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집 얘기를 하겠습니다.
아빠가 해외와 한국을 오가며 사업하는 통에
부지불식간에 집주소는 해외가 되었고 방학이면 아이들 공부 겸
조부모 사랑도 받을 겸 한국서 지내는 삶이 수년 째입니다.
아들이 둘 있는데 큰 녀석, 참 상냥합니다.
6학년 때 이민을 갔는데 소년 가장 노릇을 합니다.
아빠가 한국에 가면 몇 달씩 계시기 때문에 소심한 데다 영어가 서툰
엄마를 대신해서 많은 일을 처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아무래도 어른이 해야하는 말이 있을 경우,
엄마가 서툰 영어를 하면 녀석, 엄마 등을 토닥이며
"잘 했어, 엄마, 그렇게 하면 돼. 천천히 말해."
공부는? 정도껏 한답니다. 한국인들이 다 아는 명문대 갈 정도는 아니란 뜻이지요.
그런데 그 엄마, 이 아이는 명문대를 안 가도 된다는 생각입니다.
사막에 던져놔도 먹고 살 녀석이랍니다.
운동화, 청바지, 이어폰 등 신형을 사서 약간 쓰고는
중고판매 사이트에 올려 원래 값보다 더 받고 팔아먹습니다.
소비자 마음에 쏙 들게 사진을 찍고 써놓은 문구가 사람 마음을 잡습니다.
가령 청바지면 그냥 펼쳐놓은 사진이 아니라,
사람들이 궁금해할 부분을 잘 찍어보여주는데 이 때 다리를 돌돌 말아
예쁘게 청바지를 안착시킨뒤 허리 부분을 벌려 단추가 아직 튼튼함을 보여줍니다.
그 엄마, 가끔씩 신용카드 썼다는 문자 뜨면 '이 시키가 뭘 또 샀군.'
통장으로 입금되었다는 문자 뜨면 '이 시키가 뭘 또 팔아먹었군.'합니다.
둘째 녀석이 있습니다. 요건 수재입니다.
달걀 같이 뽀얀 녀석이 안경 뒤로 총명한 눈빛을 발할 때 보면
말 한 마디 안 붙여봐도 똑똑하겠다는 포스가 확 풍겨요.
수학 과목은 저 보다 두 학년 위 과목을 듣습니다.
얼마 전 전학 문제로 엄마랑 교육청을 가는데 들어가면서 엄마를 단속하더랍니다.
"엄마, 암말도 하지마, 내가 다 할테니까, 가만 있어."
엄마가 서툰 영어하는 게 싫은 거지요.
상냥한 큰애랑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된 첫날, 형이 한국 선배들과 잘 지내라고 하자,
"왜 그래야 하는데? 난 그냥 사는 거지 무리하게 잘 보이려 할 생각이 없어."
한국에 온 김에 학원 다니며 선행 좀 하라 했더니 '그렇게 미리 배울 거면 학교는 왜 다녀요?"
제가 이 대화만 옮기면 얄밉게 들리지만 그렇다고 버릇없지는 않습니다.
사소한 거라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따진다는 뜻입니다.
이 녀석은 타인의 삶에 관심이 없습니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지만 남이 자기 삶에 관여하는 것도 "No!"
공부를 탁월하게 잘 하니 어느날 아빠가 좋은 대학 운운했습니다.
"아빠, 아빠의 꿈을 위해 내가 아이비리그를 갈 생각은 없어.
왜 억지로 그런 학교에 가서 공부에만 얽매어 살아야 해?
난 내가 적당히 갈 수 있는 학교에 간 뒤 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거야."
엄마 왈, "똑똑한 새끼는 증말 밥맛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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