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주저리 떠들려고 자판 두들깁니다.....
오늘 엄마들과 나눈 얘기, 아니 제가 일방적으로 떠든 얘기입니다.
"행복해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객관적으로 아주 기뻐할 일, 충분히 축복받을 일이 있어도
저라는 사람은 시큰둥....지금의 98퍼센트에서 빠진 2프로가 아쉽습니다.
엄마들에게 "기다려라, 비교 마라, 지금의 행복을 누려라," 떠들면서 가증스럽지요.
가증스러움을 제치고 그래도 입은 살아서 계속 떠들랍니다.
선천적으로 행복 유전자를 타고나지 않는 한 행복도 연습을 해서 느낄 수 있어야 된다.
행복을 어떻게 연습하느냐? 느끼기 나름인데 그 '느끼기 작전'을 펼치는 겁니다.
이런 생각에 다다른 계기는 어느 목사님 말씀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말씀...
그 분은 형식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심이 아니어도 자꾸 형식을 갖추면 어느날 거기에 진심이 들어가더라."
당신이 너무 싫은 사람이 있었답니다. 왠지 그 사람 하는 말이 다 가식적으로 들릴만큼.
목사라는 신분 때문에 그걸 드러낼 수가 없어서 괴로웠는데
어느날부터 작정하고 '형식적으로 친절해지기' 연습을 하셨답니다.
만날 때 마다 안부를 묻고, 식사하셨냐고 하고, 옷이 멋지다고 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자기가 진심으로 그 사람의 안부를 묻고 있더랍니다.
목사님 말씀 듣고 나서...
사실 저도 실습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 저는 그 여자가 싫었습니다.
뭐가 그리 아는 게 많은지 항상 아는 척, 뭐가 그리 가진게 많은지 늘 화려하고,
뭐가 그리 중요한 일을 하는지 늘 너무나 바쁘다 하고.
저는 어느 집단에서나 리더 역할을 하는 사람인데 그게 싫은지 저를 경계.
따지고 보면 그리 싫어할 이유가 없는데 싫습디다.
나이 들어 그닥 같이 하는 일도 없으면서 싫은 척 하기도 참 괴롭고.
그래서 억지 웃음을 팔며 고운 말로 상대하고 칭찬을 많이 해줬습니다.
전 같았으면 대면 조차, 상대 조차 안 했을 제 속알머리에 노력을 꾀나 한거지요.
그런데 정말 그 이후부터 그 사람이 그리 밉지 않더라고요.
그런 사람도 품을 수 있는 내 자신의 아량이 자랑스러울 정도였어요.
다시 '행복 연습' 주제로 돌아와서...
그러니까 싫은 사람도 억지로 '괜찮아 하기' 연습을 하면 싫지 않은 것처럼
행복을 연습해보자는 겁니다. 말하자면 행복 느끼기 작전이죠.
요한한 캠페인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주변에서 좋은 점 장점을 캐보자는 겁니다.
내 자식, 영어 못 하지만 남과 잘 어울리니 좋고, 수학 못 하지만 그림 잘 그리니 좋고, 등등.
이렇게 말하면서 제게도 썩 와닿지 않아요. "뭔 소리여? 그래도 공부 잘 하는 게 좋지."
그런데 그런 연습을 하지 않으면 제 나이 되도록도, 아니 죽을 때까지도
행복을 느끼는 부위/세포/뇌가 발달하지 못 하는 거 같습니다.
가만히 보면 불평을 할 이유가 거의 없는데도 징징거리는 사람이 많아요.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여요. 더 늦기 전에 연습해야지.
세수 안 하고 하루 버텼으니 물 아껴서 좋고,
식구들 밖에서 밥 먹는다니 저녁 안 해서 좋고,
원고 밀렸는데, 하기 싫은데, 여기서 수다 떨어서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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