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임심했을 때 입덧보다도 힘들었던 것은 휴직후 복직이 제가 일하던 중환자실이 아니라 응급실이라는 거였어요. 중환자실은 두명의 환자를 집중케어 하는 곳이고 응급실은 다수의 환자를 쫙 훑듯이 보는 곳이라 꼼꼼히 간호하던 습관이 붙은 저로서는 너무나 힘든 환경이었지요.
그 응급실이란 곳에는 별별 사람이 다 와요...
한번은 혈당검사를 해야하는 내 환자들을 한바퀴 돌며 검사했는데 아주 작은 바늘로 찔러 피를 낸 뒤 형당수치를 재는 거였거든요. 검사를 다 한 바늘들이 트레이 위에 뒹굴고 있었는데 제가 그 중 하나에 찔린 거예요.
저는 그 때 저는 임신 5개월. 그 바늘들의 주인은 간염환자. 에이즈 환자. 매독 환자....
같은 일이 또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어 아이 생각하고 다시 휴직을 했었답니다.
그 때 40대의 에이즈 남자 환자가 있었어요. 사람들이 에이즈 환자와 함께 있기 싫어하기 때문에 우리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해서 관리를 했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게 할 수는 없어서 대놓고 에이즈 어쩌고 말 할 수는 없었어요.
그 환자는 이미 몸 안의 장기가 성한 것이 하나도 없었고 정신은 말짱했지만 이제 곧 죽게 될 거라는 게 자명했지요. 중학생 딸도 있고 형도 있다는데 그들은 한 번도 볼 수가 없었고 그의 곁에는 항상 뼈만 앙상한 그의 노모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어요.
남들은 꺼리는 에이즈 환자를 아들이라고 곁에 붙어서서 응급실 보조 의자에 앉아 하루하루를 나는 그 늙은 노모가 안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감염의 우려가 있어서 너무 걱정스러웠답니다.
한번은 커튼을 들쳐보니 글쎄 숟가락 하나로 아들 한 입. 노모 한 입 이렇게 밥을 떠 먹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에이즈는 보통 접촉으로는 전염이 되지 않지만 혈액이 섞이면 감염이 되는데 그 환자는 간수치가 안좋아 식도 출혈도 빈번했고 잇몸출혈도 있었거든요. 제가 기겁을 하고 숟가락을 붙잡았어요.
"할머니. 아드님 입에서 피가 나요. 할머니 연세가 있으셔서 잇몸이 안 좋을 수도 있고 상처가 있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수저 같이 사용하시면 할머니도 병 걸리세요. 그러니 밥은 따로 드셔야 해요"
그런데 노모는 고개를 저으시더군요. 괜찮다면서..
괜찮다...는게 무슨 뜻이었을까요?
아들이 아파 죽어가는데 대신 아파줄 수 없다면 같은 고통이라도 당하면서 아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싶다는 뜻이었을까요?
남들 더럽다고 하는 내 아들 피가 나에게는 하나도 더럽지 않다는 뜻이었을까요?
아들이 죽고 나면 나도 사는 게 의미가 없으니 상관없다는 뜻이었을까요?
아무리 말리고 말려도 계속해서 끼니때마다 한 숟가락으로 밥을 드시더라구요.
숟가락 하나 장만하는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도 말이지요.
거짓말같이 5분전까지도 '엄마. 너무 아파' 하던 사람이 5분 뒤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장갑을 두 겹씩 끼고 그 환자를 만졌어요.
그의 형이 당도했지만 명을 달리한 자신의 동생 근처에도 가지 않더군요. 저만치 동생 얼굴도 보이지 않는 거리에 서서 사망선고만 듣고 있을 뿐이었구요.
그 때에도 노모는 맨 손으로 아들을 쓰다듬고 울고 있었어요.
맨 손으로.. 아들 이곳 저곳을...
병원에서 일했던 기간동안 겪은 일 중 가끔씩 기억나는 몇몇 장면들이 있어요.
참으로 다양한 보호자와 환자들이 있지요. 그런데 참으로 엄마들의 행동은 거의 비슷해요.
자식의 더러운 것을 더럽다 여기지 않아요. 위험한 것을 위험으로 여기지 않아요.
분명 연약하고 힘없는 노인들인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곤 해요.
남들이 뭐라건 신경쓰지도 않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 때 겪었던 일들이 다르게 해석되기도 해요.
노모의 괜찮다는 말이 지금 저에게는 이렇게 들립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더럽고 무섭다고 피해도 너는 이 모습 그대로도 나에게 귀한 아들이다."
그는... 모두가 고무장갑을 끼고 그를 만지던 사망순간에 분명 어머니의 따스한 살갗의 온기를 느꼈을 겁니다.
내 아이에 대해서 남들이 이러쿵 저러쿵 말들을 하고 조언을 해준답시고 상처를 들쑤시기도 하기도 합니다. 당장 학원만 가봐도 내 아이의 부족한 점을 어찌나 꼼꼼히 짚어주는지 점쟁이 나셨습니다.
그런 막들을 통과해서 바라보게 되는 내 아이의 모습은 어쩌면 부족하고 못났고 바꿔주어야 할 대상으로 보이기도 하구요.
한번쯤은 막들을 거두어내고 순수하게 맨손으로 아이를 어루만져 주면서 나즈막히 말해주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네 모습 있는 그대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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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읽기2 (41~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