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뭐 인기작전 쓸라고 얘기를 안 한 게 아니고요, 글을 쓸 시간이 없었어유.
2편 빨리 쓰라는 원성이 자자해서 자판 두들깁니다. 흠흠.
---------------------------- (뜸들이는 표시)
J여사의 독특한, 아니 X랄 맞은 성격은 뭔가에 매달리면 생각을 멈출 수 없다는 겁니다.
바이올린 선생 물색하랴, 찾아내면 선생보다 그 매니저들 (대개는 부인)의 거드럼을 견디랴,
갑자기 까짓거 한국에서만 배우란 법 있냐는 생각이 든겁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말해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보내자고 했습니다.
그랴? 아내가 시키는 대로 남편은 뭣도 모르고 이멜을 쓰고 I양 연주 녹음한 테이프를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설마했쥬.
(갑자기 MIT에 편지 썼던 내 자신이 떠오르면서 부끄러운 건 왜일까? 전 답장 못 받았슴다)
오매? 답장이 왔습니다.
"아이가 너무 어리고 외국에 있다는 점이 몹시 걸리는데 원한다면 와서 오디션에 응해봐라."
네 식구가 가방을 쌌습니다. 관광비자 받아가지고 미국에 갔습니다.
애들이야 엄마랑 관광 간다지만 칠득이 남편은 뭡니까?
신의 직장이라는 00 기관에 사표를 던지고 세 여자를 데리고 나간 겁니다.
장기 투숙하는 싸구려 호텔에 짐을 풀고 연습에 돌입합니다.
눈물이 나려합니다. 여기서부터 이들 가족의 피나는 노력사가 펼쳐집니다.
아쉬운대로 레슨을 하나 받으면서 오디션 날짜를 기다렸습니다.
지독한 J여사가 담력을 키우라고 1학년 짜리 꼬마를 센트럴 파크에 세웠습니다.
그냥 길에서서 꼬마가 연주를 하며 연습을 했어요.
이 녀석은 활을 잡으면 놓지를 않습니다.
그 싸구려 바이올린으로 추리닝 한 벌 입고 연주를 합니다.
그렇게 오디션을 봤지만 떨어졌습니다.
오랜 세월 좋은 선생님 모시고 연습한 경쟁자들을 물리치지 못 한 거지요.
그 경쟁자들 가운데 엄청난 수가 한국 아이들입니다.
우리 나라 대단합니다.
자, 여기서 생각해 볼 점: 한국 애가 많다는 건 한국 엄마들 그룹이 있다는 뜻입니다.
더 이상 얘기 길게 못 합니다.
워낙 유명한 학교여서 여기서 제가 입을 잘 못 놀렸다간....
자, 떨어졌으니 짐을 싸야죠. 직장 버리고 간 칠푼이 남편은 워쩌냐.
그런데 이상한 연락을 받게됩니다.
심사에 참여했던 미국인 할머니 교수 한 분이 연락해오셨습니다.
어린 아이가 너무나 아름다운 연주를 했는데 안타깝다 한 번 보자.
아휴, 이 부분도 게시판에 자세히 말 못해 내 속도 타네요.
제가 아무리 뭉뚱그려도 너무 유명인의 이름이 나와야해서 그냥 이렇게 갈랍니다.
------------ 요 사이에 유명인들과 관련된 극적인 얘기가 있습니다. ----
그러면서 다음 번 오디션에 다시 응시해봐라.
문제는 다음 오디션까지 뭘 먹고 버팁니까?
이미 몇 개월을 싸들고 온 돈 쓰고 살았는데요.
체류에 관한 법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용감한 건지 무지한 건지 이 가족 그냥 버텨보기로 합니다.
레슨비가 없는데 그 할머니 교수님께서 거의 공짜다시피 레슨을 해주셨어요.
남편은 한국인 관광객들 관광 안내를 하면서 살림을 꾸려갔습니다.
친정 식구들이 보태주는 돈으로 근근히 살면서 피나는 인고의 세월을 견딥니다.
저는 친구의 건강이 걱정되어 전화하면서, "아직 살았냐?" 물었지요.
I양은 한국 엄마들 사이에 경계 대상으로 떠오릅니다.
할머니 교수님이 당락 결정권은 없더라도 어쨋든 실력있는 선생님인데
그 분에게 굴러온 돌이 사사받고 있으니 이거 속상할 만도 하겠지요.
이 부분도 실제 일화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에구 속 터져.
시원하게 해들릴게요.
I양은 시험에 통과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당당하게 합격합니다. 앗싸~~~
울면서 소식 전하는 친구와 울면서 감동하는 저를 상상해 보세요.
전화통 붙들고 둘이 한참 울었네요.
제 친구는 자기 목숨이 길지 않다고 항상 느꼈습니다.
안타까웠던 자기 목숨이 아니라 자기 딸이 음악을 포기할까봐 전전긍긍했던 거구요.
자기 살아있을 때 음악을 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줘야한다는 생각에 불안했고요.
합격 소식 듣고 친구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나 없이도 우리 I 음악 뒷바라지 해줄 수 있겠느냐.
남편은 이렇게 말했답니다. 걱정하지 말고 가게 되면 편히 가라.
무슨 일이 있어도 바이올린 시킨다. 이젠 자신 있다.
제 친구가 이렇게 사과했습니다.
"참 당신에게 미안하다. 아내로서 밥도 제대로 못 해주고 그렇게 살았다."
늘 누워만 있고 조금만 무리하면 금방 건강을 잃으니 일상적인 노동도 힘에 겨웠으니까요.
남편의 답입니다. "괜찮다. 이 다음 세상에서도 당신하고 살고 싶다."
전, 지금도 이 말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그런데, 그리 어렵게 들어간 줄리어드인데 결국 그곳 과정을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견딜수 없이 아까워요. 더욱 슬픈 건 음악의 길도 포기합니다.
아... 정말. 말하기 싫으네. 이유는 돈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위안을 드릴게요. 하바드 4년 장학금 받고 수시로 합격합니다.
저, 지금 회의 들어갑니다. 나머지 얘기는 3탄에서.
제가 술수를 부리는 게 아니고요 진짜 바뻐요. 씩씩~~
원본 게시물: http://www.suksuk.co.kr/momboard/read.php?table=BEC_001&number=48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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