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교를 보내고 나서 동네 엄마들과 모여서 수다떠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게 아닙니다.^^
자잘하고 소소한 팁들이 생활의 윤택이 됩니다.
동네 치과는 어디가 잘 하는지, 어느 식당이 맛이 있는지,
같이 줄넘기도 하고, 동네 그림대회에 함께 가기도 하고......
오랫동안 스스로 왕따를 만들었던 엄마는 신세계를 만난것 같습니다.^^
그런데 도통 공통의 관심사를 만들 수 없는게 있으니 그것은 TV 드라마나 최신영화 이야기입니다.
"요즘 프로듀사가 재미있어요. 그죠?
해품달 봤죠? 별에서 온 그대의 김수현이 나오잖아요."
"해품달? 들어는 봤어요. 별에서 온 그대도 재미있었다면서요?"
"아니 도대체 집에서 뭐해요? 살림도 별로 관심없잖아요.
근데 영화도 안 보고, 드라마도 안 보고. 하루 종일 집에서 뭐해요?"
그러게요, 저는 집에서 뭘 하는 걸까요?
거의 대부분은 쑥질을 하는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근데 제가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아요.
집에 있을 때는 나름 바빠요.
살림은 못하지만 그래도 해야하는 일이 있으니 아이 학교 보내고 나면
집에서 설거지, 청소, 빨래, 요리(? 말하기 민망하지만.....)가끔 바느질도 하고......
뭐 그러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냥 아이와 함께 책 읽고,
도서관 구석에서 졸기도 하고, 사서샘이랑 수다도 떨고.....
암튼 저도 제가 뭐하는 인간인지 참 의문스러울때가 있습니다.
그냥 로드매니져라고 불러야 하나?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끝날 시간에 맞추어 학교 놀이터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피아노 학원 보내고 또 대기하다가 바둑하는 날은 바둑 보내고,
첼로 하는 날은 첼로 보내고 그 시간동안 하염없이 아이를 또 기다리고......
다른 활동 없는 날은 그냥 둘이 도서관에서 책 읽다가
늙었는지 자꾸 졸음이 와서 책읽는 아이 옆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도 일쑤고......
책 읽는 시간이 자꾸 주는 듯해서 주 3회 다니던 영어교실을 끊고 나니
다시 도서관에서 여유있게 책 읽는 시간이 생겨서
도서관 바닥에 뒹굴뒹굴 누워서 책을 읽으니
진짜 우리집 스타일로 돌아온 듯해서 마음이 기분이 좋습니다.^^
참 아이가 얼마전부터 첼로를 시작했어요.
지금은 귀곡산장인데 점점 나아지겠지요?^^;
저나 남편이나 악기를 연주할 줄 모르는데 그냥 첼로 소리가 좋아서 시작했습니다.
피아노 학원을 보내놓으니 집에서 저녁마다 피아노를 쳐주는게 좋아서
첼로를 가르쳐 놓으면 이제는 저녁마다 첼로를 연주해 줄듯해서 말예요.
이 에미가 할 수 있는건 아이가 저녁 먹고 장난감 갖고 놀 때 첼로 연주곡을 틀어 놓아요.
선생님은 집에서 연습을 하라는데 제가 몰라서 봐줄수도 없고 해서
이 무식한 손가락으로 유튜브의 첼로연주곡을 찾아서 틀어주는걸로
소임을 다한다고 우기고 있어요.
굉장히 편안하고 러블리한 가정의 모습같지요?^^
저녁마다 피아노로 동요지만 엄마를 위해 연주를 해주고,
함께 뒹굴면서 책을 읽다가 뽀뽀도 쪽쪽하고 껴안고 있다가
간식 꺼내 먹으면서 다시 뒹굴면서 책을 읽어요.
그런데 말예요...... 사실 이곳은 엄마에게 전쟁터입니다.
엄마는 두 손으로 현실을 가리고 아이에게 좋은 것만 보라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말라고,
아직은 어리니까.......
어려서..... 그래서 더 문제가 심각한데도......
갑자기 얼마전부터 한전에서 전기세를 감면해 준다고 합니다.
대략 가구마다 8천원 정도인데 우리가 사는 지역이
워낙 가난하고 없이 사는 동네라 그런가 도대체 알 길이 없었습니다.
대뜸 빌라 입구에 종이 한 장이 붙었습니다.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공공주차장에서 경로잔치를 하니 식사하라는 공지입니다.
우리집에는 나이드신 분이 없으니 경로잔치에 참여할 사람이 없습니다.
대뜸 복도가 LED 등으로 전환이 되었습니다.
빌라 동장께서 빌라 개선사업을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래간만에 도서관에 가니 동네분인 사서샘이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동네 뒷동산 너머로 송전탑이 세워졌답니다.
우리 동네에서는 보이지 않는데 바로 뒤에 공동묘지가 있어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을 통해서
자재를 운반하여 우리 동네 사람들 아무도 모르게 이미 송전탑을 세웠다고 합니다.
아주 낮은 언덕 비슷한 산이기에 동네 분들이 산책삼아 등산을 가곤 하는데
갑자기 생뚱맞게 안 보이던 송전탑에 관심이 생긴 한 분이 한전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지고 묻자
갑자기 한전에서는 친절하게 우리 통에 4800만원을 동네 유지 보수하는데 쓰라고 주고
전기세도 감면해 주고, 복도도 새 등으로 모두 교체를 해 주었습니다.
바로 아래 통은 거리가 조금 더 멀다고 1000만원이 적은 38000만원을 주었다는데
그 돈으로 아스팔트도 새로 깔고 도로 보수를 새로 했다는데
우리 통의 그 돈을 받은 마을의 감투 쓰신 분들은 깨끗한 거리를 만들기 위해
몰래 쓰레기를 투하하는 사람들을 잡고자
동네 곳곳에 CCTV를 설치하고 남은 돈으로 경로잔치를 열었다고 하네요.^^;
이미 동네 잔치가 벌어지고 난 상황이라 우리는 그냥 어리둥절하기만 합니다.
다만...... 전화 한 통에 이 북새통이 난거라면 우리는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인걸까?
시간이 갈수록 불안하기만 합니다.
밀양에 송전탑이 세워지고 마을 주민들이 갑자기 암에 걸린 사람들이 늘었다는데
한전과의 싸움에서 결국 법원은 한전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동네 잔치를 벌이는 상황에서 누구도 한전과 다툴 기미는 없어 보입니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만 속을 태우고, 어찌 할 줄 몰라합니다.
남편은 엄청난 손해를 보겠지만 이 집을 포기하고 그냥 떠나자고 합니다.
저도 집값에 미련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갑자기 대출금이 반을 차지하고 있는 이 집을 포기하고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부모 속은 타지만 아이는 오늘도 엄마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하고
내일은 첼로를 켜며 미래를 꿈꾸겠지요.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데, 영화도 잘 보지 않는데,
갑자기 예전에 본 영화가 하나 떠오릅니다.
중게의 어느 분이 정의에 관한 글을 써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는 있다고 아이에게 가르치시겠다고 합니다.
저는 그러지 못하겠다고 댓글을 적었습니다.
이 에미는 힘도 없고, 정의를 울부짖을 용기도 없어서
다만 어린 아들을 위해 힘들게 마련한 집을 포기하는 것외에는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TV를 보는 대신, 영화를 보는 대신
아이를 낳기 전 그래도 한가로울 때 본 영화를 떠올리며
내 삶을 곰곰히 돌아봅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건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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