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자식들에게서 해방되는 그날을.....
큰애는 4주 훈련소 훈련이 끝나고 4주 교육을 받고 있다.
군대를 보내니 내가 해야 했던 일들을 국가에서 모두 해주고 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심지어 깨워주고.....
엄마에게 큰 의지하며 살던 큰애가 대학을 가며 학교 바로 옆으로 내곁을 떠났지만
그건 자리만 떠났을 뿐,내 곁에 있는 자식이나 마찬가지였다.
시험때가 되면 온갖 투정과 스트레스를 받아주어야 했고
대학생이었지만 신경쓸 일이 많았다.
요즘 대학생들 엄마도 헬리콥터맘으로 자식들 옆에서 빙빙 돌지만
나는 싫었다,
이젠 다 키웠으니 알아서 꾸려가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군대를 보내고 비로소 완전히 내 곁에 없다는 실감이 난다.
물론 3주 후면 내 곁으로 다시 돌아올 군인이지만
아이가 내 곁을 떠난 지금 완전한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늦둥이 작은 아이.
내가 왜? 뒤늦게 자식을 하나 더 낳아서 이 고생이냐?
고생이 아니라 내 자유롭지 못함에 대한 불만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야자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밤 10시가 넘는다.
돌아오면 방으로 들어가 새벽까지 혼자 공부한다.
나는 방에 들어가 잠들기 미안해 소파에서 잠들곤 한다,
아침에 입맛 없는 아이, 뭘 먹이면 식욕이 날까? 요즘의 고민은 이것 뿐이다.
"엄마,이젠 아침밥만 해주시고 옷만 깨끗이 빨아주세요"
혼자 알아서 모든 것을 하겠다는
아이의 단호한 선언을 듣고
나는 그날을 그렇게 기다려왔건만 허전함과 서운함을 느꼈다.
그렇다.
고등학생에게 해줄 것이 무엇이 있으랴? 기도해 주는 것이 내게는 가장 중요한 일!
이렇게 다 키웠다.
정말 그토록 원하던 자유이지만 아직은 너무 어색하다.
당연한 일인데,
왜? 이리 어색한 것인지...
저녁도 이젠 남편과 둘이 먹는다.
둘이 먹는 저녁 찌게,국을 끓이려니 정말 짜증이 난다.
제발 식사하고 들어오시는 것이 도와주는 것인데,예전보다 더 집에 와서 저녁을 먹는다.
애들 공부 때문에 외식도 마음껏 하지 못하고 살았기에 3월 한달은 여기저기 맛집도 찾아다녔다.
그러나 애들 없이 둘이 먹는 외식이 어찌나 쑥스럽던지...
식당에서 고기를 싸서 먹여주는 중년은 불륜 사이이고 부부사이는 아무말 없이 먹는다던데..
맞다.뭐 그리 특별한 이야기가 많을까?
애들이 떠나가고 우리 부부사이에 다툼이 없어졌다.
우리는 주로 애들 일 때문에 다투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무미건조하다는 말이 생각난다.
요즘의 생활이 그렇다.
남편은 적적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한다.
정말 너무 텅 빈 느낌이다.
나는 이 텅 빈 느낌의 순간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즐기고 싶다.
아이들 다 키우면 가고 싶은 곳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는데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아직도 내 일이 있다는 것이
일주일 중에 하루도 내 맘대로 쓸 수 없는 이 일이 언제쯤 끝날까?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때로는 이것이 참 소중하다는 생각도 든다.
50을 바라보는 중년의 여인들은 무슨 생각하고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을까?
둘째가 고등학생되면서 일을 확~줄였지만 역시 특별한 일이 내겐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지금 이나이 정신없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은총이라 생각하자!
막내 대학들어가면 대관령에 작은 집을 하나 구해 살고 싶다.
남편은 절대 싫고 번화한 강남가서 살겠다는데..
어쩌면 온 식구가 뿔뿔이 흩어져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애들 다 키우면 날개 달고 훨훨 날아다니며 무채색 내 인생을 화려한 수채화빛으로
물들일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이제 늙어가고 있다.
어느 날 혼자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허무해지고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가슴이 터질 것만 같고 눈물이 쏟아지는데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데 만날 사람이 없다.
주위엔 항상 친구들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날 이런 마음을 들어줄 사람을 생각하니
수첩에 적힌 이름과 전화번호를 읽어 내려가 보아도
모두가 아니었다.
혼자 바람맞고 사는 세상.
거리를 걷다 가슴을 삭히고 마시는 뜨거운 한 잔의 커피.
아, 삶이란 때론 이렇게 외롭구나.
-이해인, 어느 날의 커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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