고 엄포를 놓은 것이 계기였지요. 그때, 선생님이 주신 문제집을 죽 훑어보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고등학교 공업 선생님이던 큰아버지께 달려가서 30분간 ‘음수’의 정의에 대해서 과외를 받은 것이 처음이었죠. 우습게도, 그 다음날 산수 경시대회에서 저는 교내 1등을 하였고, 어찌어찌 도 대회까지 나갔습니다.
애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 애 엄마는 이런저런 고민이 많습니다. 특히, 엄마의 수학머리를 닮으면 안 된다며 노심초사 중이죠. 그러면서, 나중에 애가 자기의 수학머리를 안 닮게 저보고 잘 챙기랍니다. 저는 내심 ‘세상이 바뀌어서, 나처럼 아예 공부를 안 할 순 없으니, 고학년 때부터 슬슬 시키면 안될까?’ 생각 했지만, 도리가 없습니다. 지금부터 슬슬 준비해서 겨울방학부터 아들 녀석을 수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평소 애 엄마가 이런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일종의 ‘대국민 약속’이 되는 거라서, 추후 부모의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게 해 준다고 하길래, 용기 내어 글을 적습니다.
이 글에서는, ‘아빠표 수학’(여기서는 엄마표니 아빠표니 이런 말 쓰더군요)을 위한 저의 초심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1. 내가 못하는걸 남에게 시키지 말자.
이건 비단 수학교습뿐만 아니라 제 인생의 전반적인 방침입니다. 중/고등학생들 수학을 가르쳐 보면 항상 부모들은 엄청난 양의 공부를 시키길 원합니다. 보통 그런 요구를 하는 부모들은 다른 과목의 과외 선생에게도 마찬가지의 요구를 하곤 하죠. 시중의 학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두 달에 정석 한 권을 끝내야 한다는 둥, 학원 오기 전날에 숙제를 다 풀어서 학원에 팩스로 보내서 채점을 하고, 틀린 문제는 오답노트에 정리하여 학원에 와야 한다는 둥 아주 난립니다. 그리고, 그런 학원에는 서로 보내려 아우성이고 대기자도 줄을 섭니다.
물론, 과외 할 때 저는 돈 받고 애를 가르치는 입장이었기에, 부모의 요구대로 진도를 팍팍 나갑니다. 그렇지만, 항상 그 애들의 부모에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과연 당신이 애들 나이 때, 이 정도 양의 공부를 할 능력이 있었나?”
제가 생각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최고의 방법은 애들로 하여금 ‘변명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들의 공부 체력에 맞는 학습을 시키고,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옆에서 함께 집중해 주려고 합니다. 그래야 아들이 나중에 ‘아빠는 놀면서’, ‘아빠도 못했으면서’ 이런 말을 안 하겠죠. 적어도, 내가 할 수 있을 정도를 시켜야 애한테 큰소리 치기도 좋은 법이죠. 아들은 제가 이런 류의 큰소리를 칠 때 마다 ‘아빠 또 잘난 척 시작하시네.’라고 하지만요. ㅜ
물론, 제 아들은 나보다 낫다는 점, 시대가 바뀌었다는 점을 반영하여 당시의 제 능력+알파를 해서 공부시킬 예정입니다. ㅎㅎ
마찬가지로, 본인 자녀가 남들보다 수학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부모일수록 자기 자녀에게 한번에 많은 것을 요구하면 안됩니다. 다른 애들과 격차가 많이 벌어진 것 같아 급한 마음에 이것저것 많이 들이대시면 절대로 안됩니다. 흡사, 밥을 씹어 넘기기도 전에 다음 밥숟갈을 입에 넣는 격이죠. 결국, 목 막혀서 밥 한 톨도 씹어 넘기지 못하고 뱉어버리게 될걸요?
적어도, 수학에는 왕도가 있습니다. 짧게 보면 1년이지만, 길게 보면 12년간 수학을 계속 해야 하며, 한국 수학 교육 제도상 먼저 출발했다고 해도 도착점은 모두 똑같습니다. 옆집애가 영재학원 몇 년차 라더라, 누구는 선행을 몇 번 했다 하는 말에 흔들리지 말고, 조금 늦더라도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시키겠다는 생각으로 애들을 대해 주세요.
2. 나를 가르치게 한다.
우리 애는 남에게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좋은 이야기를 하여 엄마나 아빠가 흐뭇해 하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기뻐하죠. 저는 아들의 이런 성향이 수학 공부하기에 아주 적합하다 옛날부터 생각해 왔었죠. 어떤 과목이든 마찬가지지만, 수학은 내가 아는걸 남에게 가르치면 본인의 실력이 배가되는 과목입니다. 학교 다닐 때 다들 보셨겠지만, 수학 잘하는 놈은 항상 잘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시험기간이면 항상 그 놈에게 문제 풀어달라고 줄을 섭니다. 그 놈은 풀어주면서 자기 시험공부를 합니다. 아는 문제는 한번 더 풀어볼 수 있는 것이고, 몰랐던 문제는 친구의 질문을 통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기회가 됩니다. 그리고, 풀다가 친구들의 뜬금없는 질문들에 대답해 주다 보면, 본인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고의 확장까지 발생하게 되는 거지요. 이런 선순환은 수학을 잘하는 애를 더욱 잘하게 해 주는 힘이 되는 것이죠.
물론, 아들로 하여금 저를 가르치게 하면서, 위에 열거한 우주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말을 통해서 아들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제가 확인할 수 있고, teaching skill이라도 기르게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제가 몇 개 찍은 문제에 대해서는 아들에게 저를 가르쳐 보게 할 생각입니다. 좁아터진 집구석이지만, 작은 화이트 보드라도 하나 장만해야겠습니다.
3. 쓰게 시키고, 흔적을 보관한다.
이것은 제가 공부했던 방법입니다. 저는 수학성적에 비해서 제 스스로가 수학을 잘한다는 생각을 안하고 수험생활을 했던 터라, 내일이 수학시험이라고 하면 전날 밤엔 ‘그저 심란’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자신감 부족이었죠.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서 그 초조함은 극에 달해서, 수학시험날에는 아침에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먹으면 토할 것 같아서 어머니께 도시락도 싸주지 말라 하곤 했었죠.
‘공부’라는 것이 들인 시간에 비례해서 성과가 나지 않는 종목이고, 내가 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유형의 무엇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참으로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짓이 무조건 ‘써서 공부를 하고, 그것들을 버리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수학은 많이 썼습니다. 맨날 더하기 빼기 암산해서 틀리던 저는, 아주 간단한 계산도 연습장에 꼭 써서 푸는 습관을 길렀습니다. 처음엔 어색해서 남들보다 문제 푸는 속도가 늦었지만, 익숙해지면 머리로 생각하는 시간보다 손으로 쓰는 시간이 더 빨라짐을 느낍니다. 그리고, 쓰다 보면 요령이 생겨서, 어떤 문제에 대해서 구조화 시키는 능력이 생기게 됩니다. (요건 순전히 제 경험이라 남들도 그런지는 모르겠네요.) 없는 형편에 연습장을 따로 준비하지도 않았고, 이면지든, 도화지든 눈에 보이는 빈 종이를 공책 사이즈로 재단하고 반 접은 후 스태플러로 찍어서 수학 연습장으로 사용하고, 그것들을 모두 박스에 모았습니다. 그리고, 시험 전날 자기 전에 쌓여있는 연습장을 한번 보는 거죠.
‘아, 이번 시험을 위해 이만큼 수학 문제를 많이 풀었구나.’
사람은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에 더 민감합니다. 그전에 혼자 아무리 정신력이니 자신감이니 자기암시니 하고 맘속으로 떠들었던 것보다, 그간 수학문제를 풀었던 연습장 박스를 한번 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아직, 초등 1년에게 쓰게 시키고, 연습장을 이용하는 등의 극단적(?)인 방법을 바로 쓰진 않겠지만, 분명히 이 방법이 아들에게 도움되는 언젠가가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4. 마치면서
이 게시판을 통해 참 많은 분들이, 자녀의 교육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간 우리 아들놈에게 너무 무심하지 않았나 약간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뭐 벌써 이럴 필요가 있나’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 이구요.
그러나, 하다가 중간에 흐지부지되지 않기 위해서, 이왕 시작해야 하는 것이라면 저 스스로 확실한 주관을 갖고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 자 적었습니다. 초등학교 수학은 한번도 가르쳐 본 적이 없어서, 나름 재미있지 않을까 기대 되는 것도 사실이네요.
혹시,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실제적인 이야기인 ‘수학을 어떤 식으로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그럼 다들 행복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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